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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그냥 Aug 30. 2024

뉴진스의 선택, "순수의 시대"

고전문학

 오늘 읽을 책은 다른 날에 비해 아주 미리 정했습니다. 미국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여성 작가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라는 고전 문학입니다. 사실 평소에는 고전문학을 잘 안 읽는데요. 내용이 어렵다 보니 읽어도 머릿속에 잘 안 들어오더라구요.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어느 날 보게 된 한 기사 때문입니다.


"쇼츠와 릴스의 시대, 청년들의 독서열풍 ‘텍스트 힙’이 뭐길래?”


 독서를 오래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기사를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소수의 영역이라 생각한 독서가 청년들에게 열풍을 일으켰다니요. 이건 마치 몇 년간 구독자 10명에 머무르던 유튜브 채널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기사에서는 올해 6월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15만 명이라는 역대 최대 인파가 몰렸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그중 70%나 2030 세대였다는 말과 함께요. 뉴진스의 Bubble Gum 뮤직비디오에 한 멤버가 고전문학을 읽고 있는 장면이 나와 그 책의 판매량이 8배나 뛰었다고 합니다. 요즘 Z세대들 사이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독서를 하는 게 하나의 힙한 문화가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아쉽게도 저는 M세대라  문화에 끼지는 못하지만 미리 책을 읽고 있던 사람으로서 굉장히 환영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뉴진스의 뮤직비디오에 나온 그 고전문학 ‘순수의 시대’를 읽어보기로 했어요. 트렌드를 선도하는 뉴진스가 특별히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거 같아서 궁금했거든요.


 고전 문학의 특성상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요약하면 주인공은 3명입니다. 뉴랜드 아처와 메이 웰랜드, 엘렌 올렌스카. 아처는 미국 상류 사회의 위선에 염증을 느끼는 남자입니다. 여기서 위선은 1870년대 미국 상류 사회가 불필요한 전통과 허례허식을 지키며 우아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스캔들을 캐내며 험담하고 때로는 뒤에서 몰래 방탕하게 생활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말합니다.


 메이는 이 책에서 표면적인 순수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아름답고 순수하며 우아하고 사랑스러워요. 그리고 전통과 관습에 순응합니다. 규칙과 예절을 중시하는 미국 상류 사회에서의 교육을 순탄하게 받아 자연스럽게 품위가 묻어나요. 하지만 뉴욕의 딱딱한 문화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아처에게 메이는 불합리한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답답한 사람이기도 해요.


 반면 자유분방한 엘렌은 당시 뉴욕의 귀족들이 보기에 거슬리는 게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에는 숙녀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른 신사에게 다가가는 게 예법에 맞지 않았어요. 신사가 먼저 다가오기까지 망부석처럼 기다려야 했죠. 하지만 엘렌은 복도를 가로질러 뉴랜드 아처와 얘기하기 위해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유럽의 자유로운 문화를 경험한 엘렌에게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아처를 비롯한 다른 귀족들에게는 놀라운 일이며 뒤에서 얘기가 오르내릴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내면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면적 순수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하하.

※ 이면 : 겉으로 나타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


 아처는 자유롭고 당당한 엘렌에게서 색다른 매력과 흥미를 느낍니다. 메이와 약혼한 상태인데도 말이에요. 안 그래도 관습의 허구성에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남들과 달리 규범을 깨부수는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 수밖에요. 자, 이제 아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안정적으로 메이를 선택해 고리타분한 미국 기성사회에서 숨 막히는 삶을 사느냐, 가문에서의 위치를 내던지고 사회적 시선을 감당하며 파혼하고 엘렌을 선택하느냐. 스포를 방지하기 위해 결론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순수의 시대의 인물들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위처럼 평면적이지만 소설을 실제로 읽어보면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이 굉장히 입체적입니다. 구닥다리 전통에 환멸을 느끼는 아처는 자신이 살아온 터전인 뉴욕 사회에 온전히 반발할 수 있을까요? 자유분방한 엘렌은 폐쇄적인 뉴욕 사회에서 당연히 저항하는 태도를 보일까요?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던 메이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까요? 하하하. 순수의 시대로 들어오세요!


