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기운의 값 목숨

감사(Feat. 신승훈 님의 <끝에서, 서로에게>, <내가 나에게>)

by 세만월

며칠 전 일본 친구들이 와서

김장체험을 하고 갔어요.


김장체험하러 일본 친구들을

청량리역에서 만나기로 한 그날


저는 그날 아침 청량리역에 일찍 와서

다음 주 있을 발제 ppt 자료를 만들었어요.

1시쯤 은행에 신청접수를 제출하려고

청량리역 근처 은행에 갔더니

영업점이 아니고 ATM기가 있더라고요.


허탈감에 다시 역사로 돌아가는 길에

길 한복판에서 하염없이 울었어요.

제어가 안 되더라고요.


발제 같은 조 동기에게

ppt 자료를 보내다가

전화해 울었어요.


나, 이제 그만 살고 싶어요.

나는 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끝이란 게 없어요.


청량리역 버스 환승센터 앞 건널목을 건너와서

한쪽 벽에 잠시 섰다.


선생님, 나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쌤, 내가 지금 들은 것만도 너무 많은 거 같아.

힘내란 말도 못 하겠어.

그래도 우리 힘내자.

여태까지 이렇게 해왔잖아.


한바탕 울고 나니 그래도 속이 풀리는 것 같아요.

고마워요. 쌤. 내 얘기 다 들어주고.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우리한테 얘기해.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라고

근데 안 좋은 소리를 매번 하기도 미안하더라고요.

근데, 어제오늘 제가 터져버린 것 같아요.


그러게. 그런 것 같아.

눈물 닦고. 길에서는 울지 마라.

마음이 아프다.


네.


이제 일본 친구들 만나러 가야지.


네. 덕분에 잘 시간 보낼게요.



일본 친구들은 김장 준비로

알타리, 갓 등을 채 써는 밑작업을 밤 12시까지 했다.

간을 맞추기 위해 당일 아침 어머니가 미리 만들어놓은

알타리에 진라면을 끓여

잘 갖춰진 한상차림 같은 것은 전혀 없이

찬밥까지 내와 맛있게 먹었다.


그들이 다 잠든 새벽

대모님에게 톡이 왔다.


친구들은 김장 잘했어요?

네.

다 자나요?

네. 제가 지금 전화드릴게요.

네.


대모님은 당신도 오늘 바빴다며 한 일들을 얘기해 주셨다.

구역 모임을 우리 집에서 해서 준비하느라 바빴어요.

끝나고 서울에 갔다가

나도 밤에 집에 왔더니 피곤하더라고.

근데, 우리 ○○이가 길에서 울고 다니는 걸 생각하니

내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

우리 ○○이 눈물은 언제 멈출까.


내가 비밀은 꼭 지켜줄 거니깐

걱정하지 말고 속 얘기 다 해.

내가 다 들어줄게.


감사합니다. 사실, 속 얘기 다 꺼내면서도

괜한 짓을 했나 후회하고 걱정했어요.

그런데 다 들어주시니 맘이 놓이고 좋아요.

저도 다 얘기하니깐 속이 풀리는 것 같아요.



일본 친구들이 오는 전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늦은 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집을 내려가는 길에

대학교 친구 중 유일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지금은 교회 사모면서 지역 아동들을 돌보고 있다.


OO아, 며칠 전 너 생일이었는데 연락도 못 했네.

생일은 잘 보냈어?

근데, OO아, 나 너무 지쳐.

이젠 정말 그만하고 싶어.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고 있어.

주님 잘 붙잡아요.


응. 그것뿐이 할 수 있는 게 없네.

톡으로 얘기할 수가 없어서

시간 날 때 톡 보낼게.


그래요. 언제든 전화해.

새벽이든 언제든.


투썸플레이스 뱅쇼와 케이크 쿠폰을 보내주었다.


추운 날 마시면 좋더라고.

고마워.



수업 과제로 50명의 설문을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수업 주제는 거의 먼저 교수님께 통과해 놓고는

그냥 손 놓고 지내다가 막바지까지 온 것이었다.


부랴부랴 설문을 작성했고,

전 직장 동료들, 석사 동기들, 박사 동기들과 재학생들,

같이 슈퍼비전 받은 그룹원들들에게

설문을 부탁하는 톡을 보냈다.


보내자마자

남일 아니듯 바로바로 설문에 응해 주어

하루 반나절 만에 모았다.


설문에 적극 임해주며

응원의 톡까지 넣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이 감동으로

내게 너무나 진하게 다가왔다.



선생님, 몇 날 며칠을 길바닥에서 울며 지내면서도

또 이렇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순간을

뭐라고 표현을 못 하겠어요.


힘든 일을 겪을수록

도움의 손길들이 너무 진하게 제게 와요.

그래서 또 울게 돼요.


울면서 시작한 교육분석을 마칠 때가 되었을 때는

논문 이야기로 끝을 내며

또 한차례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참 이상해요. 논문이나 학업 이야기를 하면

다시 제가 돌아오는 것 같아요.


나는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OO이한테 소화기가 있는 것 같아.

그것이 상담이고 논문이라는 게.

그리고 그렇게 빨리 설문을 부탁할 수 있는 사람들이

50명이나 있다는 게 OO이 재산인 거 같아.


네. 제가 부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감사했어요.



만약 사람들이 일본 친구들과의 한 컷

SNS 상의 한 컷만 보면

나는 꽃밭에 있는 사람일 거예요.


친구들 만나기 전에

길거리에서 울고 다니며

빨개진 눈시울을 가리기 위해

선크림을 바르고

그들을 만나러 약속 장소로 가고 있는 것은

그 사진에는 보이지 않을 거니까요.

