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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회관과 도박장

퇴사후 재도전에 대한 20가지의 가이드

마을회관과 도박장

“블록체인은 건축기술이고, 그 블록체인으로 애초에 마을회관을 지으려고 했는데, 짓고 보니 판을 깔고 도박을 하고 있더라. 도박을 규제하려 하니 건축기술을 탄압한다고 항의하는 것과 같다.”

– 유시민, JTBC 토론 중 –


암호화폐의 열풍이 대단하다. 2017년 말부터 전 국민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단어가 되었다. 비트코인(Bitcoin) 투자하는 사람, 비트코인 투자를 고려하는 사람, 블록체인(Blockchain)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 소리 소문 없이 돈을 번 사람들의 인증과 목격담이 각종 투자 커뮤니티에서부터 일반 커뮤니티까지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2017년 말 투자 열풍에서 규제로 논란의 흐름을 바꾼 것이 1월 18일 자 JTBC 뉴스룸의 암호화폐에 대한 토론이었다. 규제 찬성과 규제 반대 측으로 2명씩 나누어 토론을 진행하였다.


규제 편에 있는 현재 가장 대중적인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는 유시민 작가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현재의 투기열풍을 화폐의 기능에 못 미치는 미숙한(실험적이라는 좋은 말도 있으나 실험치고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화폐를 가지고 가장한 투기판에 빗대어 공격했다.


최근에는 사기와 도박이라는 단어까지 쓰기도 한다. 블록체인과 문제의 발단인 거래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규제 반대 패널로 나온 측에서 발전하는 기술을 현시점에 제대로 평가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현재 시점에서 평가하지 말아 달라. 인터넷도 우리 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처음부터 완벽한 것이 어디 있냐?” 일견 수긍이 간다.


암호화폐는 당분간 기존의 화폐와의 전쟁을 벌일 것이다. 전열을 가다듬은 기득권을 가진 기존 화폐 진영의 공격에 의해 암호화폐 진영에서는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그 싸움이 잦아들면 서서히 실질적 가치를 활용하여 기득권 측에서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대중들에게도 서서히 받아들여질 것이다.


화폐란 애초에 사람과 사람 간의 약속이다. 초기 수용자를 비롯해 거품을 일으키지만 그 거품이 꺼지고 나서 실질가치에 대한 고민을 많은 사람들이 할 것이다. 한편으로 화폐의 다음 단계로 이 암호화 폐가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새로운 화폐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졌다.


핵심은 화폐보다는 블록체인에 있다.

블록체인이 어떠한 효용성과 생산성을 가져올지는 알 수 없다. 일반인이 주식투자하듯 열풍이 일어나는 것은 아직 그 효용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이르다. 아무래도 거래소의 수익모델에 대해서는 일반인이 오해하기 쉽다. 서부시대의 골드러시(Gold Rush)를 통해 돈을 번 사람은 금을 캐러 모여든 사람이 아니라 청바지 파는 사람만 돈 번 것처럼 말이다.


거래소 시스템은 블록체인 기반이 아니다. 보안 이슈도 다른 시스템과 다를 게 없다. 제도권 내의 금융기관처럼 아직 아무런 콘트롤타워도 없는 상태에서 세력에 의한 장난질, 가치에 대한 근거 없는 급격한 변동성에 의해 도박에 가깝지 않은가.


인터넷 그 자체는 기술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마을에 1차선 도로가 생겼다. 이에 현실의 비즈니스들이 짐을 싸 들고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생산, 유통, 판매 등)이 인터넷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지금과 유사한 러시(Rush)가 있었다. 인터넷이라는 도로는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하고, 중간에 휴게소가 생기고, 우회도로가 생겨 그 부근에 마을이 생기는 식으로 생태계가 발전했다.

신기술에는 항상 새로운 장을 열기까지는 거품을 동반한다.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거품은 인정하지만 청년들의 희망을 담보로 뛰어드는 것까지 국가가 방관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


블록체인을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의해 어쩌면 지금까지의 디지털 경제가 다시 정의될 수도 있다. 개인 간 거래비용을 절감하여 새로운 영업기회 창출, 저렴한 수수료의 송금, 개인 간 대출, 사업자금 조달을 통한 창업, 그리고 금융위기 같은 중간자의 농락 등에 대한 예방 등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단기 투자를 통한 돈벼락이 아니라 블록체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야 하는 때이다.


