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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비밀의 숲> 속 영원한 탐구대상, 황시목

악의 없이 세상을 왕따시키는 검사님이 궁금하다

by wee


(왼) 비밀의 숲1 메인 포스터 / (오) 비밀의 숲2 메인 포스터


원래 나는 그 유명한 <비밀의 숲> 안 본 뇌 삽니다 의 주인공이었다.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나는 유명한 작품이라도 흥미가 없으면 잘 안 보고, 그러다 꼭 몇 년 후에 불현듯 흥미를 끄는 지점이 생기면 그제야 허겁지겁 떡밥을 집어먹는 사람이 된다. 쉽게 말해 벼락 맞듯이, 신내림 받듯이 '난 지금 이걸 봐야겠어' 하고 빠져드는 타입이라는 소리다.


<비밀의 숲> 시리즈를 보기로 마음먹은 이유도 비슷했다. 2024년 10월에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좋거나 나쁜 동재>를 더 재밌게 즐기려면, 당연히 스핀오프의 원형인 <비밀의 숲>을 봐야 했다. 단순하고도 필연적인 이유로 <비밀의 숲1>, <비밀의 숲2>, <좋거나 나쁜 동재>까지 정주행 하게 된 나의 간략한 후기는 다음과 같다.


<비밀의 숲> 안 본 뇌 삽니다!



비밀의 숲 시리즈

본격적인 황시목 탐구에 앞서, <비밀의 숲> 시리즈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2017년 <비밀의 숲1>, 2020년 <비밀의 숲2>, 마지막으로 2024년 스핀오프작 <좋거나 나쁜 동재>까지 총 3개 드라마를 '비숲 시리즈'라 칭한다.


<비밀의 숲>은 사회성 제로, 공감 능력 제로의 검사 ‘황시목’인간미와 정의감 넘치는 형사 ‘한여진’이 공조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범죄 스릴러 드라마다. 검찰과 경찰의 공조와 대립, 사건의 반전, 매력적인 캐릭터와 탄탄한 서사를 통해 로맨스 없이 성공한 웰메이드 작품이자 많은 이들의 인생작으로 꼽힌다.


비밀의 숲1 (2017)
(왼쪽부터) 서동재, 이창준, 한여진, 황시목, 영은수


극본: 이수연

연출: 안길호

출연진: 조승우(황시목), 배두나(한여진), 유재명(이창준), 이준혁(서동재), 신혜선(영은수)

로그라인: 설계된 진실, 모두가 동기를 가진 용의자다


비밀의 숲2 (2020)
(왼쪽부터) 서동재, 이연재, 황시목, 한여진, 우태하, 최빛


극본: 이수연

연출: 박현석

출연진: 조승우(황시목), 배두나(한여진), 전혜진(최빛), 최무성(우태하), 윤세아(이연재),이준혁(서동재)

로그라인: 침묵을 원하는 자, 모두가 공범이다


| 좋거나 나쁜 동재 (2024)

비밀의 숲 1 메인포스터를 패러디한 좋나동 메인 포스터


극본: 황하정, 김상원 / 크리에이터: 이수연

연출: 박건호

출연진: 서동재(이준혁), 남완성(박성웅)

로그라인: 사건을 덮을 것인가, 옷을 벗을 것인가


비밀의 숲1 인물소개
황시목 / 한여진
이창준 / 서동재 / 영은수


황시목(조승우): 서부지검 형사 3부 검사 / 오직 이성으로만 세상을 보는 감정을 잃은 검사

한여진(배두나): 용산서 강력계 경위 / 타협 제로에 무대포지만 따뜻한 심성의 경찰

이창준(유재명): 서부지검 형사 3부 차장검사 / 법조계를 장악한 뛰어나 처세술의 차장검사

서동재(이준혁): 서부지검 형사 3부 부부장검사 /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비리검사

영은수(신혜선): 서부지검 형사 3부 검사 / 명문가 출신의 자존심 세고 도도한 수습 검사



이 글에서는 주로 <비밀의 숲 1>을 중심으로 황시목의 캐릭터와 서사를 해체해보고자 한다.


