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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 NEED YOUR VOICE Jul 27. 2020

영화 <로마>

파도를 거슬러


  


 * 본 글은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로마>는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멕시코 여성의 삶을 투영한 작품이다. 주인공 클레오 역으로 데뷔하게 된 배우 얄리차 아파리시오는 멕시코 원주민 여성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영화 <로마>가 실제 자신의 유년시절을 담은 작품이며 자신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던 여성 리보 로드리게스를 모티프로 했다고 밝혔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현재까지도 이주민과 여성에게 주어지는 고정적 인식을 일깨워준다.      



이방인의 노동     


  영화의 주인공 클레오는 멕시코 여성이다. 클레오가 일해야 하는 곳은 멕시코의 로마, 중상류층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그는 아이가 넷인 미국인 가정의 집에서 일하고 있다. 클레오는 고용 당한 노동자이지만, 집안일을 도맡고 아이들을 직접 돌보며 가족의 일원으로 스며들어 있다. 빈번한 외도로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는 허울만 남아있고, 가정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부인 소피아 혼자 전전긍긍한다. 불안정한 부모 밑에서 아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연장자는 클레오 뿐이다. 클레오와 아이들의 관계는 빨래터 장면에서 드러난다. 볕이 잘 드는 곳에 나란히 드러누운 클레오와 아이는 여느 때보다 평온하다. 



  그는 노동자이자 이방인이며 소피아의 가족이다. 영화는 세 범주의 접점에 서있는 클레오의 표정을 주목한다. 클레오가 시종일관 유지하는 고요한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감내한 것으로 보이지만, 소피아 가족의 갈등을 마주하고 아이들을 살필 때 급변하는 표정들은 캐릭터가 짊어진 타자성에 무게를 줄인다. 그는 소피아 가족들을 노동의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동시에 교감을 나누며 연대한다.           



클레오와 소피아     


  클레오는 평소 함께 어울리던 멕시코 남성 페르민과의 관계에서 임신을 한다. 그마저도 월경을 안 한다는 것으로 직감한다. 성기를 드러내며 어색하게 검 다루는 시늉을 하던 남성은 임신을 했다는 클레오의 고백에 책임을 회피하고 고함을 치며 사라진다. 임신까지 하게 된 클레오는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 가족 부양을 목적으로 시골 마을에서 상경한 클레오의 주변에 “여성의 임신”에 관해 알려준 사람은 없다. 계층의 취약함은 곧 개인의 무지로 연결된다. 경제 능력과 신체적 안전을 모두 잃을 수 있는 상황에 손을 뻗은 이는 소피아다. 그는 남편의 부재에 절망을 느끼는 와중에도 클레오에게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병원을 소개시켜주며 지속적인 경제 활동을 허락한다. 



  소피아의 남편은 가정을 떠난다. 그의 불안감은 가정 내에서 증폭된다. 클레오는 소피아가 아이들에게 남편을 향한 편지 쓰기를 강요하고, 통화를 엿듣는 아이의 뺨을 때리다가도 주저앉아 사과하는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고 기다려주는 인물이다. 영화는 점진적으로 두 인물의 관계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인물은 여성으로서 연대하고 있지만 작품의 초반부 등장하는 장면에서 계층의 간극을 느낄 수 있다. 소피아가 느끼는 불안감은 클레오를 대하는 태도로 직결된다. 그는 불안감이 증폭되었을 때마다 클레오에게 거친 태도로 응수하며 자신이 그의 고용자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클레오의 위치는 가족 내에서 점차 단단해진다. 소피아의 남편은 차고에 들어가지도 않는 고급 갤럭시를 애지중지한다. 클레오는 버려진 갤럭시를 몰고 좁은 도로에 갇힌 소피아의 곁에 있다. 고급 갤럭시는 로마의 좁은 거리에 걸맞지 않다. 소피아를 비난하는 클락션이 울려 퍼지고, 영화는 두 여성의 얼굴을 비춘다. 애착과 실용성을 잃은 고급 자동차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이들은 황망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핀다. 흑백 화면 속에서도 선연하게 흩어지는 흙먼지와 가정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의 날선 태도는 곧 두 여성에게 몰아칠 사회의 야성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둘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이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흑백의 <로마>     


  전작 <그래비티>로 우주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극강의 영상미를 선보였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선택한 <로마>의 영상 기법은 “흑백”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으로 진행된다. 연출의 초점은 관객이 주인공의 삶과 1970년대 멕시코의 풍경을 오롯이 바라보는 데에 맞춰져 있다. 어둠과 빛의 대조가 인상적인 흑백 영상은 지난 시절의 멕시코의 모습에 향수를 입히는 동시에 인물의 표정과 형체를 부각시킨다. 차별의 이유가 되는 클레오의 인종과 생김새는 색이 두드러질 수 없는 흑백 영상 속에 묻힌다. 



