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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Mar 10. 2024

[살갗의 인연] 무수한 나의 동료들을 향하여

모든 상사는 위대하다. 조만간 연락을 드려야겠다.

살갗의 인연


어제도 그제와

같은 이별을 했을 뿐인데

나의 달라짐이

그 하루치만큼 덜컥 다가옵니다


내 피부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인간모양의 패턴임을 알 수가 있죠


맞닿은 부분을 떼어봐야

물든 면이 보이는 것처럼


헤어져야만 느낄 수 있는 당신


내가 이만큼이나 당신을 닮았더라고

자기애와 고집과

일부분의 가치관까지도 옮았더라고


너무 다른 모습에 놀라면서도

그 모든 비교는 닮음을 전제로 했었더라고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그러나 피부처럼 점처럼

이미 내 안에 흡수되어

기어코 나를 만드는

살갗에 무수히 남은 인연의 온기


지나지 않아 지니게 된

섞이지 않는 핏방울

당신의 영혼 한 방울



’욕하면서 닮는다‘라는 말이 있다. 벌써 사회생활을 한 지도 10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선배를 만났고 또 관계를 맺은 이들이 많다.


평균 2~3년의 텀을 두고 이직을 했지만 최근까지 다닌 회사는 만 4년을 채우고도 며칠을 더 다녔다. 그동안 떠나보낸 상사와 팀원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상실감과 상념이 많기도 했지만, 그들을 따라 나도 다른 곳에 몸 담가 보니 다르게 다가오는 관계의 중요성이 또한 있다.


절대 전 회사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상사가 있었다. 그녀는 능력이 좋았고 철저히 능력주의적인 면이 있었다. 그래서 과도하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경우에도 회사 차원에서는 용인해 주는 면이 있었다. 그것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조직원이 있었고 문제제기를 한 이도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이 나쁘게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때로는 상사의 막무가내가 팀원에게 아주 큰 동기부여와 배후가 되어줄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녀는 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장단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어느 정도 타협이 되는 지점에서 직장생활을 이어나갔다. 유난히 색깔이 짙은 자신의 성향을 인정받으면서 단점에 대한 목소리를 꾸준히 상쇄해 나가는. 어찌 보면 인생의 숙제를 일터 해서 해나가고 있는 바였다.


그런 그녀가 좋았고 그녀를 따라 기획하고 머리를 쓰고 글을 촘촘히 다져가는 일을 배우는 데 매진했다. 그러나 회사는 그런 그림을 그려나갈 삶이나 세상이 아니었다. 대표의 중압감과 시시때때로 변하는 기업 방침, 상황이 생겨났고 그녀와 나는 지칠 대로 지쳤다. 나도 그녀도 같은 시기에 퇴사를 생각했다. 내가 먼저 회사를 떠났고, 그녀도 한 달 뒤에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도 나름 4년을 다닌 회사였지만 그녀는 더 오래 몸을 담갔었다. 그녀의 행보에 놀라면서도 외려 나의 퇴사 소식에 놀라던 후임들의 표정을 떠올리며 비슷한 일이거니 했다. 언제나 생각은 상대적인 것이었다.


좀처럼 양파나 물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계절로 치면 환절기, 지인의 표현에 따르면 공기 중에 떠 있는 비닐봉지 같은 사람이었다. 색깔이 강하지 않고 상황과 분위기에 맞춰 그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 융화되는 능력은 있었지만 개인이 되었을 때는 철저하게 외롭고 알맹이가 없었다.


현회사로의 이직은 사실 전직에 가까웠다. 언론홍보를 맡으며 겉핡기식으로만 알아왔던 업무를 전문적으로 해내야 했다. 8년이라는 경력이 무색하게 신입사원처럼 메일 바디부터 컨펌받았다. 분명 물경력 취급을 받을 이력이 아닌데도 죄인처럼 스스로를 다스리고 들볶았다. 실망을 거듭했다는 사수의 진심 반 자극 반인 소리에 주말마다 잠을 설쳤다. 내가 잘못된 것도, 전회사나 현회사가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저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이고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앉게 됐을 뿐이다.


