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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Aug 16. 2020

터무니 있는 삶

2017. 04. 부산 © Yolanta C. Siu

밥 짓는 삶을 계속 마주하다 보면 '짓다'라는 말을 한 번 톺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말 '짓다'는 동사 하나로 밥, 옷, 집뿐 아니라 농사와 시까지도 다 만들 수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기본 되고 기초되는 것들을 생산하는 동사 '짓다'는 인간의 '삶'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어를 수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짓는 행위는 기술이나 예술 이전에 인간의 순수한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전쟁 이후 우후죽순으로 번식하듯 제 손으로 지은 집 모인 달동네나, 손수 짓거나 동네 사람들 품삯 받아지어 주던 조선옷, 미군 부대가 공급한 밀로 지어먹던 수제비는 모두 그런 필요에 의해 지어져 어딘지 애잔한 원초적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자체로 더하고 뺄 수 없는 완벽한 모습이기도 하다. 역사적 맥락을 모두 배제하고 전위적인 예술 창작이나 이익을 위한 경제수단으로써만 지어진 수많은 상품은 조악하게 덧대어진 단순 사치품으로 전락하기 쉽다. 이것들은 대게 소비자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시장 내에 생존경쟁에서 부지불식간에 밀려난다. 


프랑스 용어 중 '떼루아(Terroir)'는 통상 와인의 향과 맛을 설명할 때, 그 포도가 자란 토양과 미생물을 비롯한 모든 환경을 총칭하는 단어다. 우리말로 그 의미를 표현하는 일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는데 어느 날 건축가 승효상이 고유의 건축 스타일을 갖기 위해 지어낸 단어 중 지문(:Land-Script) 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문자 그대로 땅에 쓰는 글자다. 그에게 건축은 땅에 새기는 흔적이며, 평생 변하지 않는 무늬 같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땅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속성과 모양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건물을 짓겠노라는 선언이기도 했. 그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터무니'라는 단어를 짧게 설명하고 지나쳐 갈 때 비로소 떼루아를 온전히 한국적으로 표현해 낼 힌트를 얻은 것 같았다. 터무니없는, 무맥락의 껍데기뿐인 제품과 서비스 상품들을 타파할 하나의 이정표가 생긴 것이다.


어떤 상품의 지음새를 보면 그 물적 형태 안에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특정한 환경(터무니)이 사람이나 기계의 기술적 공정과 관계하며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아니 그 과정을 이해할 때에만 비로소 제 가치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음새라는 말보다는 '솜씨'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는데, 손을 놀려 무엇을 만들거나 어떤 일을 하는 재주를 나타내는 '솜씨'는 글솜씨 말솜씨를 비롯해 창의적 활동 전반에 쓰이는 언어이면서 늘 주체가 숙련된 사람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의 제한적 환경 속에서 예리한 선과 각을 갖고 난 것보다 조금 구불하더라도 손으로 만든 것 같이 둥그런 각과 강약 있는 우아한 선이 그어진 태가 내포하는 완성도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또 사람의 온기가 담겨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가 인지하는 무게가 다르다. 좋은 것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좋은 것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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