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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기 Jan 22. 2016

옛사람의 글쓰기 문장

프롤로그

이상한 일입니다. 요즈음 글쓰기가 매우 중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대학에서 인문학이 전격적으로 퇴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강좌는 필수과목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일반인을 위한 글쓰기 강좌도 자주 열리고 수강생도 많이 몰린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글쓰기와 관련된 교재와 책들도 전에 없이 봇물 터지듯 출간되고 있습니다. 

글쓰기가 소수 문필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소수의 창조적 재능을 지닌 인물들이 근대 시대의 글쓰기를 주도했습니다. 다수의 일반 대중들은 다만 소수의 문필가들이 창작한 글을 읽어주는 소비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수의 일반 대중들이 직접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일상을 되돌아보면 요즘 글 쓰는 일이 부쩍 증가했습니다. 핸드폰으로 글을 써서 문자를 보내고, 이-메일로 글을 주고받으며,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글을 주고받는 일이 흔하기만 합니다. 개인 블로그를 개설하여 사소한 일상을 글로 정리하는 것도 일상화된 현상입니다.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글쓰기는 우리 가까이 다가와, 어느덧 우리 몸의 흔한 습관이 되었습니다. 

근대의 글쓰기를 주도한 것은 문예적인 글이었습니다. 그러한 글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적인 문장이었지요. 그러나 예술적인 문장이 글쓰기의 전부는 아닙니다. 글쓰기가 아름다움만을 전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글쓰기는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기도 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학문적 진리를 탐구하는 글은 아카데미즘의 글쓰기라 할 수 있고,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글은 저널리즘 글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널리즘 글쓰기를 요즘은 미디어 글쓰기라 부르기도 합니다. 

지금은 매체가 다양해지고, 그 매체들이 융합되는 시대입니다. 이에 따라 아카데미즘 글쓰기와 저널리즘 글쓰기, 예술적인 글쓰기가 융합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글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쌍방향으로 실시간으로 신속하게 어울리며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창작자가 독자이고 독자가 창작자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글쓰기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융합적인 글쓰기가 이전에 없던 현상은 아닙니다. 중세 이전의 글쓰기는 원래 융합적인 것이었습니다.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역사 문장이나 보편적 진리를 설파하는 철학의 문장들도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학적인 글들도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었으며 객관적인 현실에 바탕을 두고 글을 써나갔습니다. 인생은 원래 융합적인 것입니다. 중세 이전의 글쓰기는 단지 예술만을 위한 분화된 글쓰기라기보다는 인생을 위한 융합된 글쓰기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소수의 창조적인 천재들만을 위한 순수예술문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것은 상업적 목적을 위하여 고도로 분화된, 이제는 사라져가는 근대시대의 유산일 뿐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글쓰기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할 때입니다. 근대적 글쓰기의 종언을 목격하면서 저는 앞으로 근대가 부정했던 중세 이전 동아시아의 글쓰기 문장을 다시 조명해 보려 합니다. 여기서 ‘글쓰기 문장’이라 함은 ‘글쓰기 이론을 펼친 문장’을 말합니다. 글쓰기 문장들을 보면서 공자, 장자, 사마천, 한유, 구양수, 소식, 박지원 등 문장의 거장들을 우리 시대로 소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심층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동아시아적 글쓰기의 유전자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을 초대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해 주셔도 좋고 아니면 잠깐의 동행이 되어도 좋겠습니다. 거기에서 글쓰기의 낯선 얼굴을 발견해도 좋고 아니면 그것의 오래된 미래를 발견해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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