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맛집 탐지견

입맛 까다로운 아빠의 최대 고민, 식당 고르기

by 김선경

맛에 별 관심이 없는 아내

블랙핑크의 제니에게 어떤 영국인이 질문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해요?”

“음... 누군가가 먹어보라고 해서 먹어봤는데 맛있는 음식이요.(When somebody else picks the food and I eat it and it's good)”

어떻게 이런 대답이 나올 수 있지? 그러고 보니 나랑 비슷해서 놀랐다. 나도 딱 저런데, 저런 대답을 외우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입에 붙을 수 있게 여러 번 연습했다. 나는 사실 음식에 별 관심이 없다. 맛집을 찾아 줄을 서느니 그보다는 맛이 없더라도 줄이 없는 옆집 음식점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한 끼 식사가 해결되는 캡슐이 왜 아직도 나오지 않는 것인가 한탄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음식이 맛있고, 맛이 없으면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 있지 않아 소화가 잘 되겠지 생각한다.


이런 내가 음식에 민감한 남자친구(현 남편)를 만났다. 당시 남자친구는 맛집을 미리 찾아두고 같이 가보자고 하거나 길을 걷다가도 갑자기 멈춰 서서,

“저기, 저 집 봐봐. 뭔가 고수의 냄새가 나지 않아? (당연히 아무 냄새가 안 난다.) 뭔가가 있어. 저길 더 알아봐야겠어.”

그러고는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야무지게 다물고 앞서 걸었다. 자기는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으면서 자신과 입맛 코드가 맞는 맛집 정보를 올리는 사람들의 페이지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들어가 본다. 연애 초에는 남자친구가 좋으니까 나도 연기를 했다. ‘우아, 나도 이거 먹어보고 싶었는데!’ 또는 ‘이건 뭔가 다르다! 다음에 또 왔으면 좋겠다.’, ‘이거 정말 맛있다!’ 등등 (말했다시피 나는 대부분의 음식이 모두 각기 다른 느낌으로 대략 다 맛있다.) 다시 말하지만 맛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렇게까지 먹는 것을 고민하고 맛집을 찾는 일에 공을 들일 것인가에 대해 약간 갸우뚱했을 뿐이다.


당시 남자친구와 결혼을 해서 10년 넘게 살고 보니 아이들도 둘이나 생겼고, 그 둘을 키우는데 온 정신이 쏙 빠져서 안 그래도 관심이 없는 먹거리에 더 관심이 없어졌다. 좋은 음식은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음식, 더 좋은 음식은 아이들이 잘 먹는 음식이 되었다. 친구들은 아이들 밥은 따로 차려주더라도 부모는 매운 것도 해 먹고, 아이들이 못 먹는 자극적인 음식도 배달시켜서 먹고 한다는데, 나는 그럴 에너지가 없다. 특히 먹는 것에 에너지를 쓸 생각은 못해 봤다. 그 결과 나는 아이 입맛으로 돌아갔다. 조금만 매운 것도 먹지 못하고 밍밍한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상태가 전혀 불만스럽지 않다. 그런데 남편은 달랐다. 육아로 정신이 없는 이 와중에도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고민한다. 아이들이 생겼으니 원래 하던 고민에 몇 배는 더 어려워졌을 것이다. 주말에 식사할 곳을 정하지 못하고 행선지로 향하게 되면 차 안에서 슈퍼 컴퓨터가 돌아가는 것만큼의 머리회전을 느낄 수 있다. 그의 머리 주변이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일단 아무 소리도 못 듣고 무슨 주제로 말을 해도 자기 머릿속에 후보로 두고 있는 식당 이야기를 한다.


맛집 탐지견 남편의 까다로운 파리 식당 선정

이런 남편이니 이번 파리 여행에서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식당 선정일 수 밖에. 먹는 것에 진심인 남편은 내가 파리 여행 일정을 짜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일정을 하도 많이 뒤집었기에 남편의 식당 찾기도 덩달아 엄청 꼬였고 힘든 과정이 되었다. 파리의 살인적인 외식물가로 인해 우리는 점심과 간식을 밖에서 해결하고 아침과 저녁은 숙소에서 먹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남편은 비장하게 이야기했다.

"우리가 파리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총 5일이야. 이 5일 안에 음식이 겹쳐서는 안 돼. 분위기도 모두 달랐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맛있어야 해."

5일의 식당은 하나의 묶음처럼 같이 움직였다. 하루라도 일정이 바뀌면 동선에 따라 식당과 메뉴가 달라지게 된다. 그러면 다른 요일에 생각해 둔 식당 선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남편의 맛집 찾기 수순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일정이 확정되면 오전과 오후 코스를 살펴보고 그 중간 위치에서 점심을 먹을 장소를 검색한다. 구글지도에서 음식점 표시가 되어있는 모든 곳의 리뷰와 사진을 검색하고 들어가 본다. 맛있는 곳으로 평점이 매겨진 곳이되, 별점이 가장 낮은 순서로 정렬하여 리뷰를 읽어본다. 거짓 별점을 거르는 방법이다. 그렇게 선정된 후보 중 한국에서는 못 먹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우선순위다. (그런 음식은 별로 없을 것이므로)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식당의 인테리어라도 예쁜 곳으로 고른다.


