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아침부터 시작이다.
친정 엄마는 아이에게 밥을 꼭 다 먹이라고 하고,
나는 배고프면 나중에 먹여도 된다고 말한다.
엄마는 “요즘 애들은 너무 제멋대로 키운다”라고 하고,
나는 “엄마 때랑은 달라요.”라며 맞선다.
엄마는 느리고, 나는 빠르다.
엄마는 경험으로, 나는 정보로 육아한다.
엄마는 “예전엔 다 그렇게 했어”라고 하고, 나는 “이제는 달라졌어요”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이해시키려 애쓰다 입을 닫는다.
23개월째 독박 육아를 하는 건 힘든 일이라
엄마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인데
이상하게도 함께 있는 시간이 길수록 대화가 줄어든다.
엄마는 하루 종일 집안일 하고 손주까지 돌보고,
틈날 때마다 내게 낮잠 자라고 하는데도
나는 자꾸 답답한 기분이 든다.
“엄마, 내가 할게.”
엄마는 잠시 멈칫하다가 말없이 물을 데운다.
또 그 조용한 뒷모습을 보면 후회도 된다.
마치 춤출 때 본의 아니게 계속 발을 밟는 것처럼 자꾸 대화의 박자가 엇나가는 것 같다.
2014년 가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에서 탱고를 추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 도시는 리듬으로 살아 있었다.
거리마다 탱고를 추는 커플들을 볼 수 있었다.
직접 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숙소와 가까운 탱고 클럽을 찾아갔다.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열자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천장에는 오래된 샹들리에가 흔들렸고,
어두운 조명 아래 여러 커플이 탱고를 추고 있었다.
구경하던 내게 한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 손을 거절할 수 없어서 어색하게 손을 잡았다.
탱고는 생각보다 느렸다. 정해진 동작도, 완벽한 박자도 없었다.
그가 리드하기 시작했다. 나는 따라가 보려 애쓰지만 자꾸 발이 꼬였다.
“원, 투, 쓰리...”
그가 하나씩 알려주는데도 계속 발이 꼬였다. 잠시 멈춰 서서 그가 말했다.
“Follow the heart, not the step.” - 마음을 따라가요. 발이 아니라.
그제야 나는 어깨 힘을 빼고 천천히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리듬이 엇갈리는 게 신경이 쓰였지만,
다시 눈을 마주치면 또 박자가 이어졌다.
곡이 바뀌자 그는 내게 리드해 보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발을 뒤로 물리며 그를 이끌었다.
서툴렀지만, 탱고였다.
탱고는 대화를 나누듯 순간순간 역할이 바뀌는 춤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리듬을 오래 잊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리듬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와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아침,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떠먹이고 있다.
나는 옆에 앉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엄마가 육아할 때는, 나는 한 발 물러선다.
사탕을 달라고 생떼를 쓰는 아이를 보다 못한 내가
훈육을 시작하려 하자 엄마는 분리수거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경험으로 이끌 때는 내가 따르고,
내가 새로운 정보로 육아할 때는 엄마가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 완벽히 맞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 발을 밟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누가 앞서가느냐가 아니라 서로의 리듬을 존중하는 일이다.
이른바 탱고 육아 같은 것 말이다.
역할을 나누고, 때로는 바꾸며 춤추는 일
그게, 사랑이고 가족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