중간자에 대한 불신

한 회사가 있다. 회사의 최종 의사결정은 사장이 한다. 그러나 구성원이 많아지고 모든 의사결정을 사장이 할 수 없어지면 중간자를 두게 된다. 사장은 부서별 부서장을 선발하고 그 위로 임원을 두어 의사 결정하는 계층적 구조로 회사를 정비한다. 


사장은 부서장과 임원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고, 부서장과 임원은 사장의 신임(신뢰와 임무)을 통해 사장이 직접 소통하지 못하는 구성원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일을 한다. 이렇게 현실의 조직이 탄탄해지면서 피라미드형의 조직이 세워진다. 기술적으로 현재 인터넷을 통한 대부분의 시스템이 이와 유사하다.


오프라인의 무수한 섬에서 인터넷이라는 바다를 거쳐 대륙에 도착한 초기의 이민자들이 만든 시스템은 중앙의 서버(Server)와 단말(Client) 사이의 서버 클라이언트(Server-Client) 네트워크 구조다. 이 구조에서는 서버를 구축하여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와 그것을 이용하는 구조로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로 이원화(二元化)된다.


점차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요구하는 것이 늘어나면 서버의 기능 역시 비례하여 거대해진다. 이에 중앙 서버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을 분산화하기 시작한다. 이때 중간자(Middle Man)가 필요해진다. 중간자는 서버를 중심으로 서버 기능을 분산하여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서버 등으로 중앙 처리를 분산처리한다. 이를 미들웨어(Middle Ware)라고 통칭한다. 기능이 많아지고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서버를 중심으로 피라미드 방식으로 미들웨어를 계속해서 늘린다.


현실에서도 조직이 커지고 정점을 중심으로 계층화(Tier)되는 것은 비슷하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구조화의 유형이다. 이를 공격하는 해커 입장에서는 중앙을 공격하다가 미들웨어를 공격하기도 한다. 미들웨어를 타고 중요한 데이터베이스를 공격하는 것처럼 현실세계에서는 중간자로부터 문제가 생긴다. 이를테면 사장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부장이라는 중간자(Middle Man)가 개인의 사적 욕망을 추구하는 데 사용한다. 현실의 미들웨어인 중간자는 탐욕이 있는 인간이다. 사람은 스스로 시스템을 해킹하는 존재인 셈이다. 이러한 일이 2008년 세계 금융의 한 복판에서 일어났다.


중간자에 대한 불신이 시작되었다

금융거래에서 거래자는 신뢰를 가진 제3자가 필요해진다. 양측이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가 교환의 행위를 일일이 다 기록하고, 필요할 때마다 장부를 양측과 함께 확인해줘야 한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이 중간자를 믿고, 장부를 개개인이 보관할 필요가 없다.


국가가 개입되고, 중앙은행이나 기타 보증기관 등이 신뢰를 보장한다. 이게 반복되면 중간자의 신뢰는 기득권을 가지게 된다. 금융으로 세계화를 이룬 월 스트리트(Wall-street)에서 금융위기라는 모습으로 그 중간자들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났다. 투자라는 이름으로 그 중간자들은 숫자와 정보를 조작하여 막대한 부를 챙기고,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때 터진 사건이었다.


금융은 숫자로 되어 있고, 숫자는 디지털로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다. 금융업은 인터넷에 의해 가장 발전된 분야이고,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기존의 산업일 것이다. 현대의 금융업 자체가 핀테크(FinTech)인 셈이다.


사토시라는 익명의 존재가 자신의 생각을 커뮤니티에 올린 것이 바로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바로 금융의 투기에서 결국은 폭발했다. 금융 산업이 중앙화 되어 기득권을 가진 중간자(Middle man)의 기만(奇巒)에서 촉발된 것이다. 아마도 이 사건을 통해 블록체인을 열심히 공부하던 사토시는 아마 이랬을 것이다.