본 포스팅에는 <비밀의 숲1> 속 결말까지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또한 모든 사진의 출처는 tvN 비밀의 숲 홈페이지입니다. (https://tvn.cjenm.com/ko/stranger/)





감정을 잃어버린 검사, 황시목


오늘의 탐구대상은 감정을 잃은 검사, 황시목이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비밀이 드러나는 방식은 다양하다. 과거 회상을 통해, 주인공 주변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혹은 주인공의 입으로 직접 털어놓으며 비밀이 드러나는 타이밍 역시 다양하다. 드라마로 치면 흔히 1화 후반부에서 의미심장하게 드러내어 주인공의 캐릭터를 소개하거나, 혹은 16부작 기준 8부쯤에서 '너 원래 이런 애였어?' 하면서 서사의 반전을 준다.


<비밀의 숲>은 위의 예시들과 완전히 다른 시작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이명을 듣고 고통스러워하는 황시목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서 황시목이 과거 뇌섬엽 발달로 인해 감각이 예민해졌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뇌섬엽 제거술을 받고 후유증으로 이명과 성격 변화, 감정 절제 등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즉 주인공의 비밀을 숨기지 않는다. 시청자 여러분 다 보셨죠? 얘는 원래 이런 캐릭터예요. 하면서 황시목에 대한 모든 걸 알려준다. 그러나 또 모든 걸 숨긴다.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지만, 황시목은 감정이 절제된 캐릭터이지만 주변 인물과의 마찰을 통해 가끔 불이 붙는다. 마치 부싯돌 같다. 불이 붙을 듯하다가도 붙지 않고, 때로는 연기만 나다가, 어느 순간 불이 붙고 금방 식는다.


열심히 사회생활 중인 시목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황시목의 과거 병력과 감정 절제로 인한 행동들은 시청자에게만 공개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황시목이 왜 그렇게 티벳 여우의 얼굴을 한 채 사회성 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고, 왕따를 시키든 말든 되려 본인이 세상을 왕따 시키는지 모른다. 그래서 <비밀의 숲>은 굉장히 잘 짜인 서스펜스 드라마이기도 하다.


서스펜스(suspense)란 작품을 볼 때 관객들이 느끼는 불안정한 심리, 즉 긴장감을 의미한다. 시청자들은 이미 정보를 알고(보고) 있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모르는 지점이 있을 때 생기는 불안함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유지한가. 황시목을 8년 이상 지켜본 강원철(서부지검 트러블메이커 담임선생님)이나 이창준 역시 황시목을 끝없이 관찰하다가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속내를 헷갈려할 정도다.



적폐검사 황시목?


시청자에게 황시목이라는 사람을 단적으로, 그러나 확실하게 각인시킨 장면은 2화에서 박사장을 죽인 수법을 알아내기 위해 시뮬레이션하는 장면일 것이다. 타이머를 켜고, 큰 장미칼을 거침없이 휘두르는 황시목의 독특한 추리는 마치 액션의 한 장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통 주인공의 상상에서 일어나는 시뮬레이션이라 함은 실제 범인의 시야에서 재현되는 범행 현장을 연출하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주인공 황시목이 직접 범인이 되어 사람을 죽이는 충격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이 모습을 본 한여진은 깜짝 놀라 총을 내밀기도 하나, 황시목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결국 황시목이 사용한 칼은 두 번째 피해자, 김가영을 찌른 흉기가 되어 황시목이 범인으로 몰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마 이 모든 일을 설계한 이창준 조차도 황시목이 칼에 손을 댔으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2화 말, 시청자가 아직 황시목이라는 인물을 파악 중인 시점에서 황시목은 이창준에게 부장 자리는 부족하고, 차창 자리를 달라는 말을 한다. 나중에 가서는 이창준 검사를 떠보기 위한 연기였음이 드러나긴 하지만, 뒤의 전개를 모르는 이상 시청자는 황시목이 선인지 악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황시목의 매력은 감정의 결핍이 아닌, 상실에서 온다


감정을 잃어버린 검사이자 팩트를 찾는 검사, 때로는 적폐검사를 자처하는 등 수없이 많은 황시목의 면면들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모여 비밀의 숲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황시목'이라는 캐릭터는 매력적일까?


