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 작은 마을에서 어린 여행자들
‘페이’는 아이들이 여행 전에 과제물로 읽었던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오래된 미래』에 나오는 라다크 전통마을 중 하나일 것이다. 레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왕모 아주머니 소개로 알게 된 그곳에서 우리들은 3박 4일 동안 지낼 예정이었다. 말하자면 홈스테이인 셈. 하지만 그곳 마을은 한 번도 외국인을 대상으로 홈스테이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니, 우리들은 공식적으로 이 마을을 방문하는 첫 외국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곳까지는 대중교통편이 없었다. 우리들은 6인승 택시 세 대에 나누어 탔다. 택시가 레 시내를 벗어나자 아이들로서는 지금껏 쉽게 상상해보지 못했을 풍경들이 이어진다. 텅 빈 도로에는 푸른 바람과 함께 투명한 하늘이 낮게 내려섰고, 거칠고 건조한 산들과 우윳빛 강물이 좌우로 갈라져 빠르게 흘러갔다. 그 낯선 풍경들이 페이로 가는 길을 더욱 멀고 아득하게 만들고 있었다. 레가 고향인 택시 운전사들도 페이 마을은 처음이라고 했다.
인더스 강의 어느 지류쯤 될 강물을 두 번쯤 건너고 고불고불 산길을 한 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페이 마을이 아니라, 언덕 위 티베트 사원이었다. 우리가 가진 정보라곤 왕모 아주머니께서 써주신 ‘샹가라’라는 지나치게 간단한 주소와 ‘롭장’이라는 사람의 전화번호가 다였다. 주황색 승복의 스님이 나오시고 운전기사와 대화를 나누더니 ‘롭장’이라는 분과 전화통화를 하시는 것 같았다.
그 사이 아이들은 차 밖 공기를 마시며 내게 다가온다. 우리들이 지내게 될 집들이 궁금한 모양이다.
“삼촌! 홈스테이 있잖아요, 화장실은 있어요?”
“있기야 하겠지. 어떤 화장실이냐가 문제겠지만.”
“샤워는요?”
“그건 글쎄다. 없으면… 뭐, 밤마다 인더스 강에서 만나자~.”
“강~이요?”
다시 택시를 타고 언덕 아래로 내려서자 강물을 끼고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초입에 아주머니 세 분이 계셨다. 라다크에서는 우리처럼 몇 시 몇 분이 아니라 아침때 보자거나 점심때 만나자거나 하는 식으로 약속한다는데, 언제부터들 기다리신 걸까? 미안함도 고마움도 언어로는 전달할 방법이 없어 그들처럼 그냥 미소를 지을 뿐이다.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경치를 보고 있으니 정말 무슨 영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민아)
마을에는 40여 가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들은 세 집으로 나누어져 지내게 될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이제부터 각자 방식으로 타국의 낯선 문화 속에서 생존해야 할 것이다. 아라, 솔지, 철민, 남수와 같은 모둠이 되어 먼저 한 아주머니를 따라나섰다. 우리 집 이름은 ‘네스핀’이다. 이곳 집들은 뭇 생명들처럼 자신의 고유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곧 주소이기도 했다. 다른 모둠 아이들이 지내게 될 집들 역시 ‘자고’, ‘강첸’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네스핀’은 라다크의 오래된 전통 나무집으로 크고 튼튼했으며, 내부는 그윽하고 고풍스러웠다. 1층은 가축을 위한, 2층은 사람을 위한, 3층은 사당, 즉 신을 위한 공간이다. 아이들이 궁금했던 화장실은 3층 실내에 있었지만, 변기 구멍은 막힘없이 곧장 2층을 지나 1층 축사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3층에서 똥을 누면 그 똥이 1층 축사로 떨어지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볼 수 있음을 뜻한다.
사람의 똥은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고, 가축의 똥은 곡식의 거름이 되거나 햇볕과 바람에 말려져 연료로도 사용되니 자연의 순환하는 이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그런데 좀 의외다. 책 『오래된 미래』를 읽으며 상상했던 것과 달리 마당에는 4륜 구동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고, 거실에는 TV와 냉장고가 자랑스레 놓여 있었던 것이다. 마을 생기고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나름대로 현대화된 집들만 골라 내놓았을까.
