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for Reading #3
메모 습관의 힘
신정철/ 토네이도
무질서하고, 불규칙적이며, 대중없는 기록자인 나이기에 방법론적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과 바람으로 집어든 책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저자의 '기록하는 삶'을 종종 들여다본 적이 있었기에 호기심이 발동되기도 했다. 메모가 습관이 된 배경과 오랜시간 저자가 터득한 방법론들이 대부분이겠지 싶어, 실은 처음엔 책의 내용이나 퀄리티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자기계발서류의 책을 향한 일종의 고정관념 발동이리라. 그런데 읽어나갈수록 하나의 큰 스토리로 엮어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읽는이로서 안심도 됐고, 반갑기도 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즐거운 여정이리라 생각되니 반가울 수밖에.
그는 '쓰지 않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p.19). 글을 잘 쓰고 싶고,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단 생각에서 시작된 이 기록의 여정이 결국에 그를 '쓰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이미 지난 해에 블로그 방문자 수가 100만을 넘었고, 책을 썼다. 마음 속 바람을 이루어낸 그에게 박수를! 그렇담, 대체 '메모'는 그에게 어떤 묘약이었을까, 마구 궁금해졌다.
책의 초반부에서 저자는 메모가 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실제 그의 노트 사진과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나 또한 (기록은 하지 않지만) 독서를 꽤 즐기는 편이라 독서노트에 대한 열망을 가진 지 꽤 오래인데, 늘 잔존하는 문제점이 있었으니 바로 '기억'이었다. 누구나 예외는 아닌가보다. 저자 또한 독서가인 듯한데 남기고 생각하고 기억하기 위해 메모를 통해 책과의 만남이 달라졌음을 설파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흥미롭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밑줄을 치는데, 그 밑줄 친 문장을 노트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그런 다음 그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을 다른 색상의 펜으로 적었다. 노트에 옮겨 적는 문장들 중에서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형광펜으로 밑줄을 쳐서 강조하고, 내용의 핵심 키워드를 큰 글씨로 써서 알아보기 쉽게 표시해두었다(p.21-26).
책에도 메모해보고, 스마트폰 메모장에도 기록해보았지만 늘 한시적인 이벤트로 끝이 났던 내 독서 기록의 습관에 불이 지펴졌다. 꽤 단순한 방법론인데 저자의 꾸준한 실천을 밑바탕으로, 내 생각을 적으며 작가와 소통하게 되니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누군가에게 책을 소개할 때도 내용을 놓치지 않고 자신감있게 할 수 있었다 한다. 세미나를 들을 때도, 팟캐스트를 들을 때도 메모를 하니 점점 모든 것들이 진정한 '나의 것'이 될 수 있었다고 하니, 나 또한 아니해 볼 이유가 없잖은가. 늘 그렇듯이 얼른 세미나도 듣고 싶고 팟캐스트도 듣고싶다. 왜? 기록하려고, 훗.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의 성향과 업무습관 덕분일까. 그는 2년 남짓의 노트를 정리하여 통계를 냈다. 2년 동안 총 328페이지를 썼고, 132개의 주제로 글을 썼으며, 블로그 글은 17편, 프레젠테이션 발표가 4건이었다(p.31). 브라보! 2년을 채우는 그 날이 내 인생에 온다면 반드시 따라해보리라. 삶이 고스란히 녹여져 있는 노트가 아닐 수 없다. 빅데이터 시대인 요즘, 정량 분석은 기본이고, '정성 분석'이 중요하다고들 하지 않은가. 2년 간의 메모 통계에 대한 정성적 해석을 해보자면 '기록하는 자 인생의 비포 앤 애프터'정도가 아닐까.
우리가 기록하고 싶은 진정한 이유가 무얼까? 나만이 간직하기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결국엔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싶기에 기억하고 싶고, 기억하고 싶기에 기록하는 것이겠지. 나는 그렇다. 내 생각을 전하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그 마음이 원동력 되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끄적인다. 이 내 마음을 저자의 말로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메모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이고, 질문하는 사람이다. 물음표를 가진 사람은 해답을 찾는다. 정보를 만들고, 자신이 만든 정보로 다른 이에게 느낌표를 안겨준다"(p.73). 그렇다, 내가 누군가에게 안겨주고픈 게 바로 느낌표인거다!
