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살사
아들은 요즘 입에 “빨리빨리”를 달고 산다.
“엄마, 지금 가야 해.” “나 바쁘거든?.”
어린이집 가는 길에는
오히려 내가 아니라 아이가 더 서두른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보고 배운 거구나.’
내가 늘 서두르던 삶의 속도를
아이가 흡수한 것 같아 괜히 미안해진다.
도대체 뭐가 그리 급했을까?
그 작은 아이가 아침부터 ‘빨리’를 외쳐야 할 만큼 말이다.
나도 늘 서둘렀다.
육아로 단절된 경력을 연결하려고,
관계를 회복하려고,
나의 미래를 찾아보려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속도를 끌어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됐다.
내 속도는 자꾸 뒤처지는데 마음만 앞서간다는 것을.
미술, 발레, 영어, 수영 등의 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를 보면
나도 보내야 하나 싶다.
내 일은 어떻게 이어가나?
남들처럼 서울에서 살려면 돈을 어떻게 모으나?
남들 속도에 맞추려 할수록 마음만 더 조급해졌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쿠바에서 봤던 할머니가.
남미 여행의 첫 시작,
쿠바 아바나. 자유, 낭만, 체 게바라, 살사...
모든 게 궁금했다.
도착하자마자 쿠바를 느끼고 싶어서
일주일 동안 살사 수업을 신청했다.
한국인 여행자 3명과 함께 배웠다.
살사 선생님 앤디는 동작을 천천히 보여주고
우리는 돌아가며 호흡을 맞췄다.
그런데 나는 잘 따라 하지 못했다.
원래 리듬을 타는 건 좋아했지만
춤을 외우거나 따라 하는 건 어려웠다.
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춤을 추다 멈추고, 추다 멈추고.
발을 자꾸 밟았고, 박자를 놓쳤다.
실수 연발. 나중엔 부끄러웠다.
선생님 앤디가 말했다.
“너는 머리로 춤을 춰. 몸이 말하는 대로 가야 하는데.”
쿠바에서 살사를 경험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아바나의 거리에서도, 트리니다드의 밤에도,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춤을 췄다.
낮 광장에서는 관광객도,
현지인도 섞여서 각자의 리듬으로 움직였다.
작은 야외 바에 사람들이 모였다.
보랏빛 조명 아래 음악이 시작되자 모두가 춤을 췄다.
그곳에서 한 할머니를 봤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외국인이었다.
그녀는 음악에 딱 맞지도 않았다.
느릿느릿, 자신만의 리듬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파트너와는 완벽하게 호흡이 맞았다.
둘만의 박자. 둘만의 속도.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자유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지난여름,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날이었다.
어린이집 앞에서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걸어갈래. 저기 가고 싶어.”
아이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은 홍대 방향, 꽤 먼 길이었다.
게다가 그날은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였다.
빨리 집에 가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아이가 이끄는 방향으로 걸었다.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물도 사고
거리에서 보는 모든 것을 질문했고
나는 하나하나 대답해 주며 천천히 걸었다.
중간에 작은 식당에 들러 저녁도 먹었다.
한 시간쯤 걸어서 홍대에 도착했을 때,
버스킹 무대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아이가 내 손을 놓고 앞으로 나가더니
나를 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에 맞춰, 자기만의 박자에 맞춰서.
땀에 흠뻑 젖었지만,
그 행복한 표정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덩달아 즐거워했던 나를 기억한다.
쿠바 살사바의 할머니가 그랬듯 아이도 자기 박자로 춤추고 있구나.
그리고 나는 지금 아이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구나.
그날 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내 손을 잡고 느릿느릿 걸었다.
나는 재촉하지 않았고
아이에게 멋진 추억을 선물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