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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멋진 신세계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온지 어느덧 수년이 흘렀습니다. 


직업의 종말을 쓴 저자 테일러 피어슨은 그의 책에서 직업의 커리어를 준비하는 대신 불확실성의 미래에서는 자신만의 능력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가치 있는 기회를 추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직장을 다니며 점차 승진하고 연봉이 오르기를 기대하는 데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투여하지 말고 존재하지도 않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 자기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구축해 나가느냐에 따라 10년 후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 강조합니다. 


피어슨의 직업의 종말에 동의한다면, 직업이 가지는 세가지 속성인 사회성, 경제성, 심리적 유용성을 대신하는 것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산업시대에서는 은퇴는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은퇴와 죽음의 간격이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이죠. 제가 직장 초년생일때, 은퇴하신 직장 동료분들의 장례식에서 옛 직장 동료들을 만났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 직업과 노동을 줄여가면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에 대해 고민은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느덧 시작된 고민, 


은퇴가 보편화되면서 은퇴이후의 삶, 그리고 일과 직업이 없이 사는 삶에 대해서 누구나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일과 직업이 주는 의미를 스스로 재발굴해야 합니다. 


인간은 의미추구의 존재입니다. 


빅터플랭클이 말했듯 살아남는 인간은 스스로 고통속에서 살아가야할 의미를 찾은 인간이 살아남습니다. 좋은 조건에서는 누구나 모두 번성합니다. 그러나 악조건에도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만이 가능합니다. 


일의 생산성은 제고될지언정, 일로서 대변되는 일과 직업은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것입니다. 자본은 여전히 인간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수익을 극대화할것이고, 자본은 늘 그랬듯이 이동하는 중입니다. 


아마도 일반적인 사람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수용에 대한 태도는 공포와 호기심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올더스 헉슬리 등의 창작자들이 신세계를 디스토피아를 그려온 것 처럼 말이죠. 


사람은 두가지의 시간속에서 살아갑니다. 아침, 점심, 저녁이 매일 반복되는 순환적 시간과 어딘지 모르지만 끝이 있는 직선적 시간입니다. 순환적 시간을 시간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이 순환이 영원히 반복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언젠가 끝을 맞이 합니다.


자연이외에 세상 모든 것의 공통점은 유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업도 당연히 언젠가는 끝이 있을것은 당연합니다. 직업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추세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의 인공지능, 로봇 등이 우리의 일과 직업에 대한 변수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애초에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우리의 직업을 종식시키는 파괴자로 묘사가 되곤 했습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빼앗는다는 말은 그러한 의도가 담긴 말이기 때문에 로봇과 인공지능에게 그러한 의도가 있을리 만무합니다. 


어쩌면, 먼 훗날 직업과 노동이 없는 삶이 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없는 삶의 의미를 어떻게 개인에게 부여할 것인가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입니다. 


결론은 일과 직업이 가지는 자신만의 근본적인 질문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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