“믿을 놈이 없다. 자본주의를 뒤엎지 않더라도 뭔가 다른 방식으로 거래를 해야 한다. 중간자가 끼어들 수 없게 해야 한다. 거래장부를 중간자가 아닌 참여자들의 신뢰에 기반해야 한다. 아예 원장부는 누구도 수정할 수 없게 하고, 사본을 만들기 어렵게 아주 아주 잘게 쪼개고 그 잘게 쪼갠 조각에 암호까지 넣어서 장난질 못하게 만들자. 그렇다. 이런 기술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있었지. 이 기술과 P2P 네트워크상에서 모든 자산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규약을 만들자.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화폐라는 이름의 Cash라고 붙여보자”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당시 금융권의 부패에 의해 발생된 사태에서 대안으로써 환영받고, 그 이상(理想)을 개발자들에 의해서 시스템으로서 형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경계를 싫어하고 통제에 저항하는 분위기는 서버-클라이언트 네트워크가 아닌 클라이언트들이 이용자가 아닌 참여자 중심의 시스템이 필요했다. 중간에서 기만하고 착취하는 중간자(Middle man)의 존재에 대한 불신이 탈중앙화(Decentralized)된 시스템을 원하게 된 것이다.


P2P 네트워크에서의 중간자

개인(Peer)-개인(Peer) 네트워크에서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서버가 하는 일을 공동으로 하거나 그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블록체인 시스템에서는 전체를 모두 쪼개어 시스템에 참여하는 모든 개인에게 분산 저장한다. 그리고 시스템 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거래)은 개인에게 실시간(10분)으로 동기화한다. 여기서 분산 저장하는 정보가 모두가 맞다(동일하다)고 누가 확인해 준다.


이전에는 신뢰를 가진 중간자에게 그 사본을 받고는 확인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일일이 확인하는 절차(신뢰 프로세스) 누군가 해야 한다. 비트코인 시스템에서는 이를 채굴(Mining)이라 하고 이 들을 채굴자(Miner)라고 한다. 비트코인은 일에 대한 보상(Reward)인 셈이다.


서버-클라이언트 네트워크에서는 제공자와 이용자로 이원화된다면 P2P 네트워크에서는 참여자-참여자로 이원화된다. P2P 네트워크에서 시스템을 운영하는 방식은 참여자의 선의의 기여다.


P2P 기반의 파일공유 시스템인 토렌트(Torrent)를 예를 들어보자. 나는 내가 좋아하는 A라는 영화를 모든 사람들이 같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공유하고자 하는 파일을 토렌트 서버를 개인 컴퓨터에서 돌린다. A라는 파일을 인터넷 상에서 공유하고자 하면 나는 내 컴퓨터에 그 파일을 올려놓고, 토렌트 서버를 통해 토렌트 파일(Torrent)을 올리고 이를 배포한다.


이를 시딩(Seeding)이라고 하고, 시딩을 하는 참여자를 시더(Seeder)라고 한다. 이걸 통해 파일을 받은 사람이 다시 그 토렌트를 유지하고, 유지하는 참여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A라는 파일의 다운로드 속도가 빨라진다. 흡사 수백 마리의 개미들이 모여 슈퍼 울트라 개미가 되어 커다란 돌을 굴리는 것과 같다.


이에 A라는 파일을 토렌트로 다 받기 전까지 영화인지, 음악인지 알 수 없다. 파일을 다 받기 전에는 파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다. 파일을 받아보면 때론 위험한 음란물도, 바이러스 걸린 파일도 받을 수 있다. 중간에 받아본 사람이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원천적으로 이 리스크를 없앨 수 없다. 하지만 참여자가 충분히 감수할 만한 위험으로 인식되어 이 시스템은 아직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시스템은 얼마 안가 용도폐기되었을 것이다


