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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보이 Feb 28. 2024

말도 참 예쁘게, 화나게도 하는 남자

아무 말 대잔치 입니다만…

1. 마흔을 코 앞에 두고 결혼 준비에 한창이던 시절, 20대에 이미 결혼을 해 결혼 생활을 십 년 넘게 했던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자들은 하라고 하면 잘 안해. 그러니까 하라고 하지 말고 해달라고 해봐."

"???"

"예를 들어 청소기를 돌려야 할 땐 "청소기 좀 돌려!" 가 아니라, "청소기 좀 돌려줄래?" 부탁하듯이 말하는 거지."


사실 그때는 <돌려>나 <돌려줄래>나 시키는 건 마찬가지이고 해야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남자들에게 그게 뭐 그리 큰 차이일까 싶었지만, 살아보니 이것처럼 맞말인 게 또 없다.  

남녀 성별을 떠나 명령은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들지만, 부탁은 웬만해선 거절할 수 없게 만드니까.


2. 그런가 하면 내가 남편의 말습관 중 기분 좋게 생각하는 한 가지는 그는 대부분 말을 할 때, "그렇게 해!" 라고 하지 않고 "그렇게 하자!"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오빠, 나 커트할까 했는데 역시 펌을 하는 게 낫겠어. 펌 할까?" 하면,  

남편은 "그래 그렇게 해."가 아니라 "그래 그럼 이번엔 펌으로 한 번 해보자." 라고 말하는데...

엄밀히 말해 어법엔 안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상황(고민) 안에 나 뿐만 아니라 남편도 함께 있는 것 같아, 그의 이런 어미 처리 습관을 좋아한다.

그러고보면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 것도 최소한 단어 몇 개에 문장 하나 정도는 구사해야 가능한 일인데, 1번이나 2번은 어미만 살짝 바꿔도 가능한 일이니 이 얼마나 좋은가!


같은 말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좋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좀 난데없지만 이상은 간밤 꿈에, 아니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잠시 했던 생각 입니다.

이후로도 조금 더 뭔가를 이어붙여 머릿속으로 글을만들어뒀던 것 같은데, 자고 일어나니 음...


기록 차원에서 남겨두고, 다음에 생각나면 이어가 보겠습니다;



해놓고, 바로…

그런데 말입니다.

남편은 말을 참 예쁘게 하는 남자이다가도, 한 번씩 보면 말을 참 얄밉게 화나게 하는 남자이기도 해요.

대부분은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듣다보면 저는 한 번씩 화가 납니다.

아니 화… 라기 보다는, 워딩만 놓고 보면 이건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나쁜 남자 캐릭터의 대사인게 분명한데, 내가 같이 웃는 게 맞는 건가 싶은 거죠


예를 들면, 느닷없이 저를 늦둥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물어보면, 늦둥이가 아니라 늙뚱이 랍니다. 늙고 뚱뚱하다구요. 그런가하면 함께 홍대 스트릿을 걸을 땐 갑자기 어머님이래요. 가출한 딸내미 잡으러 온 어머님 같다구요. 그리고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저한텐 뭐라고 속삭였는 줄 아세요?

“다이어트는 무슨. 오늘이 네 인생 가장 날씬하고 아름다운 날인데!“


이런 남편을 둔 저, 웃어야 합니까 울어야 합니까!

나쁜 남편 코스프레가 취미인 이 남자, 죽여요 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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