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가 컨셉인 인생이라니

어디론가 자꾸 움직여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네요. 그건 바로 나.

by 김손소니

사주나 점을 그리 믿진 않지만, 어릴 적부터 내 사주를 볼 때면 언제나 포문을 여는 것은 '역마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초등 6년 간 3번의 전학을 시작으로 34년 인생 10번 이상의 이사, 해외거주 1년, 2번의 이직 등 확실히 늘 어딘가 정착에 가까운 삶은 아니었다.

하다 못해 최근 직장은 5년 가까이 재직하긴 했지만 2번의 파견근무와 차마 셀 수 없는 전국구 출장, 사무실 이전, 부서이동과 자리이동까지, 한 자리에 6개월 이상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 본 기억이 거의 없긴 하다.


내 인생의 수많은 이동 중 가장 빅이벤트는 아무래도 2016년, 공부와 일경험을 위해 캐나다로 떠났던 것이다.

당시 나는 대학교 졸업 후 취업 준비 중이었는데, 전공인 공학에는 영 뜻이 없었던 터라 승무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직업이 그냥 끌렸다.

어릴 때부터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만 봐도 설레는 마음이 있었던 나였기에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장래희망이었다. 특히나 다양한 곳에서 온, 수많은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비행기 안에서 운명공동체로 묶인다는 그 클리셰가 어쩐지 매력적이었다.

비행에서 승무원의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는 안중에 없었던.. 이 얼마나 무지몽매한 진로선택이었는가. 그러나 어쩌면 이 또한 '역마살'이 정해준 자연스러운 설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외항사를 목표로 한 시점이었으므로 언어 공부와 캐나다 항공사에서 실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기에 망설임 없이 떠났다.


거의 1년 간 캐나다에서 혈혈단신 실전압축해외경험을 하고 난 후 어린 마음에 너덜너덜해진 심신을 돌볼 길이 없었던 나는 한국으로 일단 돌아왔다.

그 와중에도 마음 한 구석에 다시 나가겠다는 열망이 숨어있었는지, 캐나다의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품에 안고 왔다. 한편으로 최대한 빨리 외항사에 취업을 하거나 어떻게든 나는 다시 떠나겠다는, 극한의 컨셉지킴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 내 맘처럼 흘러가는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한국 귀국 후 고작 2주 동안 벌어진 이런저런 일들 이후 현실적인 취업을 선택했고, 그로부터 9년 가까이 전공 관련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며 커리어를 쌓아오며 결혼을 했고, 지금까지 세상 누구보다도 성실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2026년, 10년이 흘렀고 나는 다시 캐나다 이주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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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 재미로 본 ChatGPT표 사주에서는 내 사주에는 물의 기운이 강해서 토착적 안정감보다는 움직임, 환경 전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역마가 약하게나마 존재하는 남편의 사주 또한 나의 영향을 받을 거라고.

남편과 나는 그걸 보고 그냥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운명의 영역인 거야. 믿거나 말거나. 우리가 그래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잖아. 그냥 맡겨보는 거지."


요즘은 남편과 매주 시간을 내서 Weekend Movie Night으로 명명하고 서로가 생전 선택하지 않을 것 같던 영화를 일부러 본다. 가끔씩 예상치 못했던 순간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에 대한 여러 인사이트를 얻게 된다. 이래서 사람은 낯선 것과 계속해서 마주해야만 하는구나 싶다.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

"Nothing just happens. It's all part of a plan."

"My mama said, you got to put the past behind you before you move on. I think that's what my running was all about."

- 영화『포레스트 검프』


가끔씩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을 땐 초콜릿 상자를 생각할 거다. 앞으로 어떤 맛이 있을지, 몇 개가 남았는지 궁금해지고 흥미로워지니까.

수많은 고민과 걱정에는 답이 없다. 뭐가 뭔지 모르겠고, 왜인지도 모르겠을 땐 그냥 달리는 거다.


우린 지금 막 출발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이 정말 운명이었음을, 이 선택이 옳았던 것을 증명해 내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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