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카사블랑카
밤이면 아이가 먼저 잠들고, 나는 혼자 남는다.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있으면
하루 종일 아이에게 쏟아낸 말들이 떠오른다.
"안 돼."
"엄마 지금 바빠."
"엄마 좀 도와줘. 제발 좀!"
거실은 조용하다.
세상은 고요한데,
내 머릿속만 시끄럽다.
그럴 때 문득 질문이 찾아온다.
'나는 누구인가?'
한때 나는 방송 대본을 쓰던 사람이었다.
출연자를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메시지를 잡아 구성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 세 끼를 챙기고
설거지 앞에 멈춰 서 있는 내가 전부다.
내 이름은 사라지고
아이 이름 뒤에 붙은 '엄마'로만 불린다.
나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전업주부도 엄연한 직업이고,
육아는 일보다 더 대단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믿고 살았지만,
이력서 위에 찍힌 공백을 보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져
초라해진다.
문득 떠올랐다.
서른, 북아프리카 모로코.
계획 없이 떠났던 그 여행.
당시 나는
두 개의 레귤러 프로그램과
홍보영상을 동시에 제작하고 있었다.
여러 일을 동시에 맡다 보니 숨이 찼다.
흔히 말하는 번아웃이 왔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대본을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방송하고.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누구지?'
한 달 뒤,
모든 일을 정리하고
모로코행 비행기를 탔다.
36시간을 날아 도착한 곳,
모로코 카사블랑카.
공항 바닥은 대리석처럼 반짝였고,
낯선 향신료 냄새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프랑스어와 아랍어가 뒤섞여 들려왔다.
출입국 심사대에서 직원이 물었다.
"카사블랑카에 온 이유는?"
"여행이요."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나를 찾으러 왔어요.'
택시를 타고 숙소를 찾아 짐을 풀었다.
첫날 저녁,
호텔 사장에게 물었다.
"어디서 저녁을 먹으면 좋을까요? 추천해 주세요."
사장이 알려준 대로
카사블랑카 현지 맛집을 찾아갔다.
간판도 없는 작은 식당이었다.
메뉴판을 펼쳤지만 읽을 수 없었다.
손가락으로 가리켜 음식을 시키고
얼마 후, 원뿔 모양 뚜껑의 냄비가 나왔다.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고기와 채소, 말린 과일이 섞인 요리.
타진이었다.
낯선 향신료의 맛이 입안에 퍼졌다.
어디서도 먹어본 적 없는 맛이었지만,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완벽한 계획 없이,
누군가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고,
이름 모르는 음식을 먹으며 살아도 되는구나.
다음 날부터,
나는 현지인들에게 물어가며 여행을 시작했다.
호텔 사장, 식당 주인, 길에서 만난 사람들.
"어디 가면 좋을까요? 뭘 먹으면 좋을까요?"
친절했던 그들은
종이 위에 간단한 선,
동그라미를 몇 개를 그려줬다.
"여기 가 봐. 좋을 거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없는 지도였지만,
나는 현지인들이 알려주는 그 선을 따라
45일을 걸었다.
마라케시, 페즈, 메르주가, 에사우이라.
유명한 도시도 몇 곳 갔지만,
대부분은 잘 모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모로코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이 안내해 주는 곳을 다녔다.
계획 없는 45일.
답을 찾으려고 떠난 여행이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도
나는 여전히 나를 몰랐다.
그런데 이상했다.
모로코에서는 이 질문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내 직업을, 나이를, 이력을 묻지 않았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줬다.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누군가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깨달음으로
미뤄뒀던 석사 논문을 시작했다.
이번엔 증명이 아니라
나를 위해 썼다.
다음 해 2월 졸업했고,
새로운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그로부터 다시 십여 년이 흘렀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뭐 하는 사람이야?"
나는 잠시 망설이다
작가라고 대답했다.
설명을 덧붙여,
네가 좋아하는 만화 같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고 하니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좋은 거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곧 진지한 얼굴로 덧붙였다.
엄마는 절대 TV 속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며
큰일이 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까 봐
걱정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한참을 웃었다.
나는 아이를 꼭 안으며 말했다.
엄마는 여기 있다고.
너와 함께 여기에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