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by seoro

나는 온종일 얼음을 씹어 먹었습니다.

냉동고의 얼음틀을 쉬지 않고 채우는 것이 매일의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어금니가 깨지기도 하고 복통에 잠을 설치면서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와드득 와드득 얼음을 씹었습니다.
하루가 다 가고 목구멍과 심장 언저리와 머릿속까지 꽁꽁 얼어붙고 나면 거울 속에 짙은 보라색 입술을 한참 바라보다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이 들면 방안에 누군가 나타났습니다.
검고 큰 사람들이 발치를 서성이고 알지 못하는 할머니가 침대 밑으로 기어들곤 했습니다.
처음엔 놀라서 울었지만 그래도 꿈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꿈이라는 걸 알았지만 나는 계속 무섭고 슬펐습니다.

온 밤을 곤두세웠으므로 낮이면 내내 졸립니다.
눈동자가 고꾸라지고 손가락이 무겁습니다.
그래도

나무껍질 같은 얼굴을 씻고 나서 집안에 발자국 소리를 냅니다.

조심조심

그리고는 다시 수백 개의 얼음을 씹어 넘깁니다.


그때 그 모든 시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 돌아누웠을 때, 잠든 아이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나는 윤곽

가만히 바라보니 샘물처럼 투명해집니다.

조그맣고 봉긋한 입술과 가만히 내려앉은 속눈썹은 아가일 때 그대로이지만

놀랄 만큼 자란 아이였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이만큼 키운 적이 없습니다.

어느 사이에도 아이는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건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어요.

지금은 네 시간도 다섯 시간도 잠을 잡니다.

그러기까지 오 년이 걸렸습니다.

낮에는 역시 얼음을 자주 먹지만, 그뿐 아니라 걷고 말하고 웃기도 합니다.

밤에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잠든 아이 얼굴을 살살 만져봅니다.

겁이 났으니까요.

하룻밤마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 날 모르는 여자애가 엄마- 하고 내 방에 들어설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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