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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늬바람 May 04. 2021

아픔의 비용은 왜 이리도 비싼가요

의사는 유방초음파 검사 이후 조직검사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심각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지만 확실하게 점검하면 좋겠다고, 나는 양쪽 가슴에서 몇 군데를 검사하기로 했다. 초음파 검사를 할 때만 해도 추가 검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해 조금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진료실을 나와 간호사와 검사 일정을 상의했다.       

“CT 촬영 한번 할게요”라니요, 이익준 선생님

저희가 제안드릴 수 있는 것은 한 번에 한쪽씩 하는 거예요. 

아, 그럼 한 번에 비용이 얼마나 드나요?     

 

초음파 검사보다 조직검사 비용이 훨씬 높았다. 비용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데 간호사는 실비보험 가입 여부를 묻더니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양쪽 가슴을 한 번에 하지 않고 한쪽씩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부담이 덜하다며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하더라도 보험이 보장하는 금액보다 검사 비용이 높았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다른 병원을 간다면 예약과 진료 등의 수고로움을 다시 감당해야만 했다. 결국 이틀을 나누어 검사 일정을 결정했다.      


불현듯 미국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손가락이 절단되어 봉합수술을 해야 하는데 손가락마다 가격이 매겨져 있었고 만약 모든 수술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중에서 봉합할 손가락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설명이었다. 오래전에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었다. 수술을 온전히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껏 몸이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검사나 진료를 앞두고 비용 앞에서 몸의 부위가 구체적으로 나뉘었다. 검사비를 감당할 수 있었기에 다음 일정을 예약했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이것이 조직검사가 아니라 큰 수술이었다면 어땠을까. 의료체계라고 하는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내 몸이 쪼개어져 가격이 매겨지는 느낌, 나는 씁쓸했고 착잡했다.      


많은 사람들이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고 한다. 그리 치명적이지도 않고 전이되는 속도가 다른 암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이 설명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갑상선암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에서 나에게 갑상선암은 그렇게 착하지 않았다, 갑상선암이라고 확정되기 전까지는.  

    

이미 언급했듯이 유육종증은 나의 기저질환이다. 유육종증은 중증-희귀난치 질환으로 분류되어 산정특례를 받을 수 있는데 이 경우 관련 치료나 검사 비용, 약 처방 등까지도 본인부담이 10% 정도로 현저히 낮아진다. 그 덕분에 주기적으로 받았던 검사와 약을 복용하는데 경제적인 부담이 크게 높지 않다.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5개월쯤 되었을 때 갑상선 이상을 발견하고 새로운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갑상선센터 내과에서 조직검사까지 진행했고 수술을 결정하고 난 뒤에는 외과로 넘어가 다시 초음파 검사와 조직검사, CT촬영 등을 했다. 생각보다 많은 검사가 진행되었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병원비를 감당해야만 했다. 한 번은 유육종증 관련 검사와 갑상선 관련 검사를 비슷한 시기에 하게 되었는데 만원도 되지 않은 진료비와 몇 십만 원 상당의 검사비의 간극이 확연히 드러났다. 마주하고 있는 상황의 괴리감이, 상당했다. 암이라는 소견은 받았지만 수술하기 전까지 확진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할인을 적용받는 것도 어려웠다. 한동안 검사와 진료가 매주 진행되었는데 그 비용이 너무 버거웠을 때는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었다. 해선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적어도 본인부담은 꽤 줄어들 테니까, 그때 나에게는 몸의 아픔보다 경제적 부담이 더 불안하게 다가왔었다.       


반복되는 검사에 지치고 떨어질 줄 모르는 병원비에 화가 나 있던 당시 우연히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조정석 배우가 맡은 이익준 의사는 굉장히 뛰어난 의료기술을 보유한 사람이면서도 환자에게는 무척 친절한 의사다. 그는 간암을 앓고 있는 환자의 검사기록을 보더니 환자와 가족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CT촬영 한번 하실 게요’라고 말했고 그들은 알겠다며 응답하곤 진료실을 나갔다. ‘CT촬영이 무슨 심심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저걸 하기 위해서 예약을 다시 잡고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왜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 거냐고.’ 비뚤어진 마음에 앞뒤 맥락은 생각하지 못하고 불만 가득하게 드라마를 보았던 순간이 기억난다.      


