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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 NEED YOUR VOICE Jul 28. 2020

영화 <서프러제트>

개인의 행동은 곧 사회의 변화로





  사라 가브론 감독의 영화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여성 참정권 운동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제목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작품 속 인물들을 지칭하며 당시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를 의미한다. 감독은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의 전개 과정을 거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한 여성 노동자 단체와 그 속의 ‘모드 와츠’라는 인물을 중점으로 이야기를 증폭시킨다. 소극적이던 그가 여성 인권과 참정권을 위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면서 부딪치는 방해물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지금과 다르지 않다. 100여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은 지금의 사회에 분노하는 동시에, 과거의 여성들을 통해 어떻게 지속적으로 싸워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지와 태도를 깨닫는다.



외면으로 맞춰진 균형을 깨트리며



 

  영화의 주인공 모드는 세탁공장의 노동자이며 한 아이와 남편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그의 삶은 당연시된 일상 속에 부조리함을 깨달으며 조금씩 변화한다. 공장장의 심부름으로 웨스트엔드로 향한 모드는 유아 옷 가게를 구경하던 중, 참정권 운동가들이 옷 가게의 유리창을 깨며 시위를 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같은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자 참정권 운동가들 중 한 명인 바이올렛을 마주친다. 살벌한 분위기의 시위 현장을 벗어난 모드는 심부름을 마치지 못하고 빠르게 집으로 귀가한다. 초반부에 모드의 모습은 여성참정권 운동과는 별개의 인물처럼 그려진다. 시위 현장에서 넘어져 손바닥을 쓸린 모드를 치료해 주는 남편의 행동은 자상하고 무해한 것처럼 비치지만, 이러한 남편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모드가 주체성을 잃었을 때만 나타난다. 모드가 조금씩 자신의 주체성과 불합리함에 맞서갈수록 남편은 모드를 집에서 내쫓고 아이에게서 완벽히 차단한다. 혼자서 아이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무책임한 남편은 아이를 입양시키고, 모드는 아이의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일방적인 입양 결정을 무마할 수 없다.

  이렇듯 모드가 처한 가부장제의 구조와 더불어, <서프러제트>가 단순히 여성 참정권 운동에 대한 영화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는 모드가 계속해서 움직이는 원인에 있다. 모드는 과거 공장장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이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차별의 대상인 동시에 하층민이라는 계층적 약자의 위치 때문에 계속되는 성폭력에도 가해자가 지배하는 세탁공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의 목숨을 바쳐 여성 참정권의 목소리를 외친 앨리스의 죽음 이후, 모드는 오랫동안 외면했던 진실을 직면한다. 자신에게 했던 성폭력을 똑같이 바이올렛의 딸 매기에게 가하는 공장장의 행각에 대해 그는 더 이상 참지 않는다. 매기를 공장에서 빼내와 호턴 부인의 집으로 취직시킨다. 공장에서 호턴 부인의 집까지 매기를 이끄는 모드의 표정은 벅차 보이지만 확신에 차있다. 그가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다시 전진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그의 아이와 더불어 매기 같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이다. 자신의 아이를 무방비하게 남편 또는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는 힘을 쥐여주기 위해 또, 성폭력을 당하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끔찍한 사회를 대물려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남성으로 수렴되는 위선

 

  영화는 여성들을 가로막는 남성들의 터무니없는 발언들로 시작한다. “여자들은 정치에서 판단력을 행사하기엔 너무 감정적이고 쉽게 냉정함을 잃습니다. 여자들에게 투표할 권리를 준다면 사회 구조가 무너질 겁니다. 여자의 권리는 그 아버지나 형제, 남편을 통해 잘 행사되고 있습니다. 투표권까지 주어지면 멈출 수가 없어집니다. 여자들은 국회의원, 국무의원, 판사까지 되겠다고 주장할 겁니다.” 같은 비이상적으로 내뱉어진 말들이 고된 노동 현장 속 여성들의 모습과 함께 흘러나온다. 남성들의 발언은 그들이 여성을 같은 인간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 당시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참정권이 여성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국가에서 논해지는 민주주의 속 ‘국민’에는 여성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속에 표현된 남성 캐릭터는 위선적인 인물들이다. 비중 있는  명의 캐릭터 , 먼저 모드의 남편은 아내의 상태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공장장이 계속해서 모드에게 어떤 폭력을 가하는지, 모드가  위협을 무릅쓰고 여성 평등에 목소리를 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시도조차 하지 않고 일을 키우는 것을 막으려 한다. 서프러제트를 조사하고 추궁하는 형사는 모드에게 “ 당신을 알아요.  여자들도 마찬가지죠.”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또한 형사는 무력을 쓰지 않는 지성인인 척하지만 여성들 사이를 이간질시키려 하는 편협한 인물이다. 작품 안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도와주는 유일한 남성인 이디스의 남편은 중요한 계획을 앞둔 이디스를  안에 가둬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물론 이디스의 건강을 위해 벌인 행동이지만, 평등을 향한 이디스의 욕구를 남편이 얼마나 쉽게 끊어버렸는지에 대한 허무함을 전달한다. 평생 기득권 성별로 살아온 그들은 여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인의 행동은 사회의 변화로  

 



  작품 속 여성들은 전형적인 길을 걷지 않는다. 처음 모드에게 시위 동참을 권했던 바이올렛은 현실적인 방해물로 인해 후반부 작전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들을 응원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모드와 다른 여성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시위를 꾸려가던 이디스는 중요한 계획을 앞두고 남편의 감금으로 나가지 못한다. 작품 초중반에서 그리 부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에밀리는 자신의 몸을 던져 여성 참정권을 외친다. 이렇듯 쉽게 인물을 예측할 수 없고 그들 간의 우위를 나누지 않았다는 점은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고통은 똑같으며 동시에 그들은 동등한 인권을 위해 싸운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실제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주도했던 시민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를 작품 속 주요 인물로 내세우지 않고 잠깐 등장시킨 선택은 수직적인 운동 구조가 아닌 수평적인 위치로 같은 권리를 위해서 싸워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 위함이다. 여성 참정권 운동은 ‘여성’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제는 결말에 이르러서 가장 잘 드러난다. 에밀리의 장례식에 수천 명의 조문이 이어지고, 그 행렬 속으로 모드가 합류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결말의 장면은 소극적이던 모드 개인이 단계적으로 사건을 헤쳐나가며 목소리를 되찾고 욕구를 알아가는 과정은 곧 사회의 변화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를 이루는 개인의 행동은 사회의 변화로 직결된다. 우리는 <서프러제트>를 통해 의지를 다지고 방향을 확인한다. 영화 속에 녹아 있는 여성혐오 범죄들, 권력형 성범죄와 가정 폭력 등의 사건들이 만연하고 달라지는 사회에 맞게 성차별은 다양한 형태로 변이하기에. 우리는 지치지 말고 싸워나가야 한다. 모드가 ‘혼자’라고 느낄 때마다 그의 앞에는 여성이 나타났다. 여성들 주변에는 여성들이 있다.





기획·글/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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