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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늬바람 Apr 27. 2021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는 울었네

수술 당일의 기록

자, 이제 이동하실 거예요. 이거 쓰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간호사는 얇은 파란색 부직포천 같은 것을 내밀었다. 머리카락이 나오지 않도록 헤어캡처럼 쓰는 것과 신발처럼 신을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칼을 잘 다듬기 위해 거울을 보며 삐죽 나온 머리카락을 넣고,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맨발에 파란 천을 신었다. 침대에서 내려 휠체어를 타려고 발을 바닥에 내딛는 순간 차가운 촉감이 발에 퍼졌다. 동생은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까지 함께 걸어갔다. 코로나 19로 수술장에 보호자가 함께 가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누나야, 수술 잘하고 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동생은 내 어깨를 지긋이 잡아주었다. 묵직하고 따듯한 손길이었다. 그러겠다고, 잘 다녀오겠다고 소리 내어 내뱉지는 않았지만 나는 얇게 웃으며 짧게 답했다. 응.      

 

이동보조요원의 운전에 맡겨진 채 별관에서 본관으로 이동했다. 여러 번 승강기를 타고 내렸고 넓고 좁은 복도와 사람들을 지나쳤다. 별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저 새벽 병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내 수술 일정은 오전 7시, 첫 타임이었다. 아마 수술 시간이 꽤 길어 그렇게 잡아둔 모양이었다. 덕분에 병원이 하루를 준비하는 이색적인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일찍 출근하는 직원들, 이제 막 문을 열고 있는 편의점과 그날의 음식재료를 운반하는 사람들, 나와 같이 이른 수술을 받으러 이동하는 환자들과 이동보조요원들의 능숙한 움직임. 거기엔 이따금씩 안부를 묻는 사람들의 풍경도 있었다. 조금 쌀쌀한 새벽 기운을 맞으며 하루를 여는 시간, 나는 수술을 받으러 수술장으로 향했다.  

     

흰 바닥과 천장, 촘촘하게 박혀 있는 형광등이 켜진 복도를 지나 수술 대기실 같은 곳으로 들어서자 기운이 달랐다. 표백된 것 같은 느낌, 꼭 예전 중고등학교 때 보던 과학실의 차가운 바닥, 바닥 여기저기를 구분하기 위해 단단하게 붙여둔 청테이프, 같은 색 옷을 입고 컴퓨터 앞에서 무언가를 체크하는 의료인들. 그리고 나보다 먼저 도착해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 모두 누워있는 채로 이송된 분들이었고, 많은 분들이 호흡기를 쓰고 있었다. 수술장을 마주하고 일렬로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우리는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생년월일과 이름 말씀해 주세요.    

  

외래를 받으러 갔을 때 나는 번호로 불렸다. 알파벳과 번호가 조합된 숫자였다. 그런데 입원을 하면 이름을 호명한다. 약을 먹을 때, 주사를 맞을 때, 심박수를 체크하고 혈압을 잴 때에도 끊임없이 나는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했다. 몇 번을 그렇게 말했을까.      


오늘 어디 수술받으세요?      


이름, 생년월일과 함께 오늘 수술을 인지하고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한다. 오른쪽 옆에서 수술을 기다리던 환자는 94년생, 간이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의 이름과 생년월일, 수술 부위를 어찌하다 보니 듣게 되었고 아주 찰나였지만 나는 조금 숙연해졌고 그 순간 그분의 장기이식이 잘 끝나기를 바랐다. 누군가 간을 기증해주셨구나, 지금 이 공간 어딘가에 이식받을 간이 도착해 있을까 궁금했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보았던 장면이 짧게 스쳤다. 얼마 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의료인이 초록색 가운과 모자를 쓰고 나를 호명했고, 다시 내 이름을 확인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수술장으로 들어가게 된 환자였다. 

     

수술방에는 거대한 로봇들과 아주 커다란 모니터들이 공간을 압도하고 있었다. 수술방이 추울 거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생각보다 춥진 않았고 태어나 처음으로 보게 된 풍경에 잠시 넋을 잃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움직이는 의료진들은 서로 대화를 하며 오늘의 일정을 확인하는 듯했다. 생각보다 큰 수술방과 많은 기계들을 보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수술을 받게 될까 궁금했다.      


자, 이쪽으로 올라오세요. 조심하시고요.      


휠체어에서 수술대로 올라갔다. 차갑다, 라는 생각이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간호사는 오늘의 수술 일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고 전신마취에 대한 주의점도 한 번 더 말씀해 주셨다. 자, 여기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세요. 마취하는 겁니다.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의식이 없다. 수술하기 전 담당 의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는 내가 잠을 자고 있을 때 와서 수술을 진행했다.      


숨 크게 들이쉬세요. 심호흡하셔야 합니다. 잠들면 안 돼요.      


목과 폐의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흐릿한 시야로 다시 과학실과 같은 회복실의 풍경이 희미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간호사의 우렁찬 목소리는 반복적으로 들렸고 잠에 들려는 환자들을 깨웠다. 다시 잠이 들면 폐가 멈출 수도 있기 때문에 간호사는 계속해서 심호흡을 해야 하고, 왜 해야 하며, 잠에 들면 안 된다는 소리를 반복한다. 전신마취를 하는 동안 기능을 하지 않았던 폐를 움직여줘야만 했기 때문이다. 다만 심호흡을 너무 강하게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나는 폐가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무서운 마음에 숨을 좀 크게 들이마셨는데 목과 가슴 언저리 통증이 심했다. 그 역시 무서웠다. 순간적으로 목 언저리로 손을 가져가 수술 부위를 만져 보았다. 아파서 흠칫 놀랐고 눈물이 찔끔 났다. 수술 잘 된 걸까.      