기술보다 신뢰가 먼저

결제, 자산의 전송 등의 화폐기능을 지향하는 비트코인은 그럴 수 없다. 파일의 신뢰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누군가 처음부터 끝까지 실시간으로 일일이 다 확인이 필요하다. 이 번거롭고 힘든 일들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신뢰 프로세스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일을 채굴자가 한다. 비트코인은 토렌트와 달리 거래가 이뤄지기 전까지 이 거래의 장부를 시스템에 참여하는 모든 참여자에게 전송하고, 이 장부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 처음에는 선의로 기여를 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 필수적인 일들을 누군가가 선의로 영구적으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스템은 수고스러움을 자발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코인이라는 보상(Reward)을 만들어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마을회관의 우리 모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모임이다. 본인이 이 모임의 총무로서 열심히 잡다한 일을 했다. 내가 총무로서 회원들에게 연락하고, 장소를 잡고, 회비를 걷는 등의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 모임은 초기에 와해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처음에는 이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바라고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원들이 나에게 고마워 회원들이 합의하여 내게 ‘코인’이라는 조그마한 선물을 해줬다. 이 선물은 아직은 우리 모임에 내에서만 쓸 수 있는 것이다. 금융에서의 중간자의 일은 기득권을 가지고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비트코인은 누구나 채굴자가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채굴자는 시스템의 운영을 위해 선의를 가진 자라고 보았던 것 같다.


나는 선물 받은 코인을 굳이 팔 생각이 없었지만 정기적으로 총무인 내게 주어지고, 이 코인을 서너 배로 되팔아 주는 제3자가 있다면 어떨까? 거래소라는 이름의 중간자(Middle Man)는 이 보상을 이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 수고에 비해 비싼 금액으로 팔았다. 이 것을 사는 사람들은 아직 우리 모임을 알지도 가입하지도 않았다. 거래소의 수익모델은 이 선의의 수고를 변질시킬 가능성이 없을까?


블록체인이 바꿀 수 있는 것

플랫폼(P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시스템이 제공자-이용자 구조가 한층 굳건해졌다. 인터넷의 계층적 구조는 현실의 권력을 그대로 인터넷으로 가져왔다. 서비스 제공자는 수많은 이용자에게 플랫폼을 공짜로 서비스를 사용하게 하고, 이용자의 개인정보 데이터를 모은다.


그 데이터를 통해 부가수익을 얻는다.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등의 플랫폼들은 온라인 상의 서비스라는 땅을 무료로 사용하게 하면서 사용자의 데이터를 맘껏 모아서 활용할 수 있다. 상업적인 광고와 마케팅을 위한 자료로 되팔고 있다. 정교하게 정리된 데이터는 기업에게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매출을 늘려준다.


플랫폼의 본질은 중간자이다. 지금까지 모든 거래에서 중간자는 언제나 필요하며, 경제성과 신뢰 문제로 중간자는 다양하게 형태를 바꾸며 존재해 왔다. 플랫폼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지식과 사용자 데이터들이 플랫폼에 제공되고 있다. 만약 이 중간자가 덩치가 커지면서 탐욕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구글이나 네이버는 사용자 데이터를 가지고, 광고를 통한 광고 플랫폼이다. 그들의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정보제공은 그들의 의도에 맞게 배열되고, 조작이 가능하다. 생산수단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린(lean) 플랫폼으로서 우버나 에어비앤비를 활용하여 일자리가 창출되지만 노동의 질은 상당히 낮다.


공유경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우버(Uber)나 리프트(Lyft) 등도 자신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정보의 제공과 연결만으로 수익을 얻어간다. 공유경제라는 등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그저 데이터일 뿐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사용자는 자신의 데이터를 플랫폼에 열어준다.


블록체인 기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비트코인 때문이 아니다. 블록체인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자료의 분산 저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료가 집중됐을 때 발생하는 기득권을 견제하고 해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사용자 행동과 검색 데이터는 기업과 마케팅 회사에 가치가 있다. 이에 대해 사용자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우리가 플랫폼에서 검색하거나 광고를 클릭할 때마다, 광고를 게시한 우리의 정보를 제공하는데 플랫폼 기업들만이 수익을 얻어야 하는가 우리들의 데이터로 광고 회사가 돈을 버는 대신, 우리들이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블록체인의 기술을 받아들여 거래자의 직접 거래 등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s)은 중개자 없이 P2P로 쉽고 편리하게 계약을 체결하고 수정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블록체인의 특성을 이용해 금융거래, 부동산 계약, 공증 등 다양한 형태의 계약을 이해 당사자 간의 공유 네트워크를 통해 직접 거래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이더리움 블록체인으로 한 단계 발전했다고 해서 블록체인 2.0이라고 부른다.


