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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익수 Feb 06. 2024

오독의 즐거움

남궁민

이제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하면 시중에 출판된 웬만한 책을 원하는 분량만큼 요약한 그럴듯한 서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평소 글을 쓰지 안았어도, 글솜씨가 부족해도 그다지 문제가 안된다. 그렇게 AI가 만들어낸 요약한 글은 모범생이 쓴 정답 같지만 그 글에는 느낌과 감동이 오지 않는다. 그냥 기계적으로 잘 요약된 글일 뿐이다.

인공지능은 출판사가 자사가 펴낸 책의 홍보를 위하여 인터넷에 올린 도서정보를 주로 검색하여 필요한 만큼 요약한 글을 뚝딱 만들어 낸다. 이렇게 요약한 내용으로 소개되는 책은 무리없이 괜찮아 보이고, 책 내용에 편향된 시각이나 검증이 충분히 안된 내용이 들어 있어도 AI는 비판하거나 자신의 판단을 내놓지 않는다. 글쓴이의 비판이 빠진 글은 문자들의 모음에 지나지 않고, 그렇게 엮어서 내놓은 책은 두꺼운 종이 묶음일 뿐이다.

미래 언젠가 인공지능이 자신의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담아서 책을 요약한 글을 내 놓는다면 2001년에 개봉된 영화 A.I.가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러한 세상이 오면 나는 이같은 글쓰기를 멈추거나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사회과학, 인문, 경제, 역사 분야의 다양한 책을 읽은 저자가 그중에 46권을 선정하여 책의 내용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펴낸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나름 가치있다고 믿는 책을 읽고서 저자의 시각으로 찾은 자신만의 ‘다른 관점’을 쓴 글을 담은 서평을 모아서 출판되었다. 여기서 ‘다른 관점’은 저자의 시각으로 책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해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는 다른 관점으로 책을 읽는 것을 오독(誤讀)이라고 표현했고 이 단어를 책 제목에 사용했다.

독서에 내공을 많이 쌓은 저자가 책을 선택하는 취향이 특별하다. 일부러 번듯한 베스트 셀러 자리에 오른 책을 선택하는 것은 피한다고 한다. 그대신 수년 전에 절판되어 헌책방 서가에서 벌을 서고 있던 책을 고른다고 한다. 흥행에는 실패한 절판된 책이 좋은 독자를 만나면 충분히 빛을 볼 가치가 있는 저주받은 걸작이 된다고 한다.

저자는 어떤 책을 읽은 후,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정리한 글로 남겼다면 그 책을 등기(登記)한 것이라고 재치있게 표현한다. 책을 제대로 읽고난 후 그 내용을 자신의 소유물로 도장 찍었다는 뜻이다. 자신의 소유로 된 책의 내용은 비로소 나의 생각과 문장으로 드러난다. 저자가 등기한 두권의 책 중에서 그러한 문장을 일부 인용해 본다.


*** 헤지펀드 열전 [More Money Than God] ***

세상은 합리적이지 않고 오류와 부조리가 가득하다. 그래서 인간사회의 비합리성을 포착하여 세상을 삐딱하게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타트업은 경영학이 아닌 사회학에서 다뤄야 하는 '심리 상태'와 '세계관'이다.

*** 천재들의 실패 [When Genius Failed] ***

세상에 천재는 있지만 나머지도 꽤 똑똑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돈 문제에 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금융 모델이 어떻고, 알고리즘이 어떻고... 어려운 예기를 해도 인간은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기술'과 '천재'에 대한 환상은 항상 값을 치르기 마련이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책들은 저자가 모두 등기했고 하나같이 사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탐나는 책들이다. 저자가 읽고 쓴 글을 읽다 보면 각 책들의 내용이 한 눈에 들어 오는 듯하다. 사회 경험이 상대적으로 짧아 보이는 저자이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선택하여 읽은 46권의 책을 통찰(Insight), 시장(Market), 패권(Money), 인간(Human)의 4장으로 분류하고 세상을 자신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시각이 너무 좋다.

이 책에 들어있는 책들을 모두 읽어 내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데, 저자 덕분에 많은 지식을 한보따리 얻어가는 즐거움이 참 크다. 개인이 등기한 자산이 책으로 공유되었다. 이 한권의 책은 가독비(可讀比)가 높아서 책을 읽고 배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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