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서점에 들렸다가 제목에 눈에 들어와서 구입했다. 개인적으로 수학은 참으로 멋있고 대단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자의 눈으로 본 세상은 어떠할까 호기심으로 이 책을 골랐다. 그런데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수학 이야기는 양념 정도밖에 없고 저자의 불교를 포함한 종교계에 대한 생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직업이 수학교수인 저자는 종교학자는 아니지만 불교에 대하여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30년 가까이 참선을 하면서 채식주의자로 살아 온 이력도 특별하지만 특히 불교에 대한 지식은 매우 박식하다. 수학은 당연하고 역사, 과학, 진화론, 생물학, 현대우주론 등을 포함하여 저자는 다방면의 잡학다식함을 이 책에서 보인다.
저자가 쓴 글은 재미와 흥미 위주로 보면 문제가 없지만 개인적인 견해가 지나치게 많이 반영되어 있다. 저자의 종교, 특히 불교에 대한 주장을 독자 스스로 공부와 고민없이 정답처럼 신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미 자신만의 결론을 내려놓고 거기에 부합한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근거들을 취사선택하여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기존 종교계의 신부, 목회자, 승려들에 대한 부정적인 사례와 측면만을 극대화하여 서술하고 있다. 신앙과 종교를 접하는 초심자에게는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지 못하게 하여 종교의 본질을 놓치게 하고 개인 신앙의 가치를 폄훼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내가 보기에는 세상은 기이하지 않고 원래 생긴데로 돌아 가고 있을 뿐이니, ‘기이한 수학자가 본 세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우주론은 세상의 처음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지구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나의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질문한다. 인간중심의 관점에서 신(절대자)의 개입과 의지에 의하여 지금의 절묘한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입장과, 무한반복적인 우연에 의한 발생과 진화를 통하여 인간을 포함한 우주가 저절로 만들어 졌다는 입장 중에서 선택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한다. 누구나 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며 중간의 선택은 어정쩡할 뿐이다. 전자는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라고 하고, 후자는 코페르니쿠스원리(Copernicus Principle)라고 한다.
저자는 100% ‘코페르니쿠스원리’를 선택했다고 보이고 이 책은 이러한 저자의 생각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이 중에 가장 핵심 주장인 무아연기론(無我緣起論)을 요약해 본다. 무신론자인 수학자 저자가 신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이 흥미롭다.
"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본 사람들은 신을 믿기 힘들다. 그래서 일까 신학자들은 대부분 무신론자들이다. 반면에 자연과학 중 가장 현실과 유리된 학문을 하는 수학자들 중에 유신론자가 가장 많다."
무아론(無我論)은 “영원한 실체로서 자아는 없다.”는 불교 이론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우주적인 절대 실체(신)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가 ‘무아’임으로 세상의 모든 현상은 ‘무한한 조건의 덩어리(연기,緣起)’라는 논리이다. “생명체 안에 고정불변한 영원한 실체(생각,의식)는 없다.”라고 ‘부처가 선언했다.’고 근거를 주장한다. 원래 '생각'이란 것 자체가 없으니, 합리주의 철학자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엉터리라고 주장한다.
연기론(緣起論)은 모든 현상이 생기(生起) 소멸하는 법칙을 설명하는 불교 이론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모든 현상은 수많은 원인인 인(因)과 조건인 연(緣)이 모여, 절대적인 설계자 없이, 저절로 만들어 진다. 삼라만상에는 궁극적인 본질이 없으며 오직 서로간의 관계에서만 일시적으로 의미를 가진다.
[추신] 연기론은 운명론을 전제로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우연히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온갖 삶은 우연의 연속으로 보이지만 우주 창조때 부터 미리 정해져서 역어진 운명의 결과이다. 그리스 시대의 신탁(神託)이나 종교개혁시대의 운명예정설이 운명론과 같은 맥락이다. @2022 3.17
저자는 두가지 이론을 묶은 무아연기론(無我緣起論)을 주장하기 위하여 다윈의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끌어 들여서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 진화론은 인류역사상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지만, 부처의 무아연기론은 다윈의 진화론과 더불어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다. 진화론의 사상적 배경이 무아연기론이다. 어떤 면에서는 쌍둥이 이론이다. 하나는 물질적인 몸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마음에 대한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학적 진화에는 그 어떤 절대의지의 개입도 없다. 부처는 “나란 실체가 본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것의 근본인 제1원인으로서 신은 없다. 무아연기론은 생물체가 유전자를 통해 이어지는 진화론과 만날 수 있다. 제1원인이 없는, 즉 설계자가 없는 설계, 경쟁자가 없는 경쟁이 바로 진화론이다. 」
여러 불교의 고승이 설법에서 가르치고 있는 '참나론’은 저자가 극구 부정하는 불교 이론이다. 유아론(唯我論), 진아론(眞我論)으로도 표현되는 참나(True Self)는 인도 사상의 정신적.영구적인 실체인 아트만(Atman), 기독교나 카톨릭의 성령(Holy Spirit)과 같이 정신적이고 영적인 존재를 말한다. 참나론이 좀 심하면 “실재하는 것은 자아뿐이고 다른 모든 것은 자아의 관념이거나 현상에 지나지 아니한다.”는 주장까지 나가기도 한다. 나는 저자가 불교계에 일으키는 논쟁의 핵심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후, 저자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다 재미있는 내용을 보았다. 어떤 강연 혹은 인터뷰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신은 100% 망상이다.’라고 하는 저자에게 ‘그렇다면 뭘 믿느냐?’고 물었다. “인간의 가능성을 믿습니다.”가 답이었다. 인간의 '의지'를 인정하는 듯한 답인데, 저자는 인간의 생각(참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불교닷컴은 기성 불교종단의 활동과 가르침에 안티를 표방하는 온라인 언론매체이다. 이 책은 저자가 불교닷컴에 2014년 6월부터 약 2년간 연재한 글을 묶어서 출판되었다. 연재하는 글마다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고 한국 불교권 내에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전개를 알고도 계속 연재했고, 2016년 7월에 출판된 이 책이 약 1년 후에 초판 6쇄까지 나온 것을 보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노이즈 마케팅 수혜를 받은 셈이다. 책 제목에 끌려서 읽었지만 짧게나마 불교 교리를 접한 것은 소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