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고
나는
잘하는 것도 숨기고 못하는 척하는 사람
못하는 척해서 누구의 손과 마음을 빌리고 싶은 사람
누구와 마주 앉으면 밥을 잘 먹는 사람
그게 살고 싶은 마음이라고 믿는 사람
작은 씨앗으로 가까스로 큰 꽃을 피우고 나면
꽃이 씨앗만큼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꽃이 되어버린 씨앗과
씨앗을 키우던 시간을 그리다
꽃이 지는 걸 미처 보지 못하는 사람
갈급한 사람
모르는 이의 다정함에 뚜껑 열리듯 미소를 뿜고
아프게, 조금 더 살까 궁리해 보는 사람
너무 기쁘면 불안한 사람
불행하고 못났다는 사실이 자명할 때 몹시 슬프나 은밀히 편안한 사람
내가 아름답고 좋은 사람일리는 없다고 장담하는 사람
어떤 이의 두툼한 외투 끝을 잡아보고 싶은 사람
돌아서보라고 말 걸고 싶은 사람
아무도 내 곁에 오지 않는 이유를 너무 알다가도 영영 모르는 사람
이대로 늙고 싶지 않은 사람
동시에, 단번에, 저항할 수 없는 속도로 죽음에 이르고 싶은 사람
마음이 늘 축축이 젖어있는 사람
마른 모래로 얇게 덮어 그게 또 젖어드는 걸 견디는 사람
비가 오면 모두 망가져 마침내 기쁘게 우는 사람
큰 소리에 놀라 이틀밤을 새우는 사람
정작 내 소리는 얼마나 소란한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
아이가 엄마 쉿, 하고 손가락을 입술 위에 세우면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큰 소리에 깜짝 놀라 달음박질하는 사람
돌아오는 길을 잃고 잔음에 몸을 떠는 사람
아이가 아침마다 깨어나 나를 데리러 오면 (그 애가 없었다면 나는)
그 손을 잡고 무사히 되돌아오는 사람
집에 앉아 집인 줄 모르고
친구의 얼굴은 그림처럼 낯설고
가까운 말 먼 이야기가 사랑이 되었다가 고통이 되었다가
걸음과 걸음 그 사이사이가 어려워
자꾸만 발이 걸리는 사이,
그러는 사이 너무 오래 살게 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