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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st Castle Jul 06. 2023

외줄타기를 듣는듯

 009 [ㅠㅠ] 리뷰


들어서며: 꿈을 꾸었던 청춘의 이야기
괴물에서 나방으로



이번에 리뷰할 앨범은 2022년에 발매된 009의 첫번째 EP앨범 [ㅠㅠ]다. 개인적으로 위태로운 한국의 젊은 세대를 드러내는 앨범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주 러프한 내용 요약



추워도 너무 추운 겨울에 한 청년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너와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집에서는 쫓겨나듯 독립한 "나"

앨범 이야기를 하는걸 보니 청년은 음악가인 모양이다.


공과금을 포함한 관리비는 다 냈지만

항상 쪼들리는 삶을 산다.

다 내가 게을러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최고가 못된 이유는 핑계라고 생각한다.

나이는 먹었으나 또래에 비한 수입이 애처롭다고 생각하지만

다들 그런거같던데 뭐

나랑은 상관 없고

돈이나 가져오라 말한다.



생각해보면 꿈을 꿨던 것 같다

너무 꿈을 꿔대서 갚을 때가 됐고

난 다 갚을거야

과거로는 돌아가기 싫고

더 올라갈 것이라고

반복해서 중얼거린다.



또 하나 떠오르는 생각

그는 그냥 성욕을 채울 행위가 필요한 줄로 알았는데

그냥 사랑이 받고 싶은거였다

날 쫓아낸 너에 대한 생각이 난다

생각해보면 네가 날 쫓아내고도

몇 개월을 욕구 충족을 위한 섹스만 해댔다.


너와 같이 있던 때가 참 좋기도 했다


그런데 그만큼 안 좋은 기억도 많았다.


나는 더 욕심을 내고

리듬을 만든다.

안전한 길은 없고

맞서다가 대가를 치루었다.

꿈을 꿀 나이에 돈을 꾸면서 음악을 만드는데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고

불완전한 내가 완벽을 바라

앨범 하나 못내고 돈만 축내는 상황

주변 사람들은 도전이고 뭐고 먹고 살기 바쁘고

돈 많은 놈팽이를 제일 부러워한다.

그리고 완벽주의로 나를 또 채찍질한다.

청년은 괴물에서 나방이 된다.


그렇게 사랑을 탐하던 괴물에서 나방이 된 청년

친구를 만나는걸 미뤘더니

그 많던 친구중 단 한 명이 남았다

네가 내 유일한 친구였지만

너까지 떠나보내야 할 정도로 나는 추해졌다.


초단위로 인지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일을 하다보니

시끄러운 서울이 지겨워졌다.

다 힘들어서 티켓 하나를 끊어다가

너의 동네로 가는 직행 버스에 올라탄다.

헤쳤다가 모이듯이

돈 버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는데

난생 처음 한숨 안 자고 바깥 구경을 하면서는

너와 했었던 꿈에 대한 대화같은

잊어버린 기억이 그보다 더 커진다.


너와 살던 집에서 쫓겨난 뒤

의미 없는 섹스를 탐하던 괴물이던 때의 생각

잘 생각해보니

형들이 가르친건 사랑이 아니라

그냥 여자랑 어떻게 섹스까지 갈 수 있는지였고

10대 때 해석한 사회는 대부분 틀렸고


20대의 행보는 지랄맞았다.

난 사람을 못 믿고

날 믿게할 의지도 없다

진정제를 입에 털어넣고는 불현듯

너랑 한 번 더 살 수 있어도

난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사랑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취중담화를 하는 듯 한 묘사

이전 트랙에서 언급한 진정제와 환각이 섞여

앞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불안함과 너에 대한 애증이 섞인 말들을

토해내듯 뱉으며


혼란한 정신상태가 계속된다.


혼란이 끝나고

네가 내 가치를 몰라준다면

나는 알 때까지 잘 지낼거고

지금 당장에 집중해서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꿨던 것들은 싹다 갚아줄거고

우리 앞날은 우리 말대로

행복할 수 있고

포기 할 수 없다고

집중해야 할 때라고

자신을 세뇌하듯이 되뇐다.


그리고 현재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내가 남았다


추워도 너무 추운 겨울이었다.


사운드: 외줄타기를 청각화한 앨범


앨범 하나만 놓고 보았을 때, 필자는 [ㅠㅠ]가 외줄타기를 청각화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변화무쌍한 플로우와 톤으로 화자의 불안한 현실과 정신을 노래 한다. 앨범에서 여러 톤을 사용하여 스토리텔링 하는 기법은 켄드릭 라마가 자주 사용하는데, "공공구 이후 래퍼들은 스토리텔링을 위해 둘 이상의 톤과 스타일을 준비하려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사운드 측면에서 EQ와 패닝이 수시로 바뀌는 부분 역시 불안감을 묘사하는데 한 몫 한다. 특히 서사적으로는 '헤쳐모여' 이후 '마지막처럼' 트랙에 도달한 뒤, 화자의 내면세계가 성장한 이후에도 여전히 불안함이 남아있음을 묘사하듯 EQ를 왔다갔다 조절하는 연출에서 앨범 전반에서 드러나는 불안이라는 키워드가 강화된다.


