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부재 사이, 충만이 깃든다

공(空)의 매혹 — 장 그르니에 《섬》

by 서해
나는 물결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지만
물결은 뒤로 물러났다 앞으로 나아갔다 하면서,
마치 든든한 밧줄로 바다 깊숙이 비끄러매 놓은
부표처럼 끝내는 나를 제자리에 그대로 남겨 놓은 것이었다. ... 그로 인하여 결국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었던가? 전혀 아무것에도.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바다,
브르타뉴에서처럼 항상 움직이는 바다 말이다.
얼마나 엄청난 공허인가!
바위들, 개펄, 물……
날마다 모든 것이 전부 다시 따져 보아야 할
문제로 변하는 곳이니,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 장 그르니에, 《공의 매혹》


그르니에는 바다를 ‘움직이는 공허’라 했다.

텅 비어 있는 듯하지만,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그의 바다는 비어 있되, 결코 허무하지 않다.

파도처럼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삶은 늘 새로 태어난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내 삶을 본다.

회사라는 파도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일을

이어가며

부단히 움직이지만 문득문득

스스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기분에 잠긴다.


그런데 정말 나는 제자리일까.

내 환경, 내 일, 내 생각—

무엇 하나 그대로인 것이 없다.

바다의 파도가 같은 자리를 치더라도

그 모양이 단 한 번도 같지 않은 것처럼.


공(空)의 매혹이 우리를 뜀박질로 이끈다.
앞으로 다가서면서도, 동시에 뒤로 물러난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언젠가 그 끊임없는 움직임의 보상을 받는 날이 온다.
— 장 그르니에, 《공의 매혹》


그르니에의 말처럼,

삶은 늘 욕망과 두려움의 리듬 위를 오간다.

나아가려는 마음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얽혀

하루하루를 만든다.

그 진자운동 같은 시간들이

결국엔 우리를 ‘고요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아둥바둥 살아온 시간이

‘빈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길러주었다.

끝없이 움직이고, 채우고, 버티며 살아온

시간들이

결국엔 멈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삶은 밀물과 썰물처럼,

욕망과 포기의 리듬을 반복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안다.

텅 빈 순간이야말로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공허의 자리에 즉시 충만이 들어앉는다.”


그르니에의 이 문장은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렀다.

그 충만함은 욕망을 채워 얻은 것이 아니라,

욕망이 잠잠해진 자리에서 비로소 느껴지는

평화였다.


나의 아둥바둥은 헛되지 않았다.

그건 내가 ‘비움’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바다 앞에서 나는 이제야 안다.

그 고요가, 내 안에 들어앉은 충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