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학용 Oct 31. 2020

#5 여행은 만나는 일이 아니라 헤어지는 일

라다크 페이 마을에서의 3박 4일

페이 마을에서의 하루는 단조롭다. 40여 가구가 모여 있는 마을에 산 그림자가 물러나고 음양의 세계가 경계를 짓기 시작할 때면 오래된 마을은 눈을 뜬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들이 옛날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있는 모습 그대로 깨어나고 활동하다 잠이 들 것만 같다. 


지붕 위에서 낡은 몸짓으로 휘날리는 룽가도, 마을 어귀에 줄지어 선 자작나무들도, 우윳빛으로 흘러와 흘러가는 강물들도 다 그렇다. 언제나처럼. 그곳에 속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눈을 뜨면 마당에 곡식을 널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마니차를 돌리다, 논과 밭에 물을 보러 나가거나 소나 염소에게 꼴을 먹이고, 저녁이면 노란 백열등 아래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한다. 단조로움과 평화로움이 그지없다.

이곳에서 한동안 살아보는 건 어때?


눈앞 풍경들이 매일 말을 건네는 소리를 듣는다. 여행학교 아이들은 어떨까? 학교를 오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갓 빠져나온 그들에게 이 단조로운 일상들이 과연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한편으로 궁금하고 또 한 편으로 걱정스럽다.

단조롭고 평화로운 라다크 페이 마을 어귀

홈스테이 3일 동안 아이들은 ‘네스핀’과 ‘자고’와 ‘강첸’의 집 안에서 각자 보내는 시간들이 많았다. 그들은 스칼마와 남겔과 양돌과 같은 꼬마들과 놀거나, 주운 나뭇가지를 깎아 윷놀이를 하거나, 주인아주머니 부엌일을 도와주며 하루를 보냈다. 


또 밀린 일기를 쓰거나 빨래를 하기도 하고 그래도 심심하면 서로의 집을 방문했다. 홈스테이를 선택한 것은 라다크의 ‘오래된 미래’가 보여주는 가치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서 ‘나와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고 싶었던 것인데, 3박 4일의 시간이 그들에겐 그저 불편함과 지루함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닐지….      


“오늘 남수가 나뭇가지로 윷을 만들었다. 크기도 작고 허술해 보여도 좋은 윷이었다. 남수가 만든 윷으로 다 같이 윷놀이를 했다. (중략) 저녁으로 다 같이 모모를 만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너무 잘하시는데 나는 막 터지고 어려웠다. 다 만든 모모는 너무 맛있었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솔지)      


“벌써 홈스테이 하루가 지나갔다. 이곳 아이들에게 정이 들어버렸다. 하지만 이제 3박 4일 동안 이틀만 볼 수 있다.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양돌, 남겔 모든 사람과 집에 정이 들었나 보다. 특히 양돌이라는 세 살짜리 아이랑 친해졌다. 순수하고 웃음이 많다. (오래된 미래) 책에서 본 내용이랑 거의 같다. 지금 라다크가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4대가 같이 살아서 더 친근하고 재미있는 줄도 모르겠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남수)     


“아프니 사람들께 미안하고 고마웠다. 홈스테이 아주머니께서 날 위해 레몬차를 끓여주셨다. 한국의 유자차와 비슷해서인지 금방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아라)      


“‘쌍모’는 모모를 너무 쉽게 빚는데 직접 해보니 쌍모처럼 예쁘게 빚기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민아는 솜씨가 좋은지 곧잘 쌍모처럼 모모를 만들었다. 자꾸 만두피 바깥으로 나오는 속 때문에 만두 모양이 흐트러졌다. 매운 양파를 까는 일부터 시작해서 속을 만들고 만두피를 사용해 하나씩 모모를 만드는 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쪼그려 앉아서 오랜 시간 만드니 허리, 다리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 힘든 일을 어제저녁 쌍모 혼자 해낸 걸 생각하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진실)       

라다크 페이 마을에서의 그리운 날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보면 페이 마을은 곳곳에 따뜻하고 자유로운 공동체 모습이 살아있다. 노인이든 여성이든 어린 꼬마든 가족과 마을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할 일을 가지고 자존감을 품은 채 살아간다. 화장실에서 나온 똥은 거름이 되어 밭으로 순환되고, 담장 한 편에 가지런히 쌓인 가축의 말린 똥 역시 가정의 연료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먼 곳에서 온 여행자는 누구라도 머무는 동안은 이곳 마을의 가족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삶의 조각들은 하나씩 맞추어야 이야기가 되고, 그렇게 하기에 이곳에서의 우리들의 삶은 짧고 서툴러 아쉽기만 하다.  