가령 계약을 맺을 때 신뢰할 수 있는 공증인을 찾아가 다양한 절차를 거쳐 계약한다. 하지만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s)은 계약자와 피 계약자 모두의 동의를 얻어 계약 불이행 시 처벌규정 등이 자동적으로 이해관계자들에게 강제할 수 있다. 계약이 이행되거나 불이행 시 그 코드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조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이 시스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 동시에 알려진다. 한두 사람을 시간 격차를 두고 속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을 동시에 속일 수는 없다.


모든 중간자적인 플랫폼들은 블록체인 기반의 거래 네트워크로 분배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사회경제적 기술이다. 물론 모든 플랫폼들이 이용자들을 착취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으로써 동반 성장하려는 착한 플랫폼도 부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거대한 사회경제적 실험

미래에는 기술의 기하급수적 발달로 주거, 운송, 식품, 보건, 오락, 교육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제로에 가깝게 하락한다. 기술적 사회주의(기술이 생활을 책임지는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생활비가 무료가 되면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우리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소득을 얻기 위해 일할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레이 커즈와일 같은 전문가들은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를 옹호한다.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일을 적게 하게 될까? 그렇다면 미래의 일은 생계유지의 성격을 띠기보다 더 많은 창조와 지식 추구, 인간관계 등 지금보다 삶이 더 행복해지는 보다 고차원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 박영숙, 일자리 혁명 2030 –


이쯤에서 심리학 전공자로서 번뜩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바로 미국의 심리학자 B.F. 스키너이다. 본인이 심리학도의 밝은 꿈을 꾸고 있을 때 한물간 대세가 바로 B.F. 스키너의 행동주의 심리학이었다. 


개는 사료가 나오면 침을 흘린다. 사료가 나오는 시간에 계속해서 종을 울렸다. 수차례 반복한다. 이제는 사료를 주지 않아도 종소리와 함께 개는 침을 흘린다. 이를 “반응(Respondent Behavior)”이라고 한다. 음식이 아닌 종소리에도 침을 흘리는 조건화(Conditioning)가 된 것이다.


인간 역시 음식이 나오면 침을 흘린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에 계속해서 돈을 준다. 수차례 반복한다. 개처럼 돈을 주면 침을 흘릴까? 개와 인간은 좀 다르다. 돈을 주면 침을 흘리진 않더라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상상하며 음식보다 돈을 더 원하게 된다. 이를 조작 행동(Operant Behavior)이라 한다. 조작 행동은 어떤 유기체가 능동적으로 환경에 작용을 가하는 행동을 말한다.


스키너는 보상과 반응 사이의 (조작적) 조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스키너는 ‘좋은 결과물’을 제시함으로써 행위자가 그 결과물을 얻는 행동을 하도록 ‘강화(Reinforcement)’시켜 인간의 행동을 유도/교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가 아이에게 어떤 좋은 행동을 기대한다면 그 아이가 좋아하는 상을 보상으로 주어 아이의 행동이 나타나는 비율을 높일 수 있다. 다만 개처럼 반응행동이 고착될 수 없으니, 사람의 특성에 맞게 강화 스케줄이 필요하다.


그의 이러한 신념에 이러한 행동주의에 의거한 유토피아를 소설로 그려냈다. 바로 스키너가 지었던 소설에 나오는 ‘웰던 투(1948)’의 소규모 공동체 실험이다. 이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누구나가 일을 해야 한다. 자산에 의한 불로소득이라는 것이 없다. 누구나가 평등하게 하루 4시간의 일을 하고, 1시간당 1점의 노동 점수를 받는다. 노동 점수는 0.2점에서 2.5점까지 난도가 높은 일도 있고, 낮은 일도 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자 한다면 난도가 높은 일을 하면 된다. 일정 노동 점수를 채우고 나서 그러고 나서 그들은 충분한 여가를 즐긴다. 비 효율적인 일들은 제거하고 모두 효율화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노동의 보상시스템에 의해 공동체에서는 원하는 생산은 충분하게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생산이 1이라고 하면 이 생산을 통해 2~3의 서비스가 창출된다. 이러한 노동 점수 등을 이러한 블록체인 기반의 화폐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총무일을 통해 모임이 유지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일은 그다지 많은 일이 필요하지 않는다. 그 일을 누가 자발적으로 아무 보상 없이 지속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보상을 공동체 안에서 통용되는 화폐 형식으로 공동체가 발행할 수 있을 것이다.


