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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년대 소년 Mar 24. 2024

관계에 대한 초조함 내려 놓기

누군가를 먼저 만나자고 했을 때, 대개는 만나자고 이야기한 쪽이 차값이나 밥값을 계산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산대 앞에서 서로의 카드를 내밀며 “이걸로 해주세요.” 라며 본의 아니게 직원들을 난감하게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K-moment


나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또는 그저 대접하고 싶어서 직원을 바라보며 간절하게 카드를 내민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대방이 계산 의지를 밝히면 “그래요, 그럼.” 하고 흔쾌히 양보한다. 그리고 “잘먹었어요. 다음엔 제가 살게요.”  라고 덧붙인다. 


 예전에는 상대방에게 신세를 졌다는 생각으로 내게 오는 불편함을 사전차단하고자 그렇게 행동하곤 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러한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인다. 상대방과 나의 관계는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순간의 미안함은 상대방과 나 사이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만큼 나는 다음 번의 만남에서 더 주면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차례의 만남에 일희일비, 전전긍긍하지 않게 되며 일종의 관계에 대한 초조함이 많이 사라졌달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관계가 숙성되지는 않지만,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했다면 그 노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아무리 조심해도 작은 실수는 있기 마련이고, 시간이 지나면 상대방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 그때쯤이면 작은 실수들은 서로에게 더 이상 큰 의미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비해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며 내려 놓아야 하는 것도 많지만, 얻는 것도 없지 않다. 길게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자연스레 생기는 것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에 더 놀라고 기쁜 것처럼 내면의 이러한 변화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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