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냐 밤이냐, 비행시간대 선택 장애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은 1학년때부터 아이돌 노래를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브’라는 그룹의 팬이 되었고, 멤버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장원영은 신이 되었다. “엄마, 장원영이 소고기보다 더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장원영은 어느 나라 사람이게?” 딸은 장원영이 소고기보다 좋아하는 것은 빵이고, 아빠가 대만사람이며, 어릴 때 영어유치원에 다녔고, 수영을 좋아한다는 등 자신이 새롭게 알게 된 장원영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해주었다. 나의 유튜브 뮤직앱에는 아이브 노래로 채워져 자동재생 목록으로 플레이하면 아이브 메들리가 나왔다. 아이돌이라면 내 기억에는 샤이니가 마지막이고, 그것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러니까 요즘 노래는 거의 몰랐는데 큰 딸아이 덕분에? 아이돌 그룹 이름도 알게 되고,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아이돌 멤버의 취향까지 꿰뚫게 되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 수속을 밟기 위해 줄을 섰다. 우리는 짐을 거의 안 부쳤기 때문에 이고 지고 있는 짐이 많았고, 둘째는 유모차에 타고 있었으며 첫째도 나름대로 배낭을 메고 있었다. 안내하시는 분이 우리를 보더니 아이들이 있는 가족의 경우 더 빨리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며 안내해 주셨다. 오. 아이들 덕을 보는구나.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일반 사람들이 서는 줄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했다는 반전이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검색대에서 말을 못 알아듣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을 모두 이해해 주는 친절한 분위기였다. 이런 배려는 아이들과 빨리 출국수속을 도와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엄마아빠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한 것 같다.
코로나 이후 해외여행객들이 많아져 출국수속을 밟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서둘러 왔는데, 예상외로 일찍 들어왔다. 그것은 좋은데, 아이들하고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무엇을 한담? 비행기 탑승구 옆 벤치에 앉아 통유리 창문으로 비행기가 뜨는 모습을 열 번은 더 넘게 본 것 같다. 아이들은 처음엔 신기해했지만, 계속 보다 보니 그려려니 하는 눈빛으로 이륙하는 비행기를 쳐다보았다. 사진도 찍어주고,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했지만 나의 노력과는 반대로 그럴수록 점점 더 지루해하고 있었다. 앞으로 비행기 안에서 14시간을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 되었다. ‘비행기 사고가 나면 어쩌지?’와 같은 큰 걱정보다 ‘이들의 짜증을 어떻게 받아낼 것인가?’ ‘옆 자리에는 괜찮은 사람이 앉을까?’ 같은 잔잔하고 매우 일어날 법한 사건들로 마음에서 먼지가 폴폴 나고 있었다.
드디어 탑승구 앞에 줄을 설 시간이 되었다. 기다리다가 지친 우리는 제일 앞쪽으로 빠르게 걸어가 줄을 섰다. 탑승구에 줄을 설 때는 아이가 있는 가족을 먼저 서게 하는 배려는 없었다. 네. 기대했습니다. 다만 앉는 좌석의 번호에 따라 줄을 세 줄로 나누어서 서게 했다. 제일 오른쪽 바깥쪽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먼 벤치에 빛이 나는 사람들 몇몇이 보였다.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들도 있어서 나는 남편에게 “연예인 인가?, 아이돌 그룹인 거 같지? 나는 아이브 장원영이랑 뉴진스 하니밖에 몰라. 에이, 아쉽다. 좀 더 많은 아이돌을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평소에 아이돌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갑자기 책망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가장 눈이 부시는 사람을 계속 쳐다보았는데, 아무리 봐도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누구지? 왜 이렇게 낯이 익지?’ 하는데 내 입에서 “저 사람은 장원영이야.”라는 소리가 나왔다. 나도 스스로 놀라서 “뿅뿅아, 저기 장원영인 것 같아.”라고 딸에게 말했다. 뿅뿅이는 “엄마, 아니야. 장원영 아니야.”라고 단호하게 쏘아붙인다. 순간 자신감을 잃은 나는 다시 살펴보았는데 장원영이 정말 맞았다. 