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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그냥 Aug 23. 2024

가까운 사람에게 더 화를 내는 이유

뇌과학

 오늘은 독서모임에 도착할 때까지 읽을 책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독서모임을 오래 하다 보니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생각이 안 날 때가 있어요. 사실 늦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어때요. 생각이 안 나고 늦으면 때로는 독서모임에 도착해서 책을 정할 수도 있는 거죠. 하하하. 그래서 독서모임에 가서 당당하게 얘기했습니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지 안 정해왔습니다.”


 마치 자랑처럼 늘어놓는 고백에 같이 참석한 모임원이 어이없어 웃네요. 오늘 참석하신 분들이 모임에 오래 나온 고인물(?) 분들이라 제가 마음이 더 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서 같이 정해달라고 했어요. 후보는 완전히 과학적인 책과 인문학이 서너 스푼 들어간 과학책. 한 회원 분이 오늘 가져온 책들이 대부분 인문학에 가까우니 통일성 있게 ‘과학책 with 인문학 서너 스푼’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정한 책이 ‘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사실 이 책은 전에도 한번 읽었던 책이에요. 한참 뇌과학에 빠져있을 때 읽었던 여러 뇌과학 서적 중 손에 꼽게 인상 깊었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한때 끼고 살았던 뇌과학에게 요즘 너무 소홀했던 거 같아 이 책을 오늘 읽을 책의 후보로 올렸었죠.


 뇌과학에 빠져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때 당시 저의 생각과 행동의 원리를 알고 싶었거든요. 기계의 작동 원리를 알고 싶으면 기계를 해부해 분석을 해봐야겠죠. 핸드폰에 설치된 애플리케이션의 오류를 찾기 위해서는 앱을 구성하는 소스를 분석해야 합니다. 논리와 논리를 연결해 결론을 도출하는 합리적이고 연역적인 방법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행동과 생각의 원리를 알기 위해서 뇌를 분석하지 않아요. 그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했는지 유추할 뿐이죠. 여러 사례를 모아 결론을 도출하는 경험적이고 귀납적인 방법이에요. 귀납적 추론 방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단 하나의 반대 사례만 있어도 기존의 이론이 무너질 수 있어요.


 그럼 신뢰가 떨어집니다. 저는 욕심이 났어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좀 더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연역적으로 탐구할 수는 없나?사람의 행동을 분석할 때, '이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막연한 결론만 내리는게 아니라 '뇌의 어떤 부위나 호르몬 때문에 저런 행동을 했구나' 하고 명확한 근거를 찾을수는 없나? 뇌과학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지배하는 건 컨트롤 타워인 뇌이니까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특히 뇌를 관측할 수 있는 장비의 발전으로 뇌를 분석하는 시간적, 경제적 비용이 많이 줄었습니다. 덕분에 뇌를 연구해 마음과 행동의 기전을 밝히는 뇌과학이 점점 발전했어요. 뇌과학을 향한 저의 수요와 뇌과학의 발전이라는 공급이 균형을 이뤄버렸습니다.


 전에 한번 읽었던 책이기에 처음부터 읽지 않고 관심이 가는 제목의 챕터를 읽었어요. 제목은 “친한 친구에게 문내측 전전두피질이 더 반응하는 이유”입니다. 제 기억에 의하면 이 부분은 왜 친한 사람에게 더 화를 내는 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아주 흥미로운 얘기를 다뤘거든요.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 잘해줘야 할 텐데 오히려 더 화를 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에게 짜증을 내고 친구들과 싸우며 연인과 전쟁(?)을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까운 사람을 마치 ‘나’인 것처럼 인식해서입니다. 타인을 자신과 동일시하다 보니 자신과 같지 않은 모습에 화가 나는 겁니다. 자유롭고 싶은데 자꾸 통제를 가하는 부모님에게 짜증이 나고, 나처럼 행동하지 않는 연인에게 나처럼 행동하라고 강요하게 됩니다. 자신과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거죠. 보통 우리는 이렇게 행동하면 사람이 미성숙했다고 치부해 버립니다. 사실 그것도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이건 경험을 통해 답을 찾으려는 귀납적인 방식이에요. 인과관계도 뚜렷하지 않죠. 하지만 이 책에서는 뇌를 관찰함으로써 이 현상을 연역적으로 밝혀냅니다.


 ‘나’를 생각할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위가 있습니다. 거기가 바로 문내측 전전두피질이에요. 단어가 많이 낯설죠?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별거 아닙니다. 먼저 전전두피질을 알아보겠습니다. 우리의 뇌는 전두엽, 측두엽, 후두엽, 두정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충 단어만 보면 뇌의 앞, 옆, 뒤, 정수리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전전두피질은 전두엽 중에서도 앞부분에 해당한다 하여 ‘앞 전’이 한번 더 붙었습니다. 피질과 엽은 같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거 같아요. 전전두피질은 쉽게 말해 뇌의 앞앞부분이에요.


