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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스텔라 Aug 06. 2018

#1 직원 송다희 올림

호두과자와  편지


  어릴 적 휴게소에 가면 어김없이 찾았던 것이 있다. 호두과자다. 오늘은 호두과자와 함께 감사 편지를 쓰는 다희 씨를 바라보며 유년의 추억과 뭉클해진 마음이 느껴지는 하루다.


  송다희(가명, 지적장애인 2급) 씨는 서른이 되던 해에 생애 처음으로 일반 사업장인 레스토랑에 취업했다. 주방에서 애벌 설거지를 하고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어 세척이 끝나면 식기 별로 정리하는 일을 했다.


  단정하게 유니폼을 입고 머리에 캡을 쓴 채 일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예뻤다. 퇴근할 무렵에는 싱크대 주변까지 말끔히 청소하는 등 책임을 다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간혹 밤 10시가 넘어 늦게 퇴근할 때는 직접 마중을 가기도 했다.   


  다희 씨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월급날이다. 월급날이면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입금된 급여 통장을 한참이나 보고 또 보면서 스스로를 대견해하였다. 월급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다희 씨의 표정에는 돈을 벌고 있다는 직장인의 자부심이 역력했다.


  다희 씨도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힘이 드는 날에는 피곤함을 토로했다.

  “오늘 손님이 많았드래요.”

  “그랬어요? 설거지하느라 힘들었겠네요.”

  “네. 손님이 조금만 오면 좋겠어요.”

  “만약 손님이 적어 설거지하는 직원이 필요 없어지면 어떡하게요?”

  “아, 그렇겠다.”    


  이런 날도 있었다. 퇴근 후 시무룩하던 다희 씨가 식탁에 걸터앉아 턱을 괴고 있는데 표정이 안 좋았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그릇을 세 개나 깼어요.”

  “아, 다치진 않았어요?”

  “네. 그런데 사장님이 안 좋아했어요.”

  “다희 씨, 일하다 보면 그릇을 깰 수도 있어요. 사장님도 이해해 주실 거예요.”

  내가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자 다희 씨는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렇게 번 돈이어서일까, 다희 씨는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돈을 무척이나 아껴 쓰는 편이다. 자린고비가 따로 없을 정도다. 구멍 난 낡은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사자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돈을 제때 사용하는 것도 버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한참을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통장에 돈이 줄어드는 게 싫은 것이다.


  일반사업장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직장생활이 같을 수는 없다. 어렵게 구직을 해도 장애를 지닌 그들의 직장생활을 지켜보며 나는 늘 마음을 졸였다.

  아니나 다를까 레스토랑 사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다희 씨가 뇌전증으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평소 약을 챙겨 다니는데 그날은 약 먹는 걸 잊어버린 것이다. 사장님도 처음 겪는 일이라 깜짝 놀라 응급실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후 다희 씨는 몇 주간 요양을 하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다시 직장에 나가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기에 사장님을 찾아가 레스토랑 복귀를 간청했다. 간절함이 사장님 마음을 움직였을까, 다희 씨는 약을 잘 챙겨 먹겠다고 굳게 약속한 후에 예전처럼 다시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다희 씨가 직장생활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가을 낙엽이 쌓여 길 위에 구르더니 이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다희 씨가 근무하는 레스토랑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상호가 변경되고 메뉴도 바뀌었다. 홀 안에 샐러드바가 생겨서인지 작은 그릇이 줄고 큰 그릇이 늘었다. 그렇지만 손님이 줄었다는 걸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일이 줄어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다희 씨를 위로하고, 사장님께 인사도 드릴 겸 레스토랑을 찾았다. 사장님은 구조조정에 따른 인원 감축과 다희 씨의 근무상황을 이야기했다.   

  큰 그릇이 많아 식기세척기에 놓을 때는 조심해야 하는데, 요즘 다희 씨가 그릇을 깨는 실수가 빈번하다고 했다. 나는 손목에 힘이 부족한 다희 씨의 상황을 사장님에게 이야기하고 부탁을 드렸다. 다희 씨는 좀 더 조심성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으로 계속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이후 별 탈 없이 순조롭게 직장생활을 잘한다 생각했는데 어느 날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결국 경영악화로 레스토랑을 폐업한다는 것이었다. 폐업 소식에 실망할 다희 씨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날 저녁, 다희 씨에게 폐업 상황을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다희 씨는 이제 일을 못하는 거냐며 눈물을 글썽이며 속상해했다. 다희 씨는 일을 금방 배우니까 앞으로도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내가 돕겠다고 하자 그제야 시무룩했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다음날 사장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러 갔다. 다희 씨는 아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되고 첫 직장과 이별해야 하는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다희 씨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분전환을 위해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다. 다희 씨는 호두과자를 산다고 했다. 일 년 반 가량 근무했던 직장 사장님에게 드릴 선물이라고 했다. 자린고비 다희 씨가 지갑을 꺼내 계산하는데 유독 아름다워 보였다. 다희 씨는 호두과자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사장님과 사모님에게 편지를 썼다.     



 사장님 사모님께

 안녕하세요. 저 다희예요.

 1년 반 동안 다닌 직장이 문을 닫는다고 하니 아쉬워요.

 그동안 일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잘 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사장님 사모님 건강하세요.

      직원 송다희 올림    



  편지를 쓰는 다희 씨의 얼굴을 보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때론 고충을 토로했지만 그래도 다희 씨에게 직장에서 보낸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에 사장님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다희 씨에게는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며 응원해 주었다. 취업 추천서를 부탁드리자 흔쾌히 써주겠다고도 했다.


  다희 씨는 정성껏 포장한 호두과자와 편지를 사장님에게 두 손으로 건넸다. 사장님도 눈가에 맴도는 아쉬움을 애써 참으며 조용히 다희 씨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직장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삶의 일터이자 행복이다. 장애인도 사회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노력의 대가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희 씨는 장애라는 어려운 역경을 딛고 비장애인과 똑같이 땀을 흘렸다. 첫 직장에 대한 좋은 기억만큼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다음 직장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리라 확신한다.

  계속해서 다희 씨가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찾아볼 것이다. 마음에 드는 직장을 구해서 직장동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어서 보고 싶다. 다희 씨와 내가 바라는 보통의 행복이란, 신성한 노동 속에 함께 땀을 흘리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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