그 순간 장원영과 아이브 멤버들이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차례차례 걸어서 우리 바로 옆으로 지나갔다. 1m도 안 되는, 한 걸음 정도의 거리에 아이브 멤버들이 스쳐갔다. 나는 순발력을 발휘하여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딸은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눈에 자석이라도 붙은 듯이 우리는 아이브 멤버들을 따라 몸의 방향을 바꾸며 쳐다보았다. 멤버들은 모두 우리가 타려는 바로 그 비행기 탑승구로 들어갔다. 그제야 입이 떨어진 딸은 “엄마, 지금 아이브가 우리랑 같은 비행기 타는 거야?” “응 그런 것 같아. 맞지? 뿅뿅아, 너도 봤지? 아이브 장원영이 맞았잖아.” “응, 맞아. 엄마! 장원영이었어.” 웬일이냐며 우리가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떨자 우리와 줄을 같이 서 있던 사람들이 묻기 시작한다. 우리 앞 신혼부부는 “진짜 장원영이었어요? 아이브요?” 뒤에 있던 아줌마는 “누구예요? 가수예요?” 조용히 앉아있다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서 움직이니 다른 사람들은 아이브가 옆으로 지나갈 때에도 그들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사실 그들에게 아이브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원영을 신처럼 모셨던 딸이 있는 우리 가족에게는 달랐다.
그때부터 비타민이 잔뜩 들어간 영양주사를 맞은 것처럼 뿅뿅이가 들뜨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덩달아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장원영을 실제로 보다니 이렇게 가까이에서! “뿅뿅아 콘서트 표를 어렵게 구해서! 콘서트 장에 들어가도! 장원영을 이렇게 가까이 볼 수는 없어. 알지?” “응, 엄마! 이건 기적이야.” 우리가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한 것은 출발하기 5개월 전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비행기로 이어지는 통로가 트램펄린 같았다. 방방 뛰면서 비행기를 탔다. ‘이건 로또 당첨이다. 장원영이랑 같은 비행기라니.’, ‘우리는 여행을 안 해도 된다.’, ‘여행 첫날부터 우리 운을 다 썼다.’, 심지어 ‘비행기 사고가 나도 우린 아이브랑 같이 사고 나는 거다.’ 이런 이야기까지 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뿅뿅이는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져서는 “이서 언니가 (아이브 멤버 중 한 명) 나보고 인사해 줬어.”라고 말한다. 나는 장원영을 찍느라 뒤에 멤버들은 잘 못 봤으니 그 이야기는 믿어주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딸이 약간 힘든 기색이 보일 때마다 나는 “뿅뿅아, 우리 지금 아이브랑 같이 비행기 타고 가는 거야.”라고 장원영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면 아이는 입꼬리가 올라가며 “친구들에게 내가 장원영을 봤다고 말하면 믿어줄까?”라며 눈을 빛냈다. 장원영 패치를 붙이니 14시간의 비행에서 딸은 한 번도 칭얼대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아이브 멤버들은 프레스티지 좌석에 앉아있어서 그들의 자리는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고, 그 앞쪽으로는 갈 수가 없었는데 이코노미석 중에서도 앞쪽에 앉아있었던 우리는 가까이 앉아있다는 기분이 있었다. 저 커튼 너머에 장원영언니가 있다. 여행 전 비행시간대를 고민하면서 이렇게 큰 행운이 함께할 줄은 몰랐다. 이런 경우 좌석선택이나 비행시간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비행기 시간대 선택, 낮 vs 밤
여행을 가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비행기 예약이다. 어떤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나? 아이들과 가는 여행이니 가격보다는 시차적응 문제와 편안함을 우선순위에 두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파리까지 가는 비행시간은 직항으로 14시간이다. 바람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참고로 돌아올 때는 8시간이다. 이렇게 긴 비행시간을 잘 버티기 위해서는 어떤 시간대가 가장 좋을까? 또 어찌어찌 비행은 버티더라도 도착하자마자 최적의 컨디션으로 여행을 해야 하는데 어떤 시간대의 비행기를 타야 수면패턴에 방해받지 않을 수 있을까? 단기 여행에서 수면패턴은 중요하다. 많은 것을 보고 즐겨야 할 시간에 아이들이 잠에 빠져 허우적대면 어른들도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 없다. 좋은 비행 시간대를 찾아야 한다. 사실 아이들에게 좋은 시간대라면 누구에게나 좋은 시간대이다. 어른들도 정신력으로 버틸 필요가 없다.
