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두바이 Creek의 유래와 재수출시장
두바이를 여행해 보신 분은, 공항 근처에 알막툼 (Al Maktoum) 다리를 건너시면서 두바이 Creek을 보신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아니면 전통 Souq 시장을 구경하시면서 1 AED짜리 통통배로 Creek을 건너신 경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Creek의 사전적 의미를 보니 작은 운하라고 합니다.
※ 크릭 (Creek) : 배수(排水) ·관개(灌漑) ·교통의 목적으로 이용되는 작은 운하로 많은 지류(支流)가 분출하여 있으며 소형선박의 운항도 가능하다.
저는 1996년부터 중동 수출 담당을 했고, 그러다 보니 두바이와 이란에 종종 출장을 다녔었습니다. 당시는 이란을 가려면 유럽을 경유하거나, 아니면 두바이를 경유하여 이란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란은 전에도 설명드린 것처럼, 인구 및 구매력지수로 봤을 때 중동 최대 국가입니다. 당연히 매출도 중동 내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비단 저희 회사뿐만 아니라, 중동에 Biz 하는 한국 기업들은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2018년 하반기 트럼프가 이란 제재를 강화하면서 Biz가 중단되기 전까지입니다.)
두바이에 처음 내려서, 사무실로 가는 길에 두바이 Creek에 떠있는 많은 통통배들을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식명칭은 다우(dhow) 선이라고 불리는 아랍의 작은 배들입니다. 적재 적량의 2~3배 이상의 냉장고, TV, 쌀, 통조림등 가득 싣고 있는 배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습니다.
이 많은 통통배들이 (공식적으로는 다우 Dhow선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렇게 부르곤 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지만, 딱히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궁금한 채로 한동한 지냈었던 거 같습니다. 나중에 이 배들로 인해 내내 고생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습니다.
눈치채셨을 분도 계시지만, 이번부터는 이란과 UAE에 관한 글을 세 차례에 나눠 올리려 합니다.
지난 글에서 중동 이슬람의 한축인 수니파 사우디와 GCC에 대해 다뤘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축인 시아파 국가들을 다루려 합니다. 시아파 국가 중에서도 대표이자 맹주인 이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두바이 Creek의 유래와 재수출 시장 (Re-export)
2. 이란의 제제와 UAE의 부상
3. 양국의 공생 관계
UAE는 GCC국가 중 하나이고 수니파인데 왜 함께 다루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는데, 이 두 국가는 경제, 정치적으로 너무 많이 엮여있고, 협력을 할 수밖에 없는 공생의 관계에 있습니다.
두바이 Creek의 통통배 (dhow선)들을 통해 두 국가의 진행 중인 흥망성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두바이 Creek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래 지도는 두바이 주요 지역 지도입니다. 우측 상단에 두바이 공항에서, 쇼핑을 위해 Mall of Emirates (MOE)나 Dubai Mall로 가려면, 붉은색 음영으로 표시한 두바이 Creek을 건너서, 두바이를 횡으로 관통하는 Sheik Zayed Road를 타고 2~30분을 차로 달리면 됩니다. 나중에 두바이 여행 가실 기회가 있으시면 참고하세요.
두바이 항의 역사는 오래됐습니다. 서기 7세기, 당나라 시기에 육로 실크로드가 쇠퇴하고 해상길이 중국과 중동사이 구간에서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하기 지도중 파란색) 이 루트는 계속 발전하여 중국, 중동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아우르게 되었고, 한때 중국 광조우에 20만 명이 넘는 아랍, 이란, 인도, 아프리카, 터키인등이 거주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때 중동의 주요 항구가 Oman의 수도인 Muscat과 두바이항 등이었습니다.
당시 몬순 계절풍을 이용하여, 다우(dhow) 선을 활용해서 큰 배는 1,000톤의 화물을 싣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 당시 다우선이나, 1300년이 지난 현재의 다우선이 큰 차이가 없습니다.
두바이 Creek은 1950년경 내륙운하로 확장 조성되었습니다. (참고로 Creek의 물은 순환되지 않습니다)
당시 두바이 Creek의 주요 용도는 진주 양식을 위한 선박 정박용이었다고 합니다.