‘네스핀’은 4대에 걸친 대가족이 살고 있다. 고마운 것은 우리들을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방인이 아니라 옆집에서 놀러 온 이웃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요란하지도 어색하지도 않게. 마치 그 집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평화로운 일상 속으로 문득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이를테면 이런 일상들.
할아버지께서는 아침이면 마당에 곡식을 널어 말리고 태양열 집열판에 물을 올려놓으신 후, 하루 내내 해의 방향에 따라 곡식과 태양열 집열판을 돌려놓으신다. 어린 증손자를 보는 것은 할머니의 몫인데, 그녀가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하시는 모습은 정지된 사진을 보는 것처럼 고요하다.
또 ‘앙축’ 아저씨와 ‘돌킬’ 아주머니는 낮 동안 손자 ‘남겔’과 함께 논과 밭에 물을 보러 다니거나 가축을 돌보시다, 이른 오후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딸 ‘디스킷’은 공립학교 교사라서 주중에는 레에서 생활하다가 주말이면 찾아왔는데, 그녀의 딸, 즉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어린 증손자인 ‘앙돌’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여행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마~, 마~” 옹알이를 하며 온종일 웃곤 했다.
이튿날 오후, 우리 모둠은 아홉 살 남겔을 앞세우고 마을을 산책했다. 그러다 벼가 익어가는 논길을 따라 강가로 나갔다. 아이들은 바지를 걷고 강물을 건넜고, 또 조약돌을 주워 물수제비를 뜨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점프 샷’ 사진을 찍었다.
삼촌, 이상하게 몸이 막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나 역시 그랬다. 내 안에 자리한 많은 것들이 가벼워지는 느낌. 그렇게 우리들도 이곳 마을에서 평화로운 일상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말린 소똥을 가지런히 쌓아둔 집 앞에서 세 자매의 초대를 받았다. 차를 마시고 집안 구조를 살펴보고 옥상에 올라 마을 전경을 구경하는 동안, 아이들은 세 자매와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는다. 길 위에서 아이들은 빛의 속도로 친구가 된다.
집에 돌아오니 앙축 아저씨와 돌킬 아주머니는 모모(만두)를 만들 준비를 하고 계셨다. 라다크에서 모모는 먼 곳에서 손님이 오면 꼭 만드는 음식이라 했다. 해가 지고 여행학교 아이들은 흐린 백열전구 아래에서 돌킬 아주머니의 가르침대로 모모를 빚기 시작했다.
“돌리고~ 찝고, 돌리고~ 찝고.”
아라가 만두를 만들며 나름대로 작사해낸 후렴구다. 돌킬 아주머니가 아라의 한국말 후렴구를 우스꽝스럽게 따라 하면서 부엌은 웃음바다가 된다. 이번에는 내가 ‘티베트 차이(밀크티)’ 만들기에 도전한다. 세우면 가슴까지 오는 굵고 긴 대나무 통에 싱싱한 야크 우유와 버터와 차를 넣고 주사기를 밀었다 뺏다 하듯이 ‘차이’를 섞기 시작한다. 스르릉 출렁. 스르릉 출렁.
10여 년 전 네팔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던 중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 산골의 어느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던 그날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화롯불 빛에 기대어 스르릉 출렁 스르릉 출렁 차이를 만들고 마시던 그 따스하고도 달콤했던 기억들. 나름 익숙해 보이는 나의 몸놀림에 돌킬 아주머니는 다소 놀라시고, 아이들은 또다시 웃음바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라다크와 한국의 두 언어는 ‘차이’처럼 섞여 차이 없이 서로의 가슴에 가닿고 있었다. 낯선 세상에 여행자로 와서 손님이 되어보는 것, 그리고 단 하루일지라도 그들의 가족이 되어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것. 내가 알고 있는 여행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머물게 된 마을은 너무 이뻤다. 아니 라다크 자체가 하늘이며 산이며 안 이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사진이 되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이뻤다. (중략) 우리가 머물게 된 집에 ‘앙돌’이라는 아기가 있었다. 친해지려 정말 많은 노력을 한 결과 겨우 친해졌다. 밤에 본 하늘에 쏟아질 듯한 별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별들은 처음이었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솔지)
다음날 아침, ‘자고’와 ‘강첸’을 순회했다. 낯선 마을 낯선 집에서 낯선 밤들을 잘들 보냈을까. 우선 ‘자고’ 아이들은 먹는 것 때문에 힘들어했다. 서양인 입맛에 맞게 적절히 조절된 도시 레의 음식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날에 이곳까지 오느라 멀미를 한 우현이는 구토를 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다행히도 마을에 은퇴하신 의사 선생님이 계셔서 ‘자고’ 아주머니의 요청을 받고 왕진을 와주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칼마’라는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있어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걱정이었다. 아이들이 고산병에 잘 적응한다 싶었더니, 이제 이국의 음식이 또 다른 장벽으로 등장한 것이다.