저자는 회사생활이 편해지는 업무 노트 습관도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그의 블로그에서는 주간 업무 계획서의 양식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산업군과 업무의 특성 등의 차이가 있어 그대로 따라하기식 적용을 하기보다는 부분적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나 또한 다운받아두었다(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메모 습관이 가져다 준 변화 중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주고 있다. 우리네 모두에게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도 화두이지 않던가, 그 이름도 찬란한, 부를 수록 그립기만 한 그 이름 '창의성'. 과연 내 삶의 일상생활과 업무 가운데 이 창의성이 어찌 발현될 수 있는지, 발휘되어 효력을 발생시킨다면 결과물들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가 평생의 의문이기에 눈과 귀가 솔깃할 수밖에. 저자는 비교적 현실적으로 방법론을 정리해주었다. 바로 행동강령을 받은 것 같아 간편한 기분이고, 숙제를 받은 어린아이같은 마음도 들어 피식 웃음도 나온다. 공유해보자면, 저자가 소개하는 '창의성을 부르는 5단계 과정'인데(p.113), 아래와 같다.
1단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를 선언한다.
2단계: 연결에 사용할 다양한 생각의 재료를 모은다.
3단계: 생각이 충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4단계: 연결의 순간을 기다려 아이디어를 붙잡는다.
5단계: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
1단계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를 선언하려면, 그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겠지. 저자는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노트에 적고 틈날 때마다 자주 보라 권한다. 오늘부터 째려보기 시작. 2단계에서 연결에 사용할 다양한 생각의 재료 모으기로 저자가 첫번 째로 사용한 방법은 단연 '독서 노트'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을 옮겨 적고,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기. 세미나 노트 필기, 업무 내용 노트 필기, 웹페이지 서치 놀이 및 디지털 메모앱에 스크랩하고 저장하기 등등. 여러 루트를 통해 재료를 모은다. 3단계에서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나와 다른 베이스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라, 라고 권한다(이 부분에서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낯선이들과의 만남과 그 분위기는 생각만해도 긴장이 되기 때문인데, 영원한 내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자, 이제 지금까지 여러 방법으로 기록한 노트를 종종 꺼내 다시 읽어보면 그 때 바로 '생각의 충돌'이 일어난다고 한다. 과거의 '기록된'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연결'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4단계에선, 3단계의 '새로운 연결'을 통해 pop up되는 아이디어를 문자 그대로 붙잡고 빠르게 '기록'해두는 것이다. 핵심만 메모하는 데에서 시작해 살을 붙여나가면(구체화), 그 과정을 통해 결국 글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 바로 5단계이다. 자 이제 이 5단계를 단순 무한 반복할 수만 있다면 내게도 저자에게 일어난 그 '변화'가 분명 일어날 수 있으리, 라고 다짐하며 결의를 다져본다.
저자가 책의 중반부에서 소개하고 있는 아날로그 메모, 디지털 메모, 필사의 즐거움, 메모 리딩에 대한 방법론적 가이드와 에피소드 공유 및 스토리 텔링이 한데 섞여 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매우 유용하다. 다만 위험한 게 한 가지 있다면, 책을 읽어나가면서 (저자가 느꼈던, 그리고 가졌던) 그 유용함과 즐거움이 마치 이미 내 것이 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리얼리티로 돌아와 실천을 앞두고 있을 때 금세 의욕을 잃게 되는 수가 있다는 것.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한 지점이다. 더불어, 저자는 소셜미디어에서의 '공유'를 적극 권장한다. 여러 근거와 논리가 제시되고 있는데, 저자의 한 마디로 핵심이 요약된다. "No pains, No memories. 기억하려면 공유하자!"(p.226). 무척 일리가 있다. 아니그런가?