 이 책에는 인물들의 관계뿐만 아니라 시대와 공간적 배경에도 수많은 흥미로운 디테일들이 숨겨져 있어요. 여성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남성의 일탈은 용인하는 부조리, 상업주의에서 출발한 미국의 엇나간 문화 추종, 상류 귀족 가문 간의 관계 등 훨씬 더 많은 매력적인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고전문학을 읽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영화도 있으니 책이 부담되면 영화로 보는 것도 추천해요.


 이 책의 제목은 왜 순수의 시대일까요? 저는 이 책의 제목 앞에 ‘꾸며진’이라는 괄호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해요. (꾸며진) 순수의 시대. 제목은 순수의 시대이지만 사실은 실체 없는 순수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시대를 비판하는 거죠. 유럽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지 못한 미국은 유럽에 대한 선망과 시기로 유럽의 귀족들보다 형식과 예법에 집착합니다. 순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욕망으로 가득한 허례허식은 실체가 없습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순수를 표방하지만 욕망으로 가득 찬 사회의 표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 퓰리처상을 받지 않았나 조심스레 예상해 봅니다.


 그럼 뉴진스는 왜 뮤직비디오에 이 책을 등장시켰을까요? 초월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뉴진스는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이게 진짜 순수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뮤직비디오에서 뉴진스 멤버들은 청량하고 소녀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순수 그 자체이며 자유롭고 자연스러워 보여요. 누군가는 윤슬 같다고 표현합니다. 윤슬은 물에 햇빛이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해요. 화제의 프로듀서인 민희진 씨는 순수의 시대라는 작품이 나온 지 100년이 다돼 가지만 아직도 존재하는, 위선으로 점철된 거짓된 순수 사이에서 진짜 순수의 필요성을 메시지로 던지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책에 대한 리뷰를 끝내고 질문을 남겼어요. “여러분은 순수한가요? 책에서처럼 실체 없는 순수를 추구한 적도 있나요?” 엄청 고풍스러운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있어 보이죠? 하지만 독서모임에서 이런 질문은 불친절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대답하기 어렵기도 하고 추상적이거든요. 그래서 질문을 바꿨습니다. “여러분은 통제를 선호하시나요, 자유를 선호하시나요?” 위 책에서의 주된 대립은 통제된 귀족 사회와 자연스러운 자유 사이의 대립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바꿔봤어요. 이 질문도 어려울까요? 그러면 MBTI에서 J인지 P인지로 질문할 수도 있어요. J는 판단을 통해 자신만의 정답을 가지고 계획하기 때문에 통제를 하려 합니다. P는 인식을 통해 미리 틀을 정하지 않고 현재, 순간의 상황에 맞는 최적의 선택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유를 원해요. 다행히 오늘 참석하신 분들은 통제와 자유의 질문만으로도 좋은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은 대부분 통제를 선호하셨어요. 물론 책에서 나온 허례허식으로 가득한 통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제라는 건 책에서처럼 의미가 불분명할 경우 허례허식이 되지만 안정을 위해 정말 필요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원래는 자유를 추구했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며 안정을 찾다 보니 규칙 속에서 사는 게 편해졌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통제를 선택하는 것도 자유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셨고요.


 저는 어쩜 이렇게 청개구리 같이 반대 의견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주 강한 통제파였습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계획하고 실천하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렇다고 이런 통제를 타인에게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에게는 아주 엄격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당황하고, 실컷 계획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온 거 같아요. 무분별한 통제의 무의미함을 깨달아버렸습니다. 통제보다 중요한 건 자연스러움이더라구요. 과거엔 통제를 선호했었지만 지금은 자유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완벽한 글을 쓰기 위해 틀을 짜고 채워 넣으려 하지만 억지로 내용을 쑤셔 넣으니 글이 연결이 안 되고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럼 글이 안 써지는 거죠. 그런데 ‘잘 써야겠다, 계획대로 써야겠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자연스럽게 글이 써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도 돌아보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대학, 전공과목, 취업 등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엄청나게 고민했지만 저의 삶은 그때 고민하고 예측했던 미래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어요. 물론 계획과 고민과 통제가 언제나 불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매몰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통제를 선호하나요, 자유를 선호하나요? 자신을 향한 통제인가요, 타인을 향한 통제인가요? 자유와 책임 사이의 균형은 어떤가요? 하하하. 바쁜 일상이지만 가끔은 이런 고민을 해보는 것도 풍요로운 삶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뉴진스의 Bubble Gum을 들으며 가볍게 즐기기만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이처럼 깊은 사유를 더해보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게 해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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