두바이는 진주양식 역사는 천년이 넘어갑니다. 본격적으로는 16세기부터 베니스상인들에게 두바이는 진주의 산지로 유명해졌습니다. 두바이라는 이름도 당시 베니스 진주 무역상인들이 이곳을 진주 산업의 메카 디베이 (Dibei)라고 소개한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20세기에는 두바이 Creek에 300대의 진주잡이 dhow선박과 7000명의 진주양식 종사자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하기 사진과 같은 코마개와 5kg의 무게추만 가지고 하루에 50번이 넘게 Dive를 했다고 합니다. 정말로 극한 직업이었을 것 같습니다. 진주양식은 두바이에서 1960년대 석유가 발견되고, 일본의 저가의 양식진주가 인기를 얻으면서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다 두바이 Creek이 다시 활개를 띠게 되는 계기가 있는데, 1979년 이란 종교 혁명입니다.
종교혁명 이후 79년 11월, 팔레비 국왕의 신병인도를 요청하던 과격파 학생시위대가 시위도중, 미국 대사관으로 난입 및 점거하는 인질사건이 있었고, 이후 미국의 제재조치가 시작되게 됩니다.
그전까지 중동 내에서 물류/교통의 요충지이자, 석유/가스/광물등 자원의 보고로 경제적인 중심지였던 이란의 위상과 역할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란이 미국 제재를 받으면서 수출입에 한계도 생기면서, 두바이 통통배 즉 다우선을 통한 이란 수입이 증가하게 됩니다.
위에 지도에서 보여드린 두바이 Creek이 하기 지도 내 붉은 점으로 보시면 됩니다. 바로 이란 남부와 근접합니다.
두바이 Creek을 떠난 배들은, 한가득 짐을 싣고 (보통 20ft container2대 분량) 13~14시간 동안 200~250km를 항해하여 이란 남부에 도착하게 됩니다. 주로 주 항구인 반다르 압바스, 키쉬섬 또는 부셰르 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 물건들은 대부분 밀수 또는 병행수입으로 세관에 등록 안 되는 경우가 많아, 교역량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경제, 물류, 교통, 관광 등 이란의 헤게모니가 주변 국가들로 넘어가게 됩니다.
주변국중 가장 발 빠른 국가가 UAE의 7개 토우국중 하나인 두바이였습니다. 이란의 수출입이 영향을 받게 되자 두바이 Creek의 다우선 (dhow)을 활용한 무역이 활개를 띠었고, 1985년에는 두바이 Jebelali 지역에 freezone을 정식으로 시작하면서, 중동 인근국 및 유럽/아프리카/CIS의 무역중심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원래 두바이는 원유수출이 주된 수입원이었으나, 2016년 원유 고갈 예상에 따라 급격히 탈 원유 정략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현재 UAE의 원유는 대부분 아부다비에서 나오고 있고, 두바이 비중은 3%도 안됩니다.)
두바이는 원유 외에 진주, 대추야자등이 주요 수출품이나, 원유 수출이 줄면서 재수출 (Re-export)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재수출을 위해 Jebelali Freezone을 설립 함과 동시에, 물류에 필요한 창고 인프라등을 구축했고, 이용하는 고객을 위한 획기적인 혜택들을 줍니다.
※ 재수출 (Re-export) 이란 UAE/두바이가 아닌 국가에서 수출한 물건이, 두바이를 경유하여 제3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목적 국가로 직접 수출을 하면 되는데, 왜 굳이 두바이 freezone을 경유하려 했을까요? 이건 다음 글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한 번에 내용을 다 담으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다는 의견들이 있으시고, 저도 좀 힘들어서 나눠서 올리는 것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두바이가 어떤 식으로 물류, 금융, 관광 등의 중동 역내 헤게모니를 쥐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왜 이런 혁신이 두바이 UAE는 되고, 사우디는 안 되는 지도 이후 포스팅에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란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서, UAE와의 관계도 함께 이해하시는 게 결국 궁극적으로 설명드리려 하는 시아 및 수니 벨트 간의 역학관계를 아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중동은 시아와 수니벨트로 나뉘어서 적대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는데, 사실은 그 내면에는 안 보이는 관계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UAE와의 관계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면서 최근의 윤 대통령님의 이란/UAE 발언 이슈도 감안하시면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