“진짜 리얼 문화체험이다. 음식도 와우! 화장실도 와우! 우리 60년대 화장실? 흙벽에 흙바닥에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와우 오줌을 누면 먼지 날린다. 그런데 집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다. (중략) 수경 언니랑 비닐천막 안에서 씻었다. 번갈아가며 펌프질을 하며 씻었는데, 햇빛 때문에 비닐천막 안은 덥고 물은 욕이 나올 정도로 차가워서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꿋꿋하게 빨래까지 했다. 장족의 발전이다, 서유진!”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유진)
“오츨의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른 나라의 연예인들 사진이 많이 붙어있었다. 유진이와 동갑인 걸로 알고 있는데, 상당히 어른스러웠다. 하지만 방에 들어갔을 때는 똑같은 학생이란 것을 느끼고는 좀 놀랬었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수경)
그리고 ‘강첸’으로 갔다. 이곳에는 열일곱 살 동갑내기 민아와 다혜, 각각 열여덟 열아홉 살인 정호와 문중, 그리고 대학생 진실이가 있다. 이 집은 첫 집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밤새 잘들 지냈냐는 나의 인사에 하룻밤 무용담들이 쏟아진다. 다혜와 정호,
“삼촌, 어제 민아가 눈물 한 바가지 흘렸어요. 샹모 아주머니 도와드린다고 양파 깠거든요. 헤헤~.”
“그런데 삼촌, 어제 우리 점심 뭐였는지 아세요? 요구르트에 시금치 하고 밥하고 말아 나왔어요! 으~ 삼촌, 이건 아니잖아요?”
양파와 씨름하느라 눈물 한 바가지 쏟았다는 민아,
“저는 다 먹었어요. 제가 오빠들도 다 먹으라고 막 시켰어요. 그리고요, 샤워장도 끝내줘요. 마당에 천막 있거든요. 크크. 여자들끼리 좀 무섭기도 하고 그랬는데요, 웃고 떠들고 진짜 재미있었어요.”
모든 아이들이 침 튀기며 자랑하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지난밤 2층 옥상에 올라가 다 함께 누워 바라본 별똥별 이야기다. 평소 ‘별이 쏟아진다.’는 표현이 참 진부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단다. 나 역시도 같은 날 같은 밤하늘을 봤었다. 옛사람들이 ‘은하수(Milky Way)’라고 이름 지은 이유를 자연스레 납득할 수 있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강물처럼 선명한 우윳빛 물줄기로 흘렀던 것이다.
“(집 옥상으로 올라가) 바닥에 매트를 깔고 침낭을 이불 삼아 하늘에 촘촘히 떠있는 별을 보았다. 누워서 보는 별들이 얼마나 예쁘던지. 정말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별똥별도 2~3개는 보았다. 무사히 트래킹을 끝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문중, 정호, 민아, 다혜, 나 이렇게 다섯은 차례로 누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오랫동안 별을 보았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질실)
네스핀과 자고와 강첸, 세 집으로 나누어져 하룻밤을 보낸 아이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히말라야 낯선 땅 낯선 마을에서 낯선 음식을 마주하며 낯선 별들과 낯선 시간들에게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훗날 많은 시간이 지나 우리들의 여행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을 때에는 어떻게 그처럼 평화로운 마을에서 지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문명으로부터 고립되고, 불편하거나 부족한 것들이 지천이지만 이상하게도 평화로웠던 그 기억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 한쪽이 뻐근해질 지도.
사실 생각해보면 여행이 그렇다. 음식이든 잠자리든, 자유를 대가로 불편함을 감내하는 것. 혹은 불편함 또는 부족함과 친해짐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