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속 현장의 냉소와 ESG 실사의 간극

현장을 위한 실사체계에 대하여

by 웬디

며칠 전,


이전 직장 재직 당시 제가 ESG 실사를 진행했던 건설사 이사님께서 반가운 걸음을 해주셨습니다.

오랜만에 건설사의 현황과 현장 이야기를 나누며 깊은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건설업은 하청 구조와 현장/사무소 구조가 복잡하여, 실질적인 현장 경험 없이는 현실에 맞는 솔루션을 제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사님께서 오랜 관리자로서 느끼는 현장 문제 중 가장 크게 와닿는다고 말씀해주신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현장의 냉소적 반응이 제일 어렵습니다."



1. 익숙한 서류의 완벽함 뒤에 숨은 공백


현재 국내 ESG 상황은 문서 관리 체계에 대한 강조가 높은 편입니다. 정책, 절차, 기록은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며,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기업의 담당자들은 교육을 통해 ‘더 잘하고 싶다’는 긍정적인 동기 부여까지 얻습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현장과의 공백은 여전히 큽니다. 현장에서 나타나는 냉소적인 반응은 바로 이 공백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단순히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과정’에서 오는게 아니라, ‘현장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제약’ 이라는 부분 때문입니다.


2. 선의로 시작된 규제가 왜 불신으로 돌아오는가


국내외 수백 개 기업을 대하며 깨달은 것은, 아무리 정교한 체계도 결국 "모든 건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규정이 현장을 얼마나 세심하게 고려하여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단지 '평가를 위해' 존재하는지, 현장의 직원들은 그 모든 의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제일 위에서 내려온 지침은 제일 아래에서 가장 크게 감정적으로 발현됩니다.


[중대재해법 대응의 역설: 예측가능성의 상실]


중대재해처벌법 등의 영향으로 특히 건설사는 자체 벌금/징계 규칙이 수십 개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어, 통신공사 현장처럼 1~2시간마다 장소를 옮겨야 하는 작업 환경에서 매번 네 개의 모든 바퀴에 고정대(안전 받침대)를 끼우도록 요구받는 까다로운 절차를 이행해야 합니다.


한편, 공사 중 야간 잠행 카메라로 위반이 찍히면, 그 징계가 언제 드러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으로 현장에 남습니다. (경찰이 야간 단속을 위해 잠행하는 경우에는 바로 결과가 나오지만, 건설 단속 카메라는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국가는 사고 방지를 위해 법을 만들고, 담당자는 법 대응을 위해 규칙을 강화합니다.


그러나 다이내믹한 공종에서의 일괄적 안전 절차와 사후징계의 불확실성은 현장에 ‘예측가능성의 상실’로 체감됩니다. 규정은 선의로 출발했지만,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는 곧 냉소로 전환됩니다.


3. ESG 서류와 사람 사이의 간극


중소기업에게 ESG, 특히 인권이나 거버넌스에서 가장 와닿는 것은 결국 ‘현장에서 체감되는 노동 환경’, 즉 복지나 조직 문화의 개념입니다.


하지만 공급망 실사가 Tier 3, Tier 4까지 이어져도, 실사 현장에서는 여전히 서류절차 중심의 질문이 주를 이룹니다.


"분쟁광물 관리 체계가 있나요?"


"공급사 몇 곳을 실사하셨나요?"


예릉들어, 기업의 성장과 무관하게 일괄적인 기준으로 매출액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점수를 산정하거나, 고충처리 담당자를 별도로 두는지 묻는 방식 등은 협력사의 운영에 실질적인 어려움을 줍니다.


OECD 실사 지침이 리스크·영향 중심 접근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Entity-Based, Procedure-Based, Document-Based라는 익숙한 프레임에 갇혀 있습니다.


그 사이, 실제 현장의 억압된 감정과 정서는 기록되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는 본사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괴리가 깊어집니다.


4. '사람'을 담는 DD 체계는 무엇인가?


내년부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법적 공시 의무가 시작되고 글로벌 규제가 강화되는 시점입니다.


아무리 정교한 DD 체계라 할지라도, 결국 ‘사람의 감정’을 다루지 못하면 그 평가는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보고서 상의 검은색 숫자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안의 익숙한 관행에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몇 %를 했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실제 위험을,

절차가 아니라 효과성을,

서류가 아니라 사람을.


조직의 냉소와 불신까지 포괄하며,
현장의 진정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실사 체계는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던져야 할

‘낯선 질문’일 것입니다.


[신뢰 회복을 위한 5가지 대화]


다음 항목 중 3개 이상 ‘아니오’라면,

문서 개정보다 현장과의 진솔한 대화가 먼저입니다.


규정의 핵심 의도가 현장 언어로 번역되어 전달되는가?

시간·동선·인력구성을 바꿔도 준수 가능한 유연성을 갖추었는가?

위반 시 피드백 지연이 징계 불확실성으로 남지 않는가?

한 달 1회 이상 의견을 듣는 현장 미팅을 운영하는가?

분기마다 규정을 바꾸는 쌍방향 개선 세션을 운영하는가?


마무리하며


내년 중대재해처벌법, CSDDD 등

규제는 더욱 강해집니다.

정교한 체계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체계가 기업의 본질인 사람을 담지 못한다면

근본적인 리스크는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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