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yeon May 28. 2022

현실과 픽션 그 사이

조예은의 <칵테일,러브,좀비>를 읽고

<칵테일,러브,좀비>를 읽고

<칵테일, 러브, 좀비>는 그럴듯한 일상 소재에 좀비라는 픽션 한 스푼을 담은 소설이다. 소설의 첫 부분은 다른 가정 소설과 다름없이 다 같이 아침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일반 소설과 다른 점을 찾자면 가족 구성원 중 평범한 인물이 아닌 좀비가 한 명 껴있다는 점이다. 좀처럼 밥을 먹지 못하고 있는 좀비는 바로 주인공 주연의 ‘아빠’이다. 밥을 먹지 못하는 장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뉴스가 나오며 ‘좀비’라는 픽션의 설정값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스위트홈’ ‘부산행’ 등 좀비와 관련된 작품들이 유행처럼 자주 등장하는 이 시대에,  가끔 우리는 세상이 정말 좀비 판이 되면 어떨까?에 대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때마다 난 ‘아무리 가족이라도 죽게 내버려 두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라는 가벼운 생각을 종종 했다. 하지만 모두가 죽거나 극단적으로 치솟는 영화가 아닌 1차 감염자가 15명 밖에 안되는 <칵테일, 러브, 좀비> 세계관 속 좀비 사태는 오히려 침착하고 현실적인 마음으로 이야기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의 좀비 세계관이 너무 현실성이 없었다면, 이 설정값은 리얼리즘에 좀비 픽션이 딱 ‘한 스푼’만 들어간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좀 더 쉽게 이입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부산행   

<칵테일, 러브, 좀비>는 다른 좀비 세계관과는 달리,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가 붕괴되었다거나 멸망에 도달하지 않았다. 피해본 사람이 있다면 겨우 15명과 그의 가족들에 불과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연과 엄마는 아버지를 신고하지 않고 집 안에 가둬두는 결정을 하게 된다. 주인공 주연은 프리랜서 강사이고, 엄마 또한 수입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가장이었던 아빠가 없는 미래를 생각하기에 아직 준비가 안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좀비가 된 아빠를 보내주지 않고 집 안에 숨겨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마 엄마가 두려워했던 건 사랑한 남편을 잃는 것이 아니라, 남편 없이 살아야 하는 삶이었던 건 아닐까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죽은 좀비인데도 붙들고 살고 싶은 만큼 말이다.


아빠는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밥을 먹지 못해도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고, 4시까지 낮잠을 잤다.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을 제보받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엄마와 주인공은 신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먹어야 하는 좀비 습성이 발현되었고, 배고파진 아빠는 설상가상 자신의 딸인 주연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결국 주인공 주연도 좀비가 될 상황이 되자 엄마는 사설 업체를 불러 죽이기로 결단을 내린다.


이 장면을 보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요즘 상황이 떠올랐다. 지금은 어느 정도 펜타믹이 마무리되었지만, 초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일 때, 바이러스에 걸려도 직장을 계속 나가기 위해, 가족들에게 금전적으로 피해 주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 몇 명 감염자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주인공 가족과 같은 심정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주연과 엄마는 퇴마사 (사설 업체)를 불렀고, 본인들 손으로 아빠를 죽이게 되는 상황에 처해졌다. 살아있는 가부장제의 망령이자 좀비 아버지를 죽이기 직전, 엄마는 ‘끝까지 자식에게 민폐 끼치는 인간’이라며 마지막 말을 건네고 총을 쏜다. 끝으로 뉴스에는 바이러스가 발생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는데, 바로 국밥집에서 뱀 술을 먹다가 발생한 바이러스라고 말했다.

매우 허무했지만, 허무한 만큼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외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말을 바꾸는 회사, 위기를 틈타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 등 모든 이야기가 다 지극히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왜 항상 사고는 아빠가 치는데 고통은 남은 가족들이 받을까?

무거워질 수 있는 좀비 바이러스 소재에 평범하고 일반적인 대한민국 가정을 끌고 와 가부장제를 비판한다는 점이 매우 신선했다. 가족 중 아빠가 가장 먼저 걸리는 것도 리얼리즘 같았고, 좀비가 되어 밥을 먹지 못하는데도 습관적으로 밥을 차리는 엄마의 행동, 외출해도 잔소리할 아빠는 없는데 쉽사리 나가지 않는 엄마 등 설정 하나하나가 매우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설 속 아빠는 아마 뱀 술을 마시기 전에도 좀비처럼 일 - 술 - 집을 반복하며 살았을 것 같다


<칵테일, 러브, 좀비>는 가족 서사만이 살릴 수 있는 장점들을 아주 잘 보여준 작품이다. 가족 구성원은 내가 원한다고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감정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닌 연민과 증오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감정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잘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조예은'의 단편 소설집은 놀라운 상상력과 더불어 어딘가 음침하면서 서늘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소설집의 장점은 이야기를 읽어도 불쾌하거나 끈적이는 기분이 들지 않다는 것이다. ‘공포’ 뿐만 아니라 ‘슬픔’ 그리고 감동의 ‘기쁨’까지 감정이 든다. 좀비가 된 아빠를 거실 의자에 묶어둔 모녀의 심정은 괴로우면서도 두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총으로 아버지를 죽이게 되었을 땐 후련함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한 가지 감정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기분이 드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떠한 선택도 정답이 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