화폐가 다른 지역의 자원을 이동시키는 수단이 아니라면 공동체에서의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공동체 내에서 교환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상은 실제로 진행 중이다. 기사를 검색하면 몇 년 전부터 지역화폐를 비트코인과 연계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의 지역구인 노원의 NOWIN, 서울시의 서울 코인 등으로 지방 자차단체에서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엔미래보고서 시리즈로 잘 알려진 박영숙 씨는 미래에서는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한다.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구글의 레이 커즈와일도 미래에는 앞으로 새로운 인류가 탄생할 거라 한다. 로봇과 AI가 공동체가 필요한 생산을 대신한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노동에 참여한다면 불필요한 노동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스키너가 공학자로 현대에 살았다면 그는 아마 로봇과 AI를 기본 DNA 자체를 인간을 대신하여 필수적인 노동을 하는 존재로 종(種)을 설계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하기 싫어하는 일만 하는 존재가 된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가축을 기르게 된 것도, 같은 인간을 노예로 부린 역사를 가진 것도 이러한 가정이 황당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먼 훗날 인간과 로봇이 일자리를 놓고 다투려 했다는 이야기는 전설이 될는지 모른다.



가장 행복한 사회

– 에릭 매스킨(Eric Maskin) 프린스턴대 교수/2007년 노벨 경제학상/ebs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스키너가 정의하는 “가장 행복한 사회”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사회다. 이를 위해 첫 번째는 공동체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수요를 최소화한다. 두 번째는 공동체 운영의 필수요소의 작업을 효율화한다. 세 번째는 불합리하게 남아도는 노동을 꼭 필요한 수요의 생산에 투여한다. 이를 통해 스키너는 개인의 노동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는 스키너의 소설 ‘웰던투’에 감동받은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공동체 생활을 시도했다. 워싱턴에서 남쪽으로 약 2시간 거리, 버지니아의 리치먼드와 샬롯스빌 사이에 트윈 오크스(Twin Oaks Community) 공동체이다. 이들은 현재도 이러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 실험이 성공적이었을까? 트윈 오크스의 생활을 묘사한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낮에는 열심히 농사짓고 해먹(hammock, 달아매는 그물침대)을 짜고, 두부도 만든다.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는 언제나 마을 사람들과 노래와 놀이 춤추기와 토론회, 그리고 다양한 축제를 벌인다. 조용히 연못가를 거닐기도 하고 조그만 강을 따라 카누 타기를 즐긴다.

저녁 무렵에는 산들바람 부는 언덕 위 나무에 매여있는 해먹에 누워 반짝이는 별들을 쳐다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산속 깊숙이 초막을 만들어 조용히 밤의 고요함과 야성을 느끼기도 한다. 백여 명이 함께 밥을 먹고, 탁구를 치기도 하고 게임도 하며 영화를 보기도 한다.”

_유정길, 2007


일반적인 도시인에게는 와 닿지 않는 풍경이다. 하지만 조금만 뒤돌아 보면 이러한 공동체가 아니더라도 국내에서도 귀농귀촌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현재의 화폐는 모든 재화의 물류를 중간자를 통해 도심으로 끌어 댕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서 말한 지역화폐는 도시 집중형 경제를 다소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의 시작은 중앙집중 권력에 대한 저항과 탐욕에 대항하여 코드로 짠 스키너의 공동체 실험 같은 것이 아닐까. 그들이 꿈꾸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신뢰를 기반한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한 새로운 세상일 것이다. 우리는 아마 그때가 되면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서 사는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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