  영화가 전반에 걸쳐 시사하고 있는 멕시코 민주화 운동과 극우 단체의 대립을 극화 시키는 것에도 흑백 영상이 기능한다. 아이들을 기르고 함께 생존해야 하는 소피아와 클레오의 모습과 대비되는 극우 단체의 훈련 모습은 우스꽝스러운 폭력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사상을 세뇌시키고 어색한 체조를 구사하는 우두머리와, 이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멕시코 원주민들의 모습은 무지한 이들을 폭력에 물들게 한 극우단체와 정권의 간사함을 드러낸다. 그곳에 속해 있는 페르민은 임신 사실을 고백하기 위해 찾아온 클레오의 말을 묵시하고 자신의 폭력성을 드러내기 바쁘다. 영화가 질타하는 폭력성은 클레오가 아기 침대를 보러 간 날 확대된다. 혼란한 거리는 쓰러진 사람들과 총성으로 가득하다. 영화는 비극적 장면에 배경 음악을 추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절망을 들려준다. 가게까지 침입한 극우 단체들은 총격을 가하고, 클레오는 그곳에서 페르민을 마주한다. 목적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고 익숙한 얼굴을 마주한 페르민의 눈동자는 짐승처럼 공허하고, 이는 흑백 영상을 통해 극대화된다.          

 

이별여행


  작품은 시위 부상자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병원과 출산하는 클레오의 모습을 오랫동안 비춘다. 결국 아이를 유산한 클레오의 표정은 복잡하다. 죽은 아이를 안은 뒤 터지는 울음은, 갑작스러운 임신과 생존에 대한 불안에 시달려야만 했던 그의 감정을 폭발시킨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했던 클레오의 얼굴과 움직임은 일순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영화는 관객에게 그의 옆 얼굴을 응시하게 한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병원에서 클레오는 죽은 아기마저도 제대로 안아보지 못한 채 떠나보낸다. 


  

술에 취한 소피아는 거칠게 갤럭시를 몰며 집에 도착한다. 조심스럽게 주차하는 남편의 행동 위에 차가 손상되는 것은 개의치 않는 소피아의 거친 운전이 덧씌워진다. 차에서 내린 소피아는 자신을 마중 나온 클레오에게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여자들은 혼자야.”라고 말한다.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고급 자동차를 주차할 때만큼도 가정을 돌보지 않은 남성을 기다리고 절망하던 소피아의 태도는 이 장면을 기점으로 전복된다. 차고의 크기에 알맞은 차를 새로 구입하고, 소피아는 갤럭시를 처분하기 전에 이별 여행을 다녀오자고 한다. 여행 이야기를 하는 그의 모습에는 전에 없던 열의가 솟아 있다. 그는 클레오에게 새로 구입한 차가 어떠냐고 물으면서 클레오가 곧 그의 가족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바닷가로 이별 여행을 떠난 이들은 예기치 않는 상황을 마주한다. 바다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클레오는 거센 파도를 헤치고 들어간다. 뛰쳐나온 소피아는 아이를 구한 클레오에게 다가간다. 아이를 유산하고 입을 열지 않았던 클레오는 그곳에서 클레오는 유산된 아이가 원치 않은 아이였다고 고백한다. <로마>가 말하고자 하는 연대는 이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원치 않았던 갈등으로 인해 더 견고해진 이들은 서로를 끌어안는다. 클레오는 그들의 품 안에서 노동자도, 이방인도 아닌 새로운 가족의 동반자로 자리한다.      






  <로마>의 서사는 흐름이 분명하게 나누어 진행되지 않는다. 극적인 효과나 음악 없이 찬찬히 흘러가는 카메라의 시선은 주인공의 삶을 더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작품은 클레오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의 삶과 노동에는 당시 멕시코 사회의 이면이 투영되어 있다. 그곳에서 드러난 인간의 불균등한 삶을 통해 관객에게 시대가 느껴야 했던 불안과 극복을 동시에 보여준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한층 더 두터워진 인물들의 관계가 두드러지는 마지막 해변가 장면이다. <로마>는 그들의 포옹으로 원치 않은 갈등을 마주한 이들에게 깊은 위로를 건넨다. 또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연대”라는 점을 전달하고 있다. 




글.기획/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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