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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Aug 16. 2020

먹는 기록


2015.08. London


나는 좀처럼 식도락가가 되지 못한다. 늘 맛을 표현하는 것이 서투르다. 비교적 다양한 세상의 음식을 체험할 행운이 있었음에도 직업적으로 그 유익을 잘 누리거나 발휘하지는 못했다시간이 지나면 맛에 관한 기억은 쉽게 흐릿해지는 듯하다. 아니 먹을 때에도 온 신경이 주변부에만 가 닿아있으니 지엽적인 관심은 혀가 느낀 감각을 늘 훼방 놓기 일쑤다. 대게 어떤 식사를 기록해둔 노트를 찾아보면 맛에 대한 설명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더러는 음식에 대한 기록인데도 맛 이야기가 거의 없다.


2019년 9월 나폴리 구 시가지에서 처음 먹은 나폴리식 피자는 "점심에 먹었는데 저녁에도 먹고 싶은 맛"으로, 2018년 8월 교토의 한 목조 주택 안에서 작은 정원을 바라보며 먹었던 오반자이(교토식 집밥으로 밥과 국을 기본으로 한 소박한 상차림)는 "접시에 담긴 여름날의 선명한 계절감이나 따뜻한 위로감"으로, 2017년 9월 파리에서 가장 주목받던 파티시에의 디저트는 "허무할 정도로 가벼운 맛은 금세 사라지고, 그 표현만이 입 안에 남아있다. 아! 사치의 본질이 이것이구나" 하고 감탄하는 식이다. 


뒤이어 공간과 사람에 대한 좀 더 적나라한 기록들은 확실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티가 팍팍 난다. 이것은 의. 식. 주를 서로 뗄 수 없는 하나의 협주곡으로 이해하는 관점의 소산이면서, 늘 시시콜콜한 사람 사는 사정 따위에 관심을 두는 나만의 취향이다. 맛에 대한 혀의 생리적 반응 위에 주위 환경에 감응하는 심리적 감상을 얹어서 갈무리하는 식으로 기록되고, 소화시킨 지 오래된 음식을 그날의 상황이나 분위기를 곱씹으며 말로 토해내면서 작은 디테일까지 소환하는 식으로 활용한다.


언젠가 "좋은 식사란 무엇인가?"라고 누가 물으면(실제로는 아직까지 누구도 물어보지 않지만) "기억에 남는 식사"라고 대답하려는 심보가 있어서 늘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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