고르고 고른 파리의 첫 점심식사 장소였던 마레지구의 식당에서 남편은 조금 실망을 했나 보다. 파스타와 피자를 먹었는데 한국에서 먹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맛이었단다. (뭘 더 바랐던 거지?) 그날 저녁 숙소에 들어와서 저녁을 먹고 남편은 첫째와 동네 산책을 나갔다. 나는 너무 피곤하여 둘째와 짐정리를 하며 쉬었다. 파리는 여름에 9시가 넘어야 해가 지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나서도 안전하게 산책을 다녀올 수 있었다. 숙소로 들어오는 그의 입꼬리가 귀에 걸려있다. 산책 길에 우연히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발견했단다. 바로 다음 날 저녁을 예약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보니 원래 식사를 해볼까 끝까지 고민했던 곳인데 식당을 직접 보고 나니 가보고 싶어진 것이라 했다. 저녁식사를 숙소에서 하자는 원칙을 깨면서까지 먹어보고 싶은 곳이라니 궁금했다.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남편은 즉흥적인 결정을 극도로 꺼리는 스타일이다. 나는 집 근처라고 하니 뭐 부담이 없어 좋았다. (역시 음식엔 별로 관심이 없다)


맛집으로 가는 길

다음 날 저녁, 숙소에 들러 짐을 내려놓고 조금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도 잘 먹을까? 그러고 보니 메뉴가 무엇인지도 안 물어봤다. 남편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아니면 나의 음식 무관심병의 표현인지. 못 먹으면 집에 와서 밥에 김 싸 먹으면 되지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저녁엔 술안주가 나올 것 같은데 너무 짜지 않을까 뒤늦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식당으로 걸어가는 길이 예쁘고 햇볕이 좋았다. 파리에서의 일주일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왔는데 비는 오전 중에 주로 내리다가 오후가 되면 그치고 퇴근시간 무렵이 되면 완전히 화창해졌다. 파리의 직장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는 오전엔 사무실에서 창밖으로 오는 비를 바라보며 일을 하고 퇴근할 땐 화창하게 개인 하늘에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를 누리며 친구들과 한잔 하는 삶. (왜 싱글라이프를 떠올리고 있지?) 20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식당은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의 비스트로였다. 사람들이 많이 북적이는 곳이었는데 우리는 안쪽으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서버의 웃음이 좋고 친절했다. 너무 웃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시하는 것도 아닌 진심이 담긴 서비스였다. 아직 이른 저녁시간이라 지치지 않은 것일까?


저녁시간이라 역시 타파스 메뉴판을 받았다. 메뉴판을 주면서 "영어로 된 메뉴를 줄까? 프랑스어로 된 메뉴를 줄까?"라고 서버가 묻는다. 내가 프랑스어로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눈치챘나보다. 막상 그렇게 물어보니 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메뉴판이니까 편하게 영어로 봐? 프랑스어로 끝까지 밀고 나갈까?' 그런 내적 갈등이었다. 나는 그래도 프랑스에 왔으니 프랑스어로 보겠다고 말하며 화이팅의 제스쳐를 취했다. 서버와 나사이에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치미추리 소스로 맛을 낸 문어볶음과 햄 크로켓 그리고 샤르퀴트리 플래터(모둠 햄, 소시지)와 치즈를 시켰다. 와인과 맥주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용으로는 오렌지 주스와 딸기 주스를 주문했다. 빵과 물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 와인과 맥주, 주스가 나왔다. 서양에서는 먼저 음료를 시키고 조금 있다가 음식을 주문해도 될 정도로 음료수를 먼저 받아 마시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우리도 음료를 마시며 음식을 기다렸다.

아내를 감동시켜라

음식이 나왔다. 그렇게 부드러운 문어는 이전에도 그 후에도 먹어보지 못했다. 겉은 오독한데 안쪽은 입에서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흥건한 올리브 소스에 바게트를 찍어서 먹으면 크~ 정말 맛있었다. 입이 짧은 큰 딸 뿅뿅이도 "엄마, 이건 진짜 맛있어. 한번 먹어봐!" 라고 나에게 음식을 권했다. 희귀한 순간이었다. 감자 크로켓은 자칫 평범할 뻔했으나 상큼한 소스와 양파콩피가 어우러져 퍽퍽하거나 느끼하지 않았다. 양파콩피는 양파를 약한 불에서 오래 천천히 익혀 설탕, 식초, 와인 등을 넣어 달콤하면서도 산미가 느껴지는 잼 같은 식감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 양파콩피가 크로켓 위에 올려져 있었다. 신선한 햄과 치즈는 술안주로 정말 좋았는데 의외로 둘째가 너무 잘 먹어서 약간 경쟁이 붙을 뻔했다. 내친김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영상도 찍었다. 이런 분위기를 계속 기억하고 싶었다. 영상에는 창문 뒤로 보이는 야외테이블의 파리지앵과 테이블 아래에 큰 개도 담겼다. 화룡점정으로 우리 부부가 하이파이브하는 장면도 들어있다.


맛에 민감한 친구를 남편으로 두어서 나는 예상치 못하게 맛보는 음식들이 많다. 혼자 파리에 왔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음식점을 고르는 것을 피곤해하며 아는 맛을 확인하는 차원으로 안전한 패스트푸드나 알고 있는 음식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음식에 시큰둥한 친구는 미식가의 친구로는 적절치 못하다. 친구로 지냈다가는 아마 중간에 관계가 끊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음식에 관심이 있는 남자친구와 다행히 부부의 인연이 되어 이렇게 오랫동안 덕을 본다. 블랙핑크 제니와 나의 거의 유일한 공통점인 맛있는 음식의 기준! ‘누군가 먹어보라고 해서 먹어봤는데 맛있는 음식’ 이것을 접할 기회가 많다. 이런 음식을 맛보려면 무엇을 먹어보라고 권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하고, 그 음식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음식이어야 하며 그것이 맛있어야 하는 세 번의 우연이 겹쳐야 한다. 그 어려운 기준을 나는 자주 넘어본다. 계획한 것이 아닌 것에서 오는 기쁨! 이런 기쁨은 해외 여행에서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 집은 우리 여행 중 베스트 식당으로 뽑혀 파리의 마지막날 저녁에 다시 갔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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