첫째는 낮 시간을 이용한 비행이다. (대한항공) 아침에 출근하듯이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공항으로 간다. 공항에 9시쯤 도착해서 수속을 밟고 낮 12시 5분 비행기를 탄다. 기내에서 영화 보고 맛있는 거 먹고 게임하고 놀다가 피곤해질 때쯤 내린다. 현지시각 오후 6시 반이다. 공항에서 짐 찾아서 택시 타고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바로 자면 된다. 그런데 이 방법은 아이들과 14시간을 지지고 볶아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아이들은 일단 비행기에 타면 신이 난다. 새로운 환경에다 선물도 주고 기내식도 나오고 게임도 할 수 있다니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한국시간대로 낮시간이기 때문에 기내에 조명이 어두워져도 아이들은 잠자기 힘들다. 아이들도 처음엔 즐거워하다가 9시간 정도 지나면 몸이 피곤해지는데 자리가 불편하니 짜증을 내기도 한다.
둘째는 밤 시간을 이용한 코스이다. (네덜란드항공) 탑승시간이 밤 11시이기 때문에 퇴근하고 공항으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항에 8시쯤 도착해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잘 준비를 하면서 비행기를 타면 된다. 10시간 정도 푹 잔 다음 일어나서 기내식을 먹고 조금 시간을 보내다 보면 네덜란드 공항에 내린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고 1시간 15분을 더 날아 파리로 가면 파리 현지시각 오전 8시가 된다. 잠도 푹 잤겠다.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하며 바로 여행을 시작하면 된다. 이 비행기는 네덜란드 항공을 이용하는 것인데 스키폴 공항에서 경우를 해야 하므로 조금 번거로울 수 있다. 그래도 다 같이 자면서 갈 수 있으니 좋다. 단 비행기 타기 전 아이들을 최대한 기운 빠지게 놀아줘야 한다. 최악의 상황은 기내에 탄 모든 이들이 자고 싶어 하는데 자리가 불편하다며 아이가 계속 징징거리는 경우겠다.
그다음은 좌석선택이다. 비행기 티켓을 구입한 다음에는 좌석까지 미리 정할 수 있다. Seat Selection이라고 한다. 티켓을 일찍 구입한 편이라 좌석도 좋은 자리를 미리 점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전 지정할 수 있는 좌석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또한 그 좌석들이 좋은 좌석이라고 하는데 어떤 기준인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처럼 넷이 움직이는 경우는 특히나 애매했는데 좌석이 3-3-3 배열이었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한 명은 떨어져 앉아야 하니 말이다. 결국 같은 열에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좌석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우리는 첫 번째 코스인 낮시간 이용하는 대한항공을 택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경유를 하는 것이 번거로울 것 같았고, 한국인 승무원이 많으면 아이들이 좀 더 안정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상하게 비행 중간에 잠이 들어서 수면 시간이 꼬이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두 아이 모두 비행기에 내려 파리 숙소로 가는 택시 안에서부터 급속히 잠에 빠져들었다. 간단히 씻기고 재웠더니 다음 날 아침 현지시각 오전 7시에 맞춰 일어났다. 대성공이었다. 이런 것도 모두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최선을 다하고 운에 맡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