하루는 남겔과 스칼마를 길잡이 삼아 언덕 위 티베트 사원까지 모두 함께 산책을 갔다. 히말라야 트래킹을 앞두고 아이들 몸 상태를 점검하려는 목적도 있다. 산책이라고는 했지만 언덕을 오르는 길은 좁고 가파르게 뻗어있었고, 결국 언덕 끝에 올라서자 대학생인 진실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그날 일기에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트래킹을 하지 못할 것 같아 눈물이 나왔다고, 그렇게 적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언덕을 오른 고등학교 3학년 유진의 발걸음은 거북이와도 경쟁할 수 없을 듯하다. 히말라야에 오르면 저 거북이와 나는 동행하게 될 것이고 셀 수 없이 거북이의 등을 미느라 나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느리지만, 한 걸음씩 고산지역에 익숙해져 가는 사이에 불쑥 페이 마을에서의 마지막 밤이 다가왔다. 우리들은 세 집 식구들과 몇몇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아름다운 것들. 섬집 아기. 아리랑. 한국 노래 세 곡을 오카리나와 리코더와 단소로 합주를 했다. 아이들은 오늘의 작은 음악회를 위해 시간 날 때마다 연습해왔다. 이방인을 가족처럼 맞이해준 마을 사람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함이었다. 

라다크 페이 마을에서의 3박 4일

마을 분들은 처음 듣는 선율과 노랫말에도 정성껏 귀를 기울여주었다. 그런 다음. 답가라고 해야겠지. 어린 소녀 스칼마가 전통 옷까지 차려입고 라다크 전통 춤을 추었다. 박수와 격려. 웃음. 그리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은하수 물줄기가 검푸른 히말라야의 하늘을 건너고 있었다. 다 함께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다 문득 한 녀석이 독백을 하듯 이야기한다. 

삼촌, 이상해요. 떠나기 전 학교 일들이 언제였나 싶어요.


학기 중에 힘들었던 시간들이 아득하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으로 오기 직전까지 내가 하고 있었던 일들, 아등바등 매달리며 머리 싸매 왔던 일들이 다 무엇이었나 싶다. 무엇 때문에 삶이 그리 복잡했나 싶다. 그만큼 이곳에서의 삶은 우리가 살아왔던 환경과는 달랐다. 높았고, 높은 만큼 공기가 희박했고, 공기가 희박한 만큼 눈이 아프도록 세상이 투명했다. 


그래서 단순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친숙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로부터 우리들을 점점 멀리 데려갔다. 반면 낯설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이 조금씩 우리 안으로 한 걸음씩 들어서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삼촌, 이번 여행 잘 온 것 같아요.”

“제가 여기 있는 것이 신기해요. 이런 곳에.”


나 역시 신기하다. 그리고 고맙다. 어쩌자고, 이 높고 험한 고산지역에 15명의 아이들과 함께 오게 되었는지. 이 단조로운 시골마을에서 피 끓는 청소년들을 4일 동안이나 붙잡아 둘 생각을 했는지. 신기하지만, 나는 안다. 아이들을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 앞에 놓인 자연을 믿고, 그 자연과 닮은 아이들을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세계 말고도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이고, 결국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이 길을 나섰듯이 자신만의 느낌과 생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란 걸 믿기 때문이다.  

라다크 페이 마을,  네스핀

떠나는 날 아침이었다. ‘자고’의 주인아주머니는 아이들 목에 흰색 천을 둘러주었다. 이제는 한 식구라는 뜻이다. ‘강첸’의 쌍모 아주머니는 기념사진을 찍다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네스핀’의 증조할머니께서는 지그시 잡은 아이들 손을 놓질 못하신다. 그 마음들은 여행학교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고작 3박 4일. 그 시간 안에 생겨난 서로에 대한 마음의 두께로 이처럼 아프다. 


누구는 더 오래 있고 싶어 아쉽고, 누구는 있는 동안에 더 잘할 걸 하는 마음 때문에 슬프고, 또 누구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가늠할 수 없어 아프다. 흔히들 여행이란 만나는 일이라고 한다. 나 역시 여행이란 낯선 세계와 낯선 사람들과 그들의 낯선 삶과 문화를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사실 여행은 만나는 일이 아니라 헤어지는 일임을 페이 마을을 떠나는 날 아침 우리들은 아프게 배우고 있다.    

      

“헤어질 때가 되니 아쉬운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더 친해질 걸 하는 마음이 제일 강했다. 이 분들의 친절과 미소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헤어질 때 양돌이 아파서 나의 인사를 받지 않아서 슬펐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솔지)     


“처음에 이 집에 왔을 때에는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지낼지 걱정만 가득했는데, 오늘처럼 그리운 게 처음인 것 같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만큼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철민)     


“할머니와 누나께 선물을 주었다. 부채였는데 엄청 좋아하셨다. 음식이 안 맞아서 힘들어서 빨리 떠나고 싶었지만 마지막 날이니까 왠지 슬펐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우현)     


“이름과 주소도 나누고, 가족의 의미로 흰 천도 둘러주셨다. 예인 오빠가 메모를 남겼는데, 그중 ‘See you later.’란 말이 안타까웠다. 다음번에 만날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수경)

    


매거진의 이전글 #4 여행이란 자유를 대가로 불편함을 감내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