진료비와 검사비 등 상당한 병원비로 인한 어려움을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를 신뢰한다. 이주노동자나 난민처럼 의료보험을 보장받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부족한 면이 분명 존재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공공의료가 잘 구축되어 있다고 믿으며 나 역시 그동안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 까다롭고 어렵지만 경제적 상황에 맞추어서 병원비를 전액 보장받거나 부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아픔과 함께 찾아왔던 병원비로 밑바탕에 깔려 있던 신뢰가 세차게 흔들렸다. 참 이상하게도 아파서 찾아간 병원에서 내 아픔에 명확한 이름이 붙기 전까지는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많다고 느껴졌다. 병원에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병원비가 왜 이렇게 비싸야만 하냐며 하소연을 하자 한 친구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병원을 자주 가는 편이라고, 하물며 ‘의료쇼핑’이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비싼 검사비와 진료받는 수고로움에도 누군가는 모든 비용을 감당하고 병원을 ‘돌아다니’고, 또 한편으로는 아픔을 확인받고 인정받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검사와 병원비를 지불해야 하는 건지. 만약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배려조차 받을 수 없다면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인지.       


현재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환자에게 검사와 치료 행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의사·병원이 돈을 버는 행위별수가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환자의 바람은 건강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는 환자가 아프면 아플수록,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더 많은 행위를 하게 되고 또 이것이 수익으로 직결되니, 환자와 의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283쪽)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의 저자 추혜인은 의료소송이 증가할수록 환자에 대한 의사의 불신도 늘어나, 소송에서 문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더 많은 검사를 하는 방어적인 진료를 하게 되는 것(284쪽)이라고 말한다. ‘책임은 질 수 없으니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곳’에서 의료진들이 감당해야만 하는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결국 이런 체계가 방어적 진료, 의료 소송이 많은 분야의 의료진 기피 현상, 많은 빚을 지며 개원하는 현실 등을 덧붙여 설명한다. 최첨단의 의료기기와 기술, 대형병원을 유지하는 비용뿐만이 아니라 지금의 구조적인 문제가 만들어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비용을 개개인이 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만약 환자가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의사에게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라면, 시민들이 건강할수록 의사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구조라면 상황은 다르지 않을까? 그런 구조라면, 환자는 의사를 불신하기보다는 건강의 안내자로, 동지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286쪽)      


과연 그런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섣불리 단정 짓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 계속 이어지는 진료를 신뢰하면서, 환자가 감당해야 하는 치료 행위가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덜 부담되는 구조로 변화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지금의 나는 의료체계와 그 안에서 비용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 못해 더 나아가는 상상이 어렵다. 환자의 위치에서 생생히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은 많았지만 의료진의 위치에서는 감각하지 못하니 다양하게 바라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랬기 때문에 추혜인이 던지고 있는 질문이 무척 소중하게 여겨졌다.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한국의 의료체계와 의료보험제도를 신뢰한다. 하지만 병원의 크기가 더 커질수록, 치료비가 더 높을수록, 진료예약이 더 어려울수록 아픈 몸을 가진 개인으로서 경험해야 하는 불안과 어려움은 증대된다. 몸의 부위별로 가격이 매겨지는 경험 대신 오롯하게 몸을 존중받을 수 있다면, 암이나 유육종증과 같이 특정 질병에 분류되는 몸이 되어야만 병원비를 감면받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현실이 아니라면, 끝없는 진료와 검사에 신뢰가 기반이 될 수 있다면,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존재로서 조금 더 나은 과정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육종증을 진단받고 6개월 정도 일을 쉬었다. 일을 쉬는 동안 병원 진료와 검사는 계속 이어졌고 자꾸만 높아지는 병원비에 통장 잔고는 밑 빠진 항아리처럼 채워지지 못하고 빠져나가기 바빴다. 지금은 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주 5일 근무는 하지 않고 정기적인 검진을 위해 병원을 계속 다닌다. 아픈 몸으로 살게 되면서 ‘스스로 내 한 몸쯤은 감당할 수 있는 삶’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마다 몸의 아픔과 살아가는 조건은 다르겠지만, 병원을 다니는 행위로 인해 내 몸을 살피는 것이 버겁다거나 초라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온전한 존재로서 살아가는데 무척 중요한 조건임을 알아가고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결국 의료체계 비용 운운하는 것도 잘 살아가고픈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많이 아프거나 덜 아프거나 상관없이 말이다.



1. 지난해 갑상선 수술을 앞두고 내가 활동하는 한 단체 활동가들이 십시일반 수술응원비를 모아 주었다. 서로의 사정을 세세히 잘 알고 있지는 못해도 마음을 써준 것에 감사했고 경제적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이 얘기 꼭 자랑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고마워! 


2. 산정특례란, 진료비 부담이 높고 장기간 치료가 요구되는 질환에 건강보험 급여 본인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제도다. 중증질환자의 경우 외래 또는 입원 진료 시 요양급여 비용 총액의 5%를, 희귀 난치성 질환자의 경우 요양급여 비용 총액의 10%만 부담하면 된다. (다음 백과사전 참고) 



오늘 소개하는 음악은, 글과 어울린다기보다 요즘 제가 즐겨 듣고 함께 나누고 싶은 것으로 준비했어요. 

몸에 조금씩 리듬을 불어넣어주는 달콤한 음악이랍니다 :) 

Provide "Sunni Col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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