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애를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는가
How I Came to Recognize Disability
[이 글은 <장애를 지닌 아동이 주인공인 동화책 출판 프로젝트, '눈먼 고양이 이야기'>의 집필 배경과 출판까지의 여정을 그린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제 안의 편향된 시각과 비뚤어진 마음도 가감없이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보통 사람의 작지만 꾸준한 노력이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함께 궁금해하며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This essay is an autobiographical account of the background and journey to publishing the children's book project "The Story of a Blind Cat," featuring a child with a disability as the protagonist. I have strived to candidly portray my own biased perspectives and skewed thoughts. I hope you will read it with curiosity about how the small but persistent efforts of an ordinary person can influence our society.]
동화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내가 가장 먼저 '장애'라는 개념을 인지하기 시작한 시점이 언제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게 남아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장애와 연관된 기억은 유치원을 다니던 무렵 나를 예뻐해 주시던 경비실 아저씨와의 추억이다.
Upon deciding to write a children's book, I pondered when I first started to recognize the concept of "disability." My earliest memory related to disability dates back to my kindergarten days, with fond memories of a security guard who was kind to me.
집에서 노는 것보다 어디든 쏘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동네 친구, 놀이터 친구로도 모자라 아파트 경비 아저씨의 근무지까지 처들어가서 무작정 놀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하면 업무 중에 자꾸 찾아와서 종알대는 어린 아이가 귀찮았을 법도 한데 항상 아저씨는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아저씨가 귤을 나눠주셔서 함께 까 먹었던 기억도 있다.
As a child, I preferred wandering around rather than playing at home. I would often intrude into the security guard's post at our apartment complex, in addition to playing with my neighborhood and playground friends. In hindsight, it might have been annoying for him to have a chattering child visiting him during work, but he was always kind to me. I even remember him sharing tangerines with me.
그 아저씨는 이상하게 엄지를 뺀 다른 손가락의 손톱이 없었고 손가락의 마디도 한 마디씩 짧았다. 그런데 나는 어려서 아저씨의 손가락이 '조금' 다르다고만 생각했지 그 다름을 장애의 범주에 넣을 생각은 해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신기해서 자주 쳐다보기는 했던 것 같고, 부모님이나 아저씨에게도 의문의 눈빛을 보냈던 것도 같은데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장애라는 단어를 초등학교에 가서나 알게 되었으니, 그 다름을 뭐라고 하는지 내가 묻지 않았거나 어른들이 가르쳐 주시지 않았던 것 같다.
The security guard had unusually short fingers with no nails except for his thumbs. As a child, I noticed his fingers were "a bit" different but didn't categorize that difference as a disability. I might have found it curious and stared often, possibly sending questioning looks to my parents or the guard, but the details are fuzzy. I didn’t learn the term “disability” until elementary school, so perhaps I never asked, or the adults didn’t teach me.
어렴풋이 생각하건대 어린 나는 그 다름을 굳이 정의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허벅지에 보기에 도드라지는 (솔직히 말하면 보기 싫은) 큰 검은 점이 있었는데 그 다름을 딱히 뭐라고 정의하지 않았으니까, 그럴 필요 자체를 느끼지 못한 것 같다.
In my vague recollection, I didn’t feel the need to define that difference. Since birth, I had a prominent (honestly, unsightly) large black mole on my right thigh, and I never felt the need to define that difference either.
아주 나중에 커서 돌이켜보며 그 아저씨의 손가락은 과거 상처의 잔해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건 내게 잊고 살만한 소소한 다름이었다. 그는 어렸던 나를 놀리고 괴롭히며 좋아했던 못된(?) 어른들과는 달른, 내게 친절했던, 정중한 신사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Much later, I could guess that the security guard's fingers were remnants of past injuries, but it was a small, forgettable difference to me. He remains in my memory as a courteous gentleman who was kind to me, unlike some adults who enjoyed teasing and bothering me.