그래서 SNS에 올려지는 컷 들에

휘둘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게 말이야.

참 그런 거야, 사는 게.


동기 선생님과 청량리역 앞에서 통화하며

웃프게 얘기했던 내용이다.



OO이랑은 전생에 엄마와 딸이었을까?

어떻게 그 오래전 내 논문을 이어서

OO이가 논문을 쓰지?

참 일부러 엮으려 해도 이렇게는 못 엮을 것 같아.


이렇게까지 인연인데,

나중에 박사 따고

나랑 같이 일 한번 하자.


제가 자격증도 따고

박사도 마치고..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지.

논문부터 신경 써.

자격증은 경력 쌓으면 되고.


네.


지금껏 생각해 봐.

OO이가 안정기가 아니라

모든 것이 다 불안할 때 전부 시작하게 돼서 그래.

그런데 하나씩 하나씩 정리가 되고 있어.


심장에 칼이 꽂혀 있는 것도

빼내는 데 아파. 그래서 시간이 걸려.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몸 안에서 실밥이 녹는 것도 있잖아.

그렇게 승화해서

치료도 하고 연구도 해.

그런 시간인 것 같아.


네.



통계를 돌려 과제 발표를 준비해야 하는데,

박사 동료가 1시간 반에 걸쳐

전화로 일일이 다 가르쳐주었다.

교수님이 원하던 자료값들은 다 구할 수 있었고

교수님에게 자료를 메일로 보낼 수 있었다.


다른 박사 동기가

통계를 다 돌리고 났을 때쯤

통계는 그분에게 배워서 다 돌렸어? 하고 톡이 왔다.

전화를 해서 박사 동료가 도와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렇게 고마운 걸 어떻게 갚냐.

상부상조하는 거지.

그래도. 그럼, 내가 그 쌤한테 배운 통계 프로그램

쌤한테 알려줄게.

그래, 그러자.



길바닥에서 울며 손님을 맞이할 수 있겠느냐며

걱정했지만,

그렇게 나에게 와준 일본 친구들에게

기운을 받았다.

감사했다.


제발 저희 고향 규슈에도 꼭 와요.

초대할게요.


청량리역에서 깊은 포옹을 하며 헤어졌다.

아이도 그들과 헤어지며 인사를 했다.


Good-bye 인사 말고,

See you soon이라고 우리 인사해요 하고

나는 웃으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요. 내년에 또 봐요.

일본 친구들은

어머니가 싸 준 김장 김치 한 통씩을

양손에 들고

눈인사로 몸으로

아이와 나에게 잘 가라며 인사했다.



그래, 신승훈 콘서트는 어땠어?


어린 시절 방 밖에서

아버지가 술 취해 집안살림을 부수고 하실 때

항상 신승훈 노래 들으면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어요.

아니면 신승훈 노래를 이어폰을 꽂고

옷장 안에 들어가 몇 시간 있다가 나오기도 하고요.

그렇게 밖과 차단하고 지냈던 것 같아요.

그랬던 가수라서...

신승훈 음악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와 같이 가서

공연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기차 시간 때문에 중간에 나왔지만

아이와 돌아가는 그 길이 너무 좋았어요.



엄마, 다들 오빠 오빠 하는데,

엄마는 왜 한대 놓고 안 했어?


그러게 막상 안 되네.


엄마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 어르신들도 여자 관객들도

신승훈 가수에게 '오빠', '오빠' 하는 게 징그러웠나 보다.


OO야, 할아버지 같아?

저렇게 보면 아저씨 같지?


아이는 씩 웃으며

할아버지지 하고 말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아이 역시 여러 일정을 보내느라 피곤한 것 같아

월요일 학원 스케줄을 전부 취소하고

청량리역에 가서 아이가 원하는 시간을 보내고

러쉬 매장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입욕제를 사서 집에 왔다.

역 중간에 아이가 좋아하는

떡볶이 집에 들러 어묵도 먹었다.


부부 내외가 하시는 역사 내 떡볶이 집인데

아이가 오면,

어, 왔어? 하며 반겨주신다.


아이에게

본인들 앞치마에 짬날 때 먹으려고 넣어놓은

초코바도 내주시고,

서비스도 많이 주신다.



감사함은 내 눈물이다.

감사가 내게 감사로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생의 무게가 경중이 없듯

감사함에도 경중이 없구나.

티끌 같은 것에도

우주를 집어삼켜 버릴 수 있는

기운이 있구나.


한 인간이 지닌 생명의 값어치는

거치고 거치고 거쳐

사람들의 모든 기운들이 거치고 거치는

보이지 않는 기운의 값이구나.

그래서 내게는 그것을 끊을 권리가 없구나.



같은 걸 잃어버린 사람들은 다

똑같은 슬픔을 안고 살게 될까

그래도 우리 이별의 끝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 어린 눈으로도 웃는 두 사람이 되자.

(신승훈 님의 <끝에서, 서로에게> 중에서)


아이처럼 꿈을 묻다 행복해지길

넌 항상 너의 편이 돼주길

세상에 떠밀려 오르막길 오르지 말고

다시 부딪힌 대도

가슴 뛰는 길을 걷기를

상처받느라 애쓴 널 안아주기를

잘 버텼다 다독여 주길

세상에 떠밀려 오르막길 오르지 말고

이제 너만의 길을 걸어가길

너는 그랬으면 해

이젠 그랬으면 해

(신승훈 님의 <내가 나에게> 중에서)

작가의 이전글이리 살며 덧없다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