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세유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나폴리의 자매라고 소개했지만 개인적으로 값싸고 맛있는 피자에 대한 열정 말고는 닮은 점을 찾기 어려웠다. 어느 쪽 피자가 맛있었는지는 여기서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나폴리도, 마르세유도 마피아가 유명한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대규모 아파트 밀도가 높은 마르세유의 전경을 언덕 위에서 바라보니 차라리 한국인인 내게 친숙하다. 나는 주상 복합 아파트의 효시라 불리는 한 건축가의 못다 이룬 꿈을 그 청사진 만이라도 엿보고자 이곳에 방문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의 웅장한 콘크리트 건축물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거석상처럼 제 자리에 앉아 닳아가고 있었다. 전쟁 직후에 그려진 유토피아였기 때문인지 구석구석 잔혹한 아름다움이 어려있었다.
나는 평생을 5층에서 30층 높이의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어려서는 아파트라는 게 참 커다랗게 느껴졌다. 한 개의 동이 하나의 세계처럼 보였으니까. 나이가 들면서 평수에 관계없이 아파트라는 것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내게 견딜 수 없이 작은 것이 되었다. 이렇게 변덕스러운 가치관이 모든 걸 섬세하게 측정해 낸 유명 건축가의 '휴먼 스케일'과 조화를 이룰 리 없다.
인정사정없이 아파트가 들어선 언덕들을 쏘다녀보니, 꼿꼿이 살아내는 삶의 터전들이 밉지만은 않다. 뻔뻔하게 기념비적인 건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파트들이 어느새 귀엽기까지 하다. 사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있는 것이라면 아파트가 아니라 무엇이라도 아름다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