죽어가는 젊은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메르스 창궐, 성별갈등, 코로나 팬데믹을 거쳐 미국의 연속된 금리인상으로 인한 경기 침체까지. 대충 생각나는 굵직한 사건만 따져봐도 벌써 14년을 시달리고 있다.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에서도 점차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88만원 세대, 3포 세대, 5포 세대, n포세대까지. 10대 20대 30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이며, 이를 증명하듯 젊은 세대는 점점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 소멸국가 1호가 될 전망이라고 한다.


옛날에도 힘들었다는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2008년 이전의 한국도 IMF, 론스타 게이트 등의 사건으로 자주 휘청였다. 먹고 살기 힘든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학교 생활을, 공부를, 일을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더 나은 내일이 보장될 것이라는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2022년 합계 출산률은 0.75~0.76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추세대로라면 젊은 세대를 수식하는 단어는 이제 "힘들다" 에서 "죽어간다"로 바뀔 것이다.


어쩌면 이미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출처: 통계청

[ㅠㅠ]의 "나"는 이런 2020년대의 청년이다. 공과금이랑 관리비 내고나니 생존하기에는 너무 적은 돈이 남는 청년이다. 미친듯이 섹스에 열중했던 괴물에서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성공을 위해 친구와의 만남을 미룬 청년이다. 친구와의 만남을 미뤘더니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는 나방이 되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친구도 떠나버렸다.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전부 없이 혼자서 "성공"을 준비하는 그런 청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 꿈을 꾸기만 했으니 이젠 갚아야지.


필자는 구직중인 백수다. 그 와중에 가장 위안이 되었던 말은 "요즘 취업준비 1년 기본 아님?" 이었다. 난 대학 졸업하고 1년동안 취준하면 사람 아닌 줄 알았지


여튼 이렇게 리뷰를 쓰고나니 언젠가 들었던 그 말이 갑자기 훅 와닿는다.


"졸업하자마자 취업했다고? 성공했네?"


성공.... 성공은 뭘까. 초등학교때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게 성공한 삶인 줄 알았다. 10대 때는 월에 한 10억씩 벌면 성공한 삶인줄 알았다. 20대 초반에는 직장 들어가자마자 월 500씩 벌 수 있는 삶이면 성공한 삶 문턱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20대 후반인 지금, 나는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다는 사실 자체로 성공했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세상에 산다.


009 말마따나 꿈을 "꿨다." 초등학교 때도 하고 싶은거 다 할 수 있는 성공한 삶을 꿨고, 중고등학교때도 월에 10억정도 벌며 검정 람보르기니를 타는 나를 꿨고, 20대 초반에도 월 500정도 버는 삶을 꿨다. 그러니까 미래의 "될지도 모르는 모습"을 "빌려오기"만 했다.


그런데 가만 들어보면, 009는 꿈을 꾸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꿨으니 갚겠다 말한다. 그러니까 이를 실현할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게 아닐까. 불완전한 놈이 꿈꾸는(생각해 보면 여기서 또 꿨다.) 완벽주의때문에 제대로 된 앨범 한 장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꿈을 꾸는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서 성공을 손에 쥐어야겠다고 생각한게 아닐까. 그래서 '집중'하고 '마지막처럼'살겠다 다짐하며 2020년의 추워도 너무 추운 겨울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나에게 좀 더 열심히 살아보는 것은 어떻냐고 물은 것이 아닐까.


마치며


물론 009가 "젊은이들이 힘드니까 힘써주십쇼!" 하는 의도로 [ㅠㅠ]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도가 담겼다면 앞으로 시스템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고, 니들은 이게 잘못됐고 하는 식으로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프로덕션에 접근했다면 굉장히 꼰대스럽고, 예술적이지도 않으며 재미도 없었을 것이다.


009는 그저 보여준다. 내 이야기인지, 아니면 지인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내 이야기와 허구를 섞은 이야기인지도 밝히지 않는다. 그저 추워도 너무 추운 겨울, 섹스에 미쳐있던 어느 20대 남성의 이야기를 보일 뿐이다.


단지 보였을 뿐인 이 앨범이 어떤 이에게는 위로가, 어떤 이에게는 걱정을, 어떤 이에게는 뉴스 경제면과 청년의 위기를 연계시켜 굉장히 진지한 발상을 하도록 만든다. 이런게 정말 잘 만든 앨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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