반면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을 장애라는 분류에 넣고 비하 혹은 동정의 시선을 던지도록 만든 곳은 초등학교였다. 그곳에서 나는 내 기준 '착하지만 말을 잘 못하는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애자>라며 놀리는 아이들을 만났고, 그런 상황에 침묵하고 동조하는 법을 배웠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장애자의 줄임말로, 바보 같은 친구를 놀릴 때 사용하거나 실제 장애를 지닌 친구를 괴롭힐 때 내 시절 아이들이 쓰곤 하던 말이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0037662?sid=111)
Conversely, it was in elementary school where I learned to classify physically disabled people and view them with contempt or pity. There, I encountered children who bullied or mocked "nice but inarticulate friends," calling them names like "Ae-ja" (a derogatory term for the disabled). I also learned to stay silent and conform in such situations. For those unfamiliar with the term, "Ae-ja" is a pejorative used by children of my time to tease those with disabilities or those perceived as foolish.(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0037662?sid=111)
아이들도 미성숙했지만 그 시절에는 내가 있던 지방의 학교에서는 교사나 부모들의 생각도 지금만큼 성숙하지는 못해서 종종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그 말을 (뜻을 알고 쓰셨던 모르고 쓰셨던) 인용하는 선생님들도 있었고, 부모들도 자녀들의 언행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일도 종종 있었다. 물론 집에서는 바르고 고운 말을 쓰는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는 저급한 말들을 쏟아내는 작은 악마였다는 사실을 아는 부모도 드물었다.
Children were immature, and so were the teachers and parents in my provincial school back then. Some teachers even used the term (whether knowingly or not) to blend in with the kids, and parents often didn’t pay much attention to their children’s behavior. Few parents realized that their polite children at home turned into little devils at school using such vulgar terms.
철이 들고 사회도 성숙해 지면서 더는 그런 말을 듣지 않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하루는 뉴스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그 단어를 문제에 사용해서 논란이 되었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다.
https://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6381534_35673.html
As society matured, I thought such words had disappeared. However, one day, I saw a news article about an elementary school teacher causing controversy by using that term in a test.
그때는 혀를 차고 말았던 일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초등학교는 내가 장애를 인지하고 장애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나 생각을 갖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At that time, I merely clicked my tongue, but now I realize that elementary school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shaping my awareness and perceptions of disability.
'다르고 약한 친구들을 장애인이라고 부르고 애자라고 놀리는 거구나. 저 친구들과 가까이하면 나도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구나.' 그런 것들만 배우고 그 친구들과 내가 어떤 점이 비슷한지, 어떻게 하면 함께 재미있게 놀 수 있을지, 그 친구들을 괴롭히는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지를 배우거나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I learned to call different and weaker friends "disabled" and mock them as "Aja," learning to avoid befriending them to escape bullying. I didn’t learn or think about how we were similar, how to play together happily, or how to stand up to those who bullied them.
그건 내가 아마 장애를 지닌 친구들에게 애정이 없었기 때문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친구들을 애정으로 보살펴 준 선생님, 학부모, 어른들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많이 배우니까.
Perhaps I lacked affection for friends with disabilities, but it was also because there were no adults—teachers, parents—who showed such affection and care. Children learn a lot by watching adults.
때로는 분류가 사람 그 자체를 잘 안 보이게 만들 때가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그런 현상이 심해서 그 사람 자체를 보기 보다는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에 그 사람을 가둬두고 내려 보다가, 또 '서울대'나 '하버드'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다시 또 그 사람을 올려 보다가 하는 재미있는 일이 많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재산, 학벌, 지위, 장애 여부 등으로 분류하는 법, 또 그걸 기반으로 서열을 만드는 법을 배우기 때문인 것 같다.
Sometimes, categorizing can obscure the individual. In Korean society, this tendency is particularly strong, often locking individuals into categories like "disabled" and looking down on them, or elevating them when tagged with "Seoul National University" or "Harvard." This happens because we learn to categorize people by wealth, education, status, and disability from a young age, and create hierarchies based on those categories.
비통하게도 나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나 무비판적으로 그런 서열 문화를 받아들이며 살아왔었지만 앞으로 이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아이들 역시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보기를 바라는지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런 수직화된 인식 체계로 인해 내가 혜택을 보고 이득을 본 적도 많지만, 그 덕분에 사람을 보지 못하는 안하무인으로 산 적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는 엘리트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그게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I, regrettably, grew up in such an environment, uncritically accepting this hierarchical culture. But if asked whether I wish for future generations to view people this way, I would answer no. Though I have benefited from this vertical perception system, it has also caused me to live arrogantly, unable to see people for who they are, and I've seen many elites think similarly. And now I know that such a mindset does not foster a happy society.
세상의 모든 분류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차별을 위한 분류가 아니라 더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한 분류가 되어야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눈먼 고양이 이야기>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고민해 본다.
Not all categorization is bad, but it should aim to understand and care for others, not discriminate. Reflecting on this, I consider the direction of the "Story of a Blind Cat" project, hoping it contributes to building a healthier soc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