비교적 자유롭고 개인의 색을 존중해 주던, 나름 오랜 기간 머물러 고인물으로서 편하게 다니던 회사를 떠나 새로운 곳에 와서 클라이언트의 신박한 텃세와 구박을 받았다. 원래의 나 같았으면 자조와 우울에 한없이 갇혔을 법 한데, 웬걸. 나는 전 회사의 그녀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하며 가끔은 코웃음을 쳤다. 내 판단에 본인이 선을 넘었을 때도 꿋꿋하게 신념을 지켜가던 그녀였다. 그래서 나도 업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내 기준 너무나 같잖은 디테일’에 대한 실수가 있었을 때 자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생각을 했다. 세상엔 이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에 목매다는 사람이 있구나, 이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로 일하고 먹고사는 업계가 있구나...


공공홍보에서 사기업 홍보로 전직할 때 가장 걱정된 것은 업무 능력의 차이였다. 아무래도 보수적이고 제한적인 공공홍보를 하다 정글 같은 자본주의 세계의 사기업 홍보 시장으로 가면 내 능력이 못 따라줄 것 같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국가와 인권과 관련된 큰 일을 하다가 사소한 여론이나 주가 따위에 수백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우스운 상황을 견뎌내야 하는 건 생각지 못했다.


옮기고 보니 웬열. 그녀 같은 좋은 사수를 만나서인지는 몰라도 제안서나 업무능력에서 쫄 것은 하나 없었다. 다만 좀 더 가식이 필요한 세상이었다. 외려 상황의 우스움을 견디는 게 더 힘들었다. 보도자료에 단어 하나 바꾸겠다고 수시간을 들여 고민하거나 기자에게 보낼 카톡을 메모장에 여러 번 첨삭하고 보내는 일, 클라이언트에게 말실수를 할까 봐 지난 며칠의 메일을 몇 번 더 읽어보고 보내는 일, 미팅장소를 잡기 위해 2일 전에 머무는 장소를 여쭌 후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프라이빗한 3만 원 이내 맛집을 3개 추려 리스트를 보내는 일 따위의...


고백하자면 이제와 그녀를 추억하기에 그녀와 함께했던 당시는 부딪히는 일도 많았다는 거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포멀함에 부정했고 자기 스타일을 고집했다. 그런 그녀가 가끔씩은 고집스럽고 피곤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와 그녀의 습관과 사고방식을 빌려 생활하다 보니, 이렇게 짜치는 현실세계에 두 손두발 들지 않으려면 이만한 방법도 없구나 싶었다. 그녀를 담기엔 회사는 너무 작은 그릇이라 생각했다. 나도 지금은 같은 범주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쪼잔한 업무를 하며 쪼잔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 생각을 우선시하고 얼마 큼은 회사와 세상을 비웃는 태도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먼저 회사를 떠난 상사를 떠올리며 연락을 했는데 모든 루트를 차단한 이가 있었다. 내가 잘못한 점이 있었다. 그녀도 자신의 색을 가지고 어떻게는 직장생활을 이어나가던 이였는데, 그 색이 모두에게 나쁜 영향을 줘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불씨를 지핀 것도 나고, 그녀가 떠난 뒤 많은 것을 안게 된 것도 나고, 또 가장 많이 후회한 것도 나였다. 그녀가 떠나고 1년 간은 왜 그렇게 일할 수밖에 없었는지 매일매일 깨닫고, 닿지 않는 연락에 우는 밤도 많았으니까.


든 자리는 알아도 난 자리는 안다. 이 말을 넘어서, 왜 헤어지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얼마나 많이 닮았는지 알게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너를 닮아가는 건 나를 잃을 뿐이’라고 말하던 이소라의 노래가 생각나면서도, 길고 짧게 내게 영향을 준 많은 선배들의 영혼이 내 피부에 깊이 새겨짐을 인식하는 날들이다. 우리는 온기를 주고받을 만큼 손을 꼭 쥔 적도 없고 이제는 아주 멀어졌지만, 오히려 헤어지고 난 지금 그들의 영혼을 더 잘 느낀다. 피부 속에 그들의 지혜와 지식이 스며들어 36.5도의 온기 속에 함께함을 느낀다.


모든 상사는 위대하다. 나쁜 기억이 사라진 상사는 더더욱. 조만간 연락을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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