너무나 완벽하고 완전한 인물보다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은 불완전한 부분이 보이는 인물을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듯이, 우리는 흔히 욕망의 충만보다 결핍에서 흥미를 느낀다. 이는 이야기를 구상할 때 인물에게 각각의 욕망과 결핍을 부여하는 이유와도 같다.


이 때문에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이 결여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닌, 뇌섬엽 제거술로 인해 감정을 절제 '당한' 캐릭터, 황시목에게 빠져들게 된다. 즉 감정의 선천적 결핍이 아닌 후천적 상실은 황시목이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미묘한 차이지만 결핍이란 처음부터 채워지지 않은 것, 상실이란 원래 있던 것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0에서 시작하는 것(결핍)과 1에서 시작해 0이 되는 것(상실)의 차이는 확연히 다르다. 오히려 후자는 1에서 0이 아닌, 0에서 -1이 되는 느낌에 가까울 것이다.


이런 지점에서 황시목이 잃어버린 감정은 여러 갈래의 의문점과 흥미를 만든다. 그는 정말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할까? 그는 어떤 종류의 자극에 반응할까? 영은수에게는 불같이 화를 낼 줄 알다가도, 한여진에게는 웃어주는 심리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을 던지며 캐릭터성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또한 황시목이라는 인물에 대해 의외라고 생각한 점도 있었다. 감정을 못 느끼는 검사라길래 사회생활을 못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는 잘 해내는 것 같다는 것이다. 부장님이 까라면 까지는 않지만 인사는 꼬박꼬박 잘하고, 대답도 잘하고, 전화도 잘 받고, 회의도 잘 참석한다.


사실 현실을 사는 인물이라면 당연한 지점이다. 다만 많은 작품에서 캐릭터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적 특징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사회성이 없는 게 아니라 싸가지가 없는 캐릭터, 상명하복을 무시하는 캐릭터들을 봐 왔던 터라 이런 황시목의 사회생활이 새롭게 느껴졌다. 정말로 '악의 없는 행동'에서 오는 황당함도 작품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황시목을 웃게 만드는 자, 한여진


용산서 강력계 형사 한여진은 황시목을 유일하게 웃게 만드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황시목의 냉소적인 태도에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황당해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치밀하게 조사하는 황시목의 모습을 보고 그에 대한 감상이 바뀐다. 개와 고양이 사이 같은 검찰과 경찰이 공조하는 상황 속에서, 여진은 시목을 유심히 관찰한다.



앞서 감정의 상실은 황시목에게 1에서 0이 되는 경험이 아닌, 0에서 -1이 되는 경험이었을 것이라 언급했다. 그 과정에서 황시목은 늘 자신을 의심했을 것이다. 내게도 감정이 남아는 있을까? 있다면 무엇이 남았는가? 스스로도 답을 찾지 못해 헤매었을 시목에게, 여진은 뇌구조를 그려주며 드러나지 않지만, 어딘가에 시목의 감정이 있을 것이라 말해준다.