 이제 문내측을 알아봐야죠. 일단 배(背), 문(吻), 복(腹)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 이름 같죠? 배의 한자는 ‘등 배’입니다. 문은 ‘입술 문’이에요. 복은 ‘배 복’입니다. 해부학 용어는 주로 실험동물들을 연구하며 정해졌는데요. 그래서 쥐를 생각하면 편합니다. 쥐의 등, 입술, 복부. 그래서 배측(등)은 위쪽, 문측(입술)은 가운데쪽, 복측(배)은 아래쪽입니다. 한글 배와 한자 ‘등 배’가 혼동하게 만드네요. 단어에 매몰되지 않고 그림으로 기억하면 더 쉬울 수 있어요. 종합하면 문내측 전전두피질은 뇌를 가로로 보았을 때 앞 중에서도 앞에 있고, 세로로 보았을 때 가운데 있는 뇌의 한 부분입니다. 별거 아니라고 했는데 별거인가요? 하하하. 원래 다 그런 겁니다.


 그래서 이 뇌과학자들이 무엇을 밝혀냈냐면요. ‘나’를 생각하면 이 문내측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관찰을 통해서 밝혀냈습니다. 더해서 나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을 생각할 때도 이 부분이 활성화된다는 것을요. 이것을 밝혀내기 위한 실험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려 한국에서 한 실험이에요! 자녀를 둔 어머님들에게 엄마 자신, 자녀, 피겨스케이트 선수인 김연아 선수의 성격을 판단하는 과제를 수행하게 하고 뇌를 관찰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성격 특성을 판단할 때는 문내측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고 김연아 선수의 성격 특성을 판단할 때는 안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녀의 성격 특성을 판단할 때도 이 문내측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돼버린 거예요.


 이를 통해서 우리는 몇몇 부모님들이 왜 그렇게 자녀를 들들 볶는지 알 수 있어요. 부모님 자신에게 가하던 통제를 자녀에게도 가하는 거죠. 또한 어렸을 때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면 자녀와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녀만큼은 그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녀의 마음과는 별개로요. 자녀도 자신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 부모님의 모습에 짜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연인과의 다툼에도 적용할 수 있어요. 나라면 이렇게 행동했을 텐데, 나처럼 행동하지 않는 연인의 모습에 짜증이 나고 불만을 가지는 거죠. 그래서 자신의 말을 더 들을 수 있도록 통제하려 합니다. 그게 심해지면 가스라이팅이 될 수도 있구요.


 저는 이러한 설명이 너무나도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이 설명에 따르면 가까운 사람에게 더 화를 내는 이유는 문내측 전전두피질의 활성화로 보아 타인과 자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입니다. 단순 미성숙함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합리적이고 연역적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통제하려 할 때 나 자신과 타인을 동일시하는 건 아닌 지 자문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을 보며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길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이런 배움이 사람을 포용하는 능력을 길러가는 과정이겠지요.


 누군가는 ‘문내측 전전두피질을 알아도 의도적으로 비활성화를 할 수 없는데 무슨 소용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문내측 전전두피질을 꺼야지’라며 생각한다 하더라도 문내측 전전두피질이 꺼지진 않을 거예요. 생각으로 우리의 뇌를 바꿀 수 있느냐. 아주 심오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뇌에는 실험과 사례를 통해 ‘가소성’이라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뇌 가소성은 학습이나 경험, 환경에 따라 뇌가 끊임없이 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특징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과 경험으로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옳을 가(可)와 흙빚을 소(塑)로 구성되었는데요. 물리학에서 ‘소’성(Plasticity)은 무언가에 힘을 가하여 변형시키면 변형된 형태를 유지하는 성질입니다. 찰흙이 딱 그러하니 아주 적절한 한자선택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가’자가 저는 ‘가능할 가'일 줄 알았는데 ‘옳을 가’더라구요.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 변하는 뇌는 옳은 방향으로 변한다!’라고 초월 긍정 해석을 해봅니다. 합리적인 생각을 위해 연역적 사고를 추구한다고 했는데 귀납법도 아닌 맹목적 믿음의 사고를 해버렸네요. 하하하. 사람은 누구나 모순을 품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책에 대해 리뷰를 하고 모임원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타인과 자신을 동일시했던 경험이 있던 것 같나요?” 우리 소중한 고인물 모임원들은 답변을 잘해줘서 너무 좋아요. 한분은 자신도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자신에게 가하던 통제를 주변인에게 가했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점이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안 하려 한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지 않고도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성찰하니 너무 훌륭한 사람입니다. ( 보통 독서모임은 서로를 향한 칭찬이 넘칩니다. )


 이런 얘기도 나왔습니다. 타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도에 따라 이상형도 달라질 거라구요. 누군가는 자신과 닮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자신과 동일시해도 문제가 안 생기는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는 거죠. 어쩌면 과거에 자신과 너무 다른 사람을 만나 대차게 싸우고 상처받았던 경험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누군가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자신과 상대방을 동일시 안 하고 타인의 다른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일 수도 있겠네요.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모습이 매력적이게 느껴질 수도 있구요. 너무 후자 쪽만 편파적으로 좋게 해석한 거 아니냐구요? 맞습니다. 기준을 ‘자신과 타인 동일시 여부'로 두니 좋게 해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는 하나의 기준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뇌 가소성을 얘기하며 자신을 바꿀 수 있다고 했지만 뇌 가소성으로 인해 의미 있는 변화가 발생하려면 사실 극한의 상황과 노력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어차피 쉽게 바뀌지 않을 자신이라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게 현명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다양성과 복잡성이 존재하는 이 세계와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다만 주관이 있을 뿐이죠. 여러 지식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을 확장해 나가면 모두에게 맞는 정답은 아니더라도 다수를 포용할 수 있는 자신만의 주관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 주관은 여러분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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