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루앙프라방
그 주는 내내 병원이었다.
월요일, 소아청소년과.
“코감기 같아요. 약 드릴게요.”
의사의 말은 짧았고, 나는 안심했다.
하지만 약을 먹여도 열이 내리지 않았다.
밤마다 아이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수요일, 이틀째 38.5도에서 열이 내리지 않는다.
차도가 없어서 다시 갔다.
“눈곱이 나오네요. 안과 가보세요.”
바로 안과로 달려갔다.
안약을 받았고 하루 세 번 넣어야 했다.
아이는 안약을 무서워했다.
울고, 도망가고, 온 집안을 뒹굴었다.
억지로 눌러 잡고 약을 떨어뜨렸다.
눈물인지 안약인지 모를 것들이 아이의 눈가에 흥건했다.
“엄마 미워!”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약처럼 쓰고 아프게.
금요일 저녁. 죽을 끓여 먹였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아이가 울먹이며 먹었던 죽을 다 게워 냈다.
바닥에, 소파에, 내 옷에.
아이가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눈에 힘이 없었다.
나는 바로 수액을 맞을 수 있는 소아청소년과를 찾았다.
의사가 아이를 보더니 말했다.
“탈수 상태가 됐네요. 수액을 맞는 게 좋겠습니다.”
간호사가 아이 손등에 바늘을 꽂았다.
아이가 너무 많이 울었다.
수액 줄이 천천히 떨어졌다.
똑, 똑, 똑. 한 시간.
아이는 내 품에 안긴 채 잠들었다.
힘없이 늘어진 아이의 몸을 꼭 안았다.
아이에 대한 걱정, 미안함, 오만가지 감정이 뒤섞인 채로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20대 후반에 찾아갔던 라오스, 루앙프라방이 떠올랐다.
새벽.
도미토리 숙소를 같이 쓰던
외국인 여행자가 탁발을 보러 가자고 나를 깨웠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골목으로 나갔다.
공기가 서늘했고, 안개가 얇게 거리를 덮고 있었다.
길가에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손에는 찐 밥과 과일이 담긴 작은 그릇.
곧 주황빛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줄을 맞춰 걸어왔다.
맨발로, 발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고 그릇을 내밀었다.
밥을 담는 손, 받는 손, 그리고 그 사이의 침묵.
그 모든 순간이 기도 같았다.
다음 사람, 또 다음 사람.
스님들은 말없이 받고 지나갔다.
매일 같은 길, 같은 시간, 같은 의식.
탁발은 하루의 시작이자, 마음을 비워내는 의식이었다.
나는 길모퉁이에 서서 그 장면을 바라봤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고, 누구도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어제와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 반복은 고행이 아니라 평화였다.
비가 와도, 더워도 의식을 치룬다.
주말이 지나고 아이는 회복했다.
안약도 계속 넣었지만 아이는 이제 울지 않았다.
무서움을 참고 눈을 깜빡이는 그 얼굴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지금 아이는 다섯 살. 여전히 가끔 아프다.
어제도 열이 나서 병원에 갔고,
3일째 약을 먹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루앙프라방 스님들처럼,
나도 매일 같은 길을 걷는다.
끝이 보이지 않아도 걷는다.
엄마는 그렇게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