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다 써 내려간 후가 궁금했다
“글쓰기는 나 자신을 구하는 방식이었다.”
—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답답함이 턱끝까지 차올랐을 때,
바다로 갔습니다.
정처 없이, 목적 없이, 짧게, 자주.
바다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트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답답할까.
왜 바다에서는 숨이 트일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내 안의 이야기들이 올라왔습니다.
흘려보낸 줄 알았던 시간들이
사실은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묶여 있던 감정들을 꺼내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문장을 다듬는 동안
나는 그 안에 다시 갇혀 있었습니다.
‘이걸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부질없어 보이기도 했고,
이미 지나간 감정을 다시 건드리며
괜히 우울만 키우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특히 〈엄마의 바다〉를 쓸 때는
감정을 절제하려 애썼지만,
결국 여러 번 울었습니다.
고칠 때마다 울컥했고,
다시 읽을 때마다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글을 다 쓴 내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써보았습니다.
그때보다 조금 어른이 된 내가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감정이 조금씩 무뎌지며
나는 나에게서 빠져나왔습니다.
아빠를 떠올리면 슬픔이 앞섰던 기억들이
이제는 바다라는 유년의 반짝이는 풍경으로
이어집니다.
그 연결 덕분에 나는 환해졌습니다.
그렇게 내 안의 시간들이,
감정들이 조금씩 밝아졌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글을 쓰기 전 궁금했던 나의 모습,
그 답을 이제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수많은 보고서를 써온 시간 동안
나는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간결함과 정확함에 익숙해진 문장들 속에서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이 글, <하나개>는
그 훈련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쓴
‘나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어색하고,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저를 드러내는 일이 서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계속 써보려 합니다.
제 안의 이야기들을,
다시 숨을 고르듯 한 문장씩 꺼내어보려 합니다.
하나개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통해 잠시라도
당신의 바다를 떠올리셨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바람처럼, 파도처럼,
각자의 바다에서 살아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