이에 시목은 미소로 화답한다. 자신에게 1의 가능성을 찾아준 이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모든 감정에 0에 수렴했던 시목의 변화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다. <비밀의 숲 1>의 결말 역시 여진이 그려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살며시 웃음 짓는 시목으로 끝이 난다. 내내 감정 없이 살던 시목마저 웃게 하는 여진의 힘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그 힘의 원천은 '선의를 믿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2화에서 자신의 손으로 검경의 초동수사 실수를 밝혀야 하는 상황 속, 고민하는 여진에게 시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여진이란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가 거기 달렸죠." 여진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뿌리 삼아 사실을 바로잡는 선택을 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믿는 것을 실행한다. 아무리 작품 속 이야기여도, 우리는 여전히 한여진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황시목을 화나게 하는 자, 영은수


한편, 영은수는 황시목의 신경을 건드리는 인물이다. 영은수는 억울하게 뇌물 수수 혐의를 받은 아버지 영일재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고 불나방처럼 사건에 달려든다. 달리는 트럭에도 올라타고, 용의자로 의심하던 서동재를 도발하다 목을 졸리기도 하는 모습 때문에 영또(영은수 또라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황시목에게 영은수는 시보를 맡은 후배 검사이자, 자신의 스승인 영일재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자, 박무성 살인사건의 용의자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개입될 일은 없었어야 했으나, 영은수는 끊임없이 황시목을 도발한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황시목의 오른팔을 자처하며 사사건건 박무성 살인사건에 관심을 가진다.


시목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일찍이 눈치채고 무방비하게 집에 찾아가거나, 시목이 동재 방을 털러 갈 때 도움을 준다. 접촉을 싫어하는 시목의 팔을 붙잡았다가 뿌리쳐지기도, 잘못된 감사를 전하다 호통을 듣기도 하지만 꿋꿋이 자신의 가설을 시목에게 들려준다.


스트레스 과부하로 인해 쓰러진 시목


끝내 은수는 한조그룹 회장 이윤범(이경영)의 비서에게 살해를 당한다. 아버지의 뇌물 수수 혐의가 한조 그룹의 비리를 파헤치다 생긴 것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목은 은수의 죽음 직후, 그를 '피해자'라고 부르며 타자화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주변인들은 모두 그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 오해한다.


하지만 황시목은 누구보다 영은수의 죽음을 통감한다. 울지 못하는 시목의 눈물은 손에서 흐르는 물로 대체되고, 결국 엄청난 스트레스가 쌓여 몸이 전원을 끄듯 부검실 앞에서 기절해버리고 만다.



이후 수척해진 모습으로 시목은 장례식에 참석한다. 은수의 죽음 때문에 시목을 탓하고 창준에게 화를 내는 영일재를 보다, 시목은 처음으로 분노하며 영은수가 죽은 이유는 영일재의 비겁함이라며 핵심을 짚는다. 이는 남들 앞에서 눈도 깜짝하지 않았던 시목이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는 단순히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다.


이런 시목과 은수의 관계성은 마치 돌을 쪼개는 물과 같다. 내내 주변을 맴돌며 사건으로 뛰어들던 은수는 단단했던 시목을 결국 쪼개 놓는다. 은수는 시목이 놓친 첫 번째 기회이자 부채감이 된다는 점에서, 여진과는 또 다르게 시목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인물로 작용한다. (이는 시목이 <비밀의 숲1> 결말에서 서동재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모습, <비밀의 숲2>에서 은수 또래의 정민하 검사를 보는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시목여진 vs 시목은수
한여진과 황시목
영은수와 황시목


중국드라마는 기승전 인생무상을, 일본드라마는 기승전 교훈을, 한국드라마는 기승전 연애를 준다는 말이 있다. 내가 본 수많은 드라마들도 대부분 여과 없이 이 법칙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비밀의 숲>은 한국드라마의 이 고질적인 법칙을 과감히 깨고, 황시목이 뇌섬엽 제거하듯 깔끔하게 로맨스를 잘라냈다.


