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비슷한 속도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같은 마음으로 이어폰을 나눠 끼고 있다고 믿고 싶다.”

by 수취인불멍

O에게


오늘 작업실에 가는 길에

우연히 오래전에 함께 들었던 노래를 들었어.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길을 걷다가 카페에 들어가게 만든 그 노래.

그때는 누가 부른 곡인지도 몰랐는데,

요즘엔 어디서나 흘러나오는 유명한 곡이 되어 있더라.


이어폰을 끼고 그 노래를 다시 들으니까

서울의 거리가 갑자기 그날의 거리로 겹쳐 보였어.

네가 내 옆에서


“이 노래 좋다”라고 말하던 목소리,

카페 창가 쪽 자리가 비어 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안쪽 구석에 앉았던 우리,


괜히 가사에 집중하려고

대화의 속도를 조금 늦췄던 순간까지.


지금은,

우리가 같은 노래를 동시에 듣는 일이 거의 없지.

내가 이 노래를 들을 때

너는 강의실에 있거나,

실험실 한쪽에서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겠지.

네가 음악을 들을 때면

나는 회의실에서 기획안을 듣고 있을 확률이 더 높고.


그래도 가끔은 상상해 본다.

우리가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각자의 이어폰을 끼고

비슷한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고 있을 거라고.


너는 말했었지.

혼자 공부할 때

가사가 거의 없는 음악을 주로 듣는다고.

그게 덜 방해가 된다고.

나는 오히려

가사가 분명한 노래들을 틀어 놓고 쓰는 편이라고.

단어와 단어가 부딪히는 소리가

오히려 나를 집중시키기도 해서.


이렇게 취향이 다르면서도,

우리가 어떤 노래를 들었다는 말을 나눌 때면

묘하게 안심이 돼.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하루를 살고 있어도,

적어도 어떤 순간엔

비슷한 리듬에 맞춰 숨을 쉬고 있었던 것 같아서.


생각해 보면,

함께 노래를 듣는다는 건

단순히 같은 음악을 듣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비슷한 속도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노래가 3분 동안 흐르는 동안,

누군가는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고,

누군가는 문제 하나를 풀고,

누군가는 잠깐 휴대폰 화면을 내려놓지.


그 시간들 어디쯤에

네가 있고,

내가 있겠지.


우리는 더 이상

이어폰을 한 짝씩 나눠 끼지 않지만,

서로의 재생 목록을 조금씩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하게 위로가 돼.


언젠가 네가

“요즘 이 노래 좋더라”고 말해 준 곡을

내 플레이리스트에 조용히 추가해 두었다가

집에 돌아가는 밤길에 틀어놓고 걷곤 해.

그러면 잠깐이나마

네가 옆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물론 현실은

나는 서울의 도로를 걷고 있고,

너는 전혀 다른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그래도 그 잠깐의 착각이

하루를 버티는 데 꽤 큰 힘이 될 때가 있어.


오늘 네게 묻고 싶은 것도 그거야.


너는 요즘 어떤 노래를 듣고 있어?

하루를 견디기 위해,

혹은 잠깐 잊기 위해,

배경처럼 깔아두는 음악이 있다면

언젠가 그 제목을 전부 적어 보내 줬으면 좋겠어.


내 플레이리스트 어딘가에

네가 자주 듣는 노래들이 줄줄이 쌓여 있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조용한 동행 같을 것 같거든.


우리는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서로 다른 음악을 들으며 살겠지.

다른 속도로 걸으며,

다른 기분으로 잠들고,

다른 균열을 품은 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밤에는

우리가 우연히 같은 노래를 재생하고 있을지도 몰라.

14시간의 시차를 뛰어넘어,

어딘가에서 겹치는 그 순간만큼은

서로의 귀를 통해 같은 멜로디를 듣고 있을 거야.


나는 그 가능성이 좋다.

그래서 오늘도

네가 알려준 노래를 하나 틀어 놓고

이 편지를 쓰고 있어.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날의 너도

어딘가에서 무엇인가를 들으며

조용히 나를 떠올렸길 바라면서.


작업실로 가는 길, 이어폰을 꽉 눌러 끼운 C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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