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이 책은 읽는 중간에도, 읽은 후에도 뒷 마음이 아쉽고 허전하다. 퇴임후 검찰 수사를 받는 중에 불행하게 죽은 전직 대통령의 이름으로 사후에 엮어진 책이라서 그러하기도 하지만, 이 책이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진보의 가치와 철학을 속시원하게 풀어 줄거라고 기대했지만 기대에 못미쳐서 더욱 그러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이명박 정권(2008 2.25 ~ 2013 2.24) 초반에 진행된 검찰 수사로 인한 정신적인 암박감에 2009년 5월에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권력을 잡은 역대 정권이 보수 또는 진보의 구분없이 살아 있는 검찰은 문재인 정권(2017 5.10 ~ 2022 5.9)때 이명박 대통령을 구속하였다.
이 책은 죽음으로 중단된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에 대한 연구를 측근 정치인과 진보 진영의 학자들이 엮어서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2008년 12월 부터 2009년 4월 기간의 4개월 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원고와 이 책을 위한 연구 모임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구술한 육성 기록을 가능한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저자는 퇴임 이후 우리 사회 민주주의 공론의 수준을 높일 책, 민주주의 발전사에 도움이 될 책을 쓰고 싶어 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몰두했던 주제는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며, 국민 삶과 직결되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위해 진보 세력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였다.
진보냐 보수냐의 이념적인 논쟁은 사람들이 피곤해할 수 있는 정치적인 성격이지만 현실에서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이다. 회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하든지 이 주제를 넘어서야 우리 운명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다. 이 논쟁은 크게 보면 ‘진보냐 보수냐’라는 커다란 두 개의 물줄기로 구성된다. 이 주제에 대한 수 많은 논쟁이 1백개의 셋강이라도 결구 이 두 개의 큰 줄기 속으로 합류하고 최종적으로 국민의 행복이라는 하나의 강에 통합된다. 그래서 이 진보와 보수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과 이해와 선택은 불가피하지만 맞서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진보와 보수 논쟁의 핵심은 국가의 역활에 대한 것이다.
16세기 중상주의 시대를 시작으로 자본주의 시대가 열린 이후로 사람이 살아가는 대부분의 가치가 돈을 중심으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정치체재로서 민주주의는 돈 이야기 보다는 자유와 인권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정치는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세상은 돈으로 힘을 가진 보수주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보수주의는 돈을 가치의 중심에 두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이야기를 경제(돈) 이야기로 시작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심지어는 진보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조차 경제 이야기로 시작해야 말이 통하는 시대이다.
보수주의는 작은 정부론을 주장한다. 시장의 완전성을 주장하면서 “정부는 시장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한다. 정부의 재정 규모를 줄이고, 시장에 대한 규제를 줄이고, 심지어 정부 조직도 줄이라고 요구한다. “기업 경영은 민간에 맡겨라. 시장에 개입하지 마라. 규제를 철폐하라. 노동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방화된 시장과 자유 경쟁을 강조하는 보수주의 논리의 귀결이다. 당연히 진보주의를 큰 정부로 몰아 붙인다.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주장하는 진보주의는 복지를 위한 국가의 역활을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시민은 큰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진보 정권은 ‘큰 정부’라는 말에 대한 반감을 줄이고자 ‘할 일은 하는 정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큰 정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 진영은 자유경쟁 체제인 자본주의 시장의 한계와 실패를 말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진보주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는 상대적으로 보수주의보다 정부의 역활이 커질 수밖에 없다.
보수주의는 경제의 활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진보 진영은 사회 구성원간의 연대의 가치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진보와 보수 사이의 논쟁은 경제의 활력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 주장이 국민들의 정서에 영합하고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국민 정서에 영합하는 이유는 국민들이 진보주의 정부 조차 불신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수 논리가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내용에 있어서 타당성을 부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간에 서로 용납하지 않는 핵심 쟁점은 ’복지와 분배‘이다. 가장 타협 없이 싸우는 쟁점은 “국가가 분배에 얼마나 깊이 개입할 것인가? 세금을 얼마나 거두어서 복지 지출을 얼마나 하고, 사회적 보장을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태도를 가지고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20세기 후반인 1970년대 부터 부각된 신자유주의는 시장과 경쟁을 강조하고, 작은 정부, 세금 감면, 복지의 축소, 국영기업의 민영화, 규제 철폐, 노동의 유연화, 개방화 등의 정책을 주장한다.
보수주의 진영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가감없이 그들의 정책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진보 진영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라는 논리를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구별하려고 한다. 진보 진영이었던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IMF 이후로 신자유주의 기조에서 정책을 펼쳤다. 이에 대하여 진보 진영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두 정권을 보수주의라고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