보통의 드라마였다면 한여진과 영은수 둘 중 한 인물은 황시목과 혐관으로 시작해 연인이 되는 로맨스 루트를 탔을 것이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기에 더욱 수작으로 불린다.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러브라인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되, '황시목'이라는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만들었다. <비밀의 숲1>이 종영한 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여전히 황시목의 마음을 흔든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이 갈리는 것을 보면 인물들의 관계성을 알쏭달쏭하게 남겨두는 연출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담 하나, 나는 맨 처음 봤을 때는 당연히 여진이 시목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감정이 절제된 사람을 자연스럽게 웃게 하는 행위는 단순히 이성애적 차원의 사랑을 넘어서 인류애적 사랑을 느끼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다만 뒤로 갈수록 여진이 그린 시목의 뇌 구조 한편에는 은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식에서 둘의 관계를 명명할 필요는 없다. 제가 알아서 상상할 테니 공식발표하지 않아 주셔도 돼요.


여담 둘, <비밀의 숲>과 비슷하게 사귀지 않음으로써 완성되는 관계성에 관심이 있다면, 2021년에 방영된 jtbc <로스쿨>을 추천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로스쿨을 배경으로 한 법정 미스터리 장르이기에 입맛에 잘 맞을 것이다.





<비밀의 숲> 속 서사 구조 분석


마지막으로 <비밀의 숲1>의 서사 구성을 통해 인기요인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나름 법정물을 좋아하는 마니아로서 <비밀의 숲1>은 스토리를 응축하다 한 번에 터뜨리는, 몰입감이 엄청난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보통의 법정물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초반부에 메인 스토리의 복선을 깔아놓고, 중반부는 회차별로 다른 에피소드를 늘어놓은 다음, 결말부에 메인 스토리를 정리하는 서사 구조를 취한다. 물론 이는 꼭 법정물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이 판사-검사-변호사면 사건 해결이 에피소드가 되는 거고, 주인공이 의사-간호사면 환자 치료가 에피소드가 되는 거다. 이러한 예시의 국내 드라마로는 <로스쿨>, <너의 목소리가 들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정도가 있으며, 해외 드라마로는 <범죄의 재구성(How to get away with murder)>가 있다.


하지만 <비밀의 숲1>은 완연히 다른 구조를 취한다. 처음부터 대기업과 검찰의 정경유착이라는 메인 스토리를 거대하게 잡아놓고,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끌고 나간다. 1화부터 박무성의 죽음으로 시작해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16화에서 이창준의 죽음으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구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극의 긴장감을 가져가게 한다.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위와 같다.

기존 드라마는 일직선으로 메인 스토리와 인물들을 배치한 다음, 잔가지(에피소드)를 만드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소거한다. 반면 <비밀의 숲1>은 가운데 정경유착을 둘러싼 살인사건의 진실이라는 쟁점에서 마인드맵 형식으로 이야기가 발산되고, 압축시켜 버린다.


이렇듯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하는 서사 구조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와 사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설계된 진실, 모두가 동기를 가진 용의자다'라는 로그라인(방향성)을 놓치지 않고 구성된 이야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는 '이야기로 말하는 작품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느낌을 준다. 가끔 캐릭터에만 집중해 서사 흐름이나 주제 의식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작품들이 있는데, <비밀의 숲1>은 매력적인 인물 설정과 탄탄한 스토리, 감각적인 연출이 모두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균형 잡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해하면 슬픈 사진


여전히 나는 <비밀의 숲>을 안 본 눈을 사고 싶다. 왜냐하면... 영은수의 죽음은 너무 유명해서 알고 있었지만, 작중 인물들의 나이를 검색하다 이창준의 죽음을 스포 당했기 때문이다. 그 인물이 죽는다면 무언가 반전의 결말이 있을 것이라 바로 예상해 버려서 반전의 카타르시스와 추리의 즐거움을 절반밖에 즐기지 못했다. 그걸 보지 않았다면 조금 더 즐거웠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부디 <비밀의 숲>을 안 본 사람이 있다면, 내 글을 미리 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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