여기까지는 그의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며 또 그가 소개한 여러 방법들을 곱씹으며 흘러왔다. 그러고 보니 마음 한 켠이 약간 허한 느낌이 들면서 의문이 솟아오른다. '이 모든 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라는 내면의 물음 말이다. 역시나 저자는 책의 하반부에서 놓치지 않고 이를 다루고 있다. 그에게도 '가치'가 있는 것이었기에 책으로 내어 우리에게 '공유'해주고 있지 않겠는가. 심플하게 말하고 있다. "공유가 가치를 만든다"고(p.241). 누군가가 그의 글과 공유로 도움을 받는다. 사실인즉슨, 지금 내가 그러하고 있고, 이 글을 읽고있는 그대들도 그러하다. 보여주는 글쓰기는 성장 동기를 마구 불러일으키게 되고, 정보와 연결과 소통을 통해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이어진다. 그 또한 신변잡기 늘어놓기식의 출발선에서 이제는 '항상 독자를 생각하고, 읽히는 글을 쓰는 이'의 궤도에 다다랐다고 한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쓸수록 글쓰기 실력은 향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나 지금 매우 과하게 이 글을 읽어줄 누군가를 의식하고 있다, 후훗).
일상생활과 업무와 육아까지 메모라는 플랫폼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저자의 삶이 부럽고 기대된다. 습관은 결국 힘이 되어 그에게 목표 달성이라는 선물을 안겨준 것이다. 감사하게도 그는 우리도 그리 될 수 있을거라 확신하며 구체적인 지침을 건네주고 있다. 즉, 메모는 목표가 있어야 하며, 그러할 때 메모의 가치가 만들어진다는 것. 이어서, 메모가 가져오는 변화를 체감할 때 결국엔 '메모 습관'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p.277). 그리하여, 나에게는 '메모의 목표'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애매모호하게는 '나를 보기 위함'이며, 지향하는 결과를 위한 목표는 '산문가가 되기 위한 글소재 수집'이다. 그렇다, 내게도 목표가 있었다. 이제 이 목표를 저자가 소개해준 방법 하나하나에 묶고 연결하여 '가치'를 창출하고, 그 가치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마음이 설렌다. 저자는 기업의 연구원으로 오랜 시간 일해오고 있지만 사람과 심리에 관심이 깊어 상담심리학 또한 공부했다고 한다. 그의 메모 내용을 이곳 저곳 들여다보면 심리를 향한 관심과 성찰이 곳곳에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여, 그도 '나'를 발견하기 위한 메모를 해오고 있다고 하는데, 이른바 그것이 '양심노트'라고 한다(p.333).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마찰과 갈등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뒤에 숨겨진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어 종국엔 문제 해결 방법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차용해보면 좋을 법하지 않은가. 위대한 고전의 저자들인 옛 문인들도 그토록 '나를 보기 위해'서 일기를 쓰고, 기록을 남기고, 소설을 쓰지 않았겠는가. 그 성찰과 성장의 길에 훨씬 먼저 뛰어들어 나날이 변화되어 가고 있는 저자를 향해 질투도 나려한다(건강한 질투라 해두자, 성장을 목표로 두고 있으니 훗).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메모의 진정한 힘은 우리를 삶의 관찰자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보지 못하던 것을 볼 수 있게 될 때 삶에 변화가 시작된다."라고(p.342). 그의 말을 문자그대로 믿어보는 건 어떨까? 책의 마지막까지 그 여정을 함께 했다면 한 번 그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유독 포스트잇을 많이 붙이며 읽었던 책이다. 그 단순한 작업을 즐기는 내가 되길, 탁월함에 이르러 감동하는 내가 되길, 새로운 '연결'을 통해 성장하는 내가 되길, 이 부족한 독후감을 빌미로 바래본다. 퇴근길에 노트를 샀다. 뭐라도 하루 빨리 해야될 것 같아서(부끄럽다). 깊은 밤 무어든 끄적여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