오후 한 시가 다 되어서야 병실로 돌아왔다. 동생이 가고 셋째 이모가 나를 맞아 주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며칠 병원에 지내실 수 있었다.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깼을 때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안을 안겨준다. 처음에 혼자 수술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친구가 다그치듯 조언을 해주었다. 옆에 누군가 있어야 한다고, 수술 날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그때부터 진지하게 보호자를 고민했다. 혹시 수술을 앞두고 있다면, 수술 당일에는 가능하면 보호자를 모시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전신마취가 풀리면서 수술부위의 통증이 거세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폐가 일상적으로 다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잠에 들어서도 안됐다. 생각보다 깨어있는 것이 어려웠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금식이었다. 오후 4시까지였던가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다. 정말 목이 마르면 물을 입술에 축이거나 가글을 하는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갑상선 수술에 좋은 음식 중 하나는 아이스크림이다. 목 수술이기도 하고 전신마취를 하기 위해 목 깊숙이 넣었던 관 때문에 목에 상처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달래줄 차가운 음식 섭취가 필요하다. 이모는 금식이 풀리면 먹을 수 있도록 시원한 음료와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었다. 슈퍼에서 파는 큰 사이즈가 아니라 한 번에 딱 맛있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이 들어 있는 작은 사이즈였다. 이모의 센스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금식이 풀리자마자 물부터 마셨다(물은 정말 귀한 것이다!) 목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조금씩 컵에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상처를 타고 물이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모는 냉장고에서 투게더를 꺼내 숟가락과 함께 주었다. 수술을 하고 먹는 첫 음식이 아이스크림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생경한 일이었다.      


이모야, 이제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간단히 뭘 좀 먹고 와. 나는 괜찮다. 이거 먹고 있을게.      


이모는 내가 혼자 있어도 괜찮은지 수차례 확인을 한 뒤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외출을 했다. 여전히 목이 아팠지만 차가운 음식이 붓기와 통증을 가라앉혀 줄 거라는 믿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어, 벌써 아이스크림 드시고 계시네요. 잘하셨어요.      


투게더를 반쯤 먹었을 때 즈음 담당 의사가 병실로 찾아왔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아니지만 수술 전날부터 아주 상세하고 친절하게 수술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해주신 분이었다. 의사는 나의 컨디션이 어떤지 물어보았고 수술 결과를 말해주었다.      


수술 잘 마쳤고요, 오른쪽 갑상선만 떼어냈어요. 조직검사했는데 다행히 전이가 안 된 것으로 확인이 되었어요. 오른쪽에 있었던 것이 암인지 확실한 결과는 2주 뒤에 나올 거니까 그때 말씀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아직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푹 쉬라며, 나중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선 커튼을 사방으로 쳐주고 나갔다. 수술이 잘 되었구나, 다행이다. 나는 커튼으로 둘러진 침실이 조금 더 안정적으로 느껴졌고 다시 투게더를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들었다. 목으로 차가운 아이스크림 덩이가 넘어가는데, 한쪽이 뻥 뚫려버린 것만 같았다.      


고맙다. 너무 고마워. 수술 잘 견뎌줘서, 너무 고마워. 한쪽이 전이가 안돼서 너무 다행이다, 그치. 힘내 주어서 너무 고마워.      


단전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뜨겁고 묵직한 무언가가 울컹거리며 가슴과 목을 타고 눈으로 올라왔다. 입원을 하고 처음으로 울었다. 속상해서라기보다 긴 시간을 버텨준 몸이 고마웠다. 한쪽만이라도 남아준 갑상선이 고마웠다. 아픈 목과 가슴을 만지기 어려워 그냥 두 팔로 팔을 감싸고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눈물의 짠맛과 투게더 아이스크림의 단맛이 입안에서 섞였다.      


누군가는 갑상선암 수술이 별것 아니라고 했다. 간단한 것이라고 했다. 분명 어떤 사람에게는 간단한 수술일 수도 있다. 나보다 늦게 수술하고 일찍 퇴원하신 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모두 다르며 컨디션 역시 다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무척 아팠다. 별것 아니라는 사람들을 찾아가 명치를 한 대씩 세게 치고 싶을 만큼. 수술 당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새벽 3시쯤 너무 괴로워 간호사실로 찾아가서 수면제를 처방해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시간이 너무 애매하다고, 조금 더 일찍 왔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저와 같이 잠을 못 자는 환자가 많이 있나요,라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내 몸을 달래는 것뿐이었다. 좀 더 편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수술 당일에 많은 환자들이 잠을 자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텔레비전 속 환자들은 대부분 눈을 감고 있거나 잠이 든 경우가 많아서 잠 못 드는 어려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나는 나와 같이 잠을 자지 못했을 많은 환자들을 떠올리며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워 불편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편한 자세를 찾는데, 오전에 아주 잠시 스쳤던 94년생의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이 생각났다. 간이식은 잘 받았을까, 그는 지금 잘 자고 있을까. 나도 지금 이렇게 아픈데 그는 또 얼마나 아플까. 그의 밤이 잠시 염려되었고 닿지 않겠지만 힘을 보태고 싶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수술을 했던, 몸의 통증을 잊을 수 있게 깊은 잠을 자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갑상선 수술을 받은 날을 기록하고 싶어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남겨둔 글이에요. 

브런치에 올리기 위해 한번 더 살펴보았고 수정을 거쳤습니다. 수술 과정에 대해 상세한 기록은 아니지만 수술 당일 상황이 궁금하신 분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TMI _  

20대 초반에 파울로 코엘료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읽지 않지만 그때는 출판한 거의 모든 책을 다 읽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책이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입니다. 문득 그 제목이 생각나서 이 글 제목에 녹여 보았답니다 :) 



함께 소개하는 음악 

If I could ride a bike  "Chevy & Park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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