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의 세계사》

역사·사회·문화 속으로 들어간 원소들

by 이원규
32489470924.20221230071653.jpg 《원소의 세계사》, 휴 앨더시 윌리엄스, 2013, 알에이치코리아(RHK)


“이 책에서 독자들이 찾을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원소들을 주기율표에 나오는 순서대로 열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각 원소의 성질과 용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다른 책들에게 맡기련다.”(《원소의 세계사》, 17쪽)

화학 원소들을 설명하는 책들은 여럿 나와 있지만, 그런 책이면서도 화학 서적이 아님을 자부하는 책, 《원소의 세계사》입니다. 영국의 대중 과학 저술가인 휴 엘더시 윌리엄스가 쓴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원소들이 발견된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들의 분투, 원소들이 역사적으로 활용되어 온 방법들, 그리고 그 위에 사회에서 부여하는 의미와 문화적 상징 등입니다. 따라서 원소를 중심으로 한 역사·사회 책으로 읽는 것이 글쓴이의 의도에 더 부합하는 읽기 방법입니다.


책은 원소들을 문화적으로 분류하고자 해, 힘, 불, 기술, 아름다움, 흙이라는 다섯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힘은 부와 권력에 이용된 원소, 불은 불에 타면서 나타내는 성질로 삶에 스며든 원소, 기술은 기술에 의해 의미가 부여된 원소, 아름다움은 외양으로 이용되는 원소들입니다. 마지막 흙은 다른 가치를 입지 않은 채 남은 원소들에 땅에서 바로 나왔다는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 분류는 엄밀하게 원소들을 구분하기보다는, 글쓴이가 원소들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부여하는 가치입니다. 예를 들면, 납에 무거움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것은 기술자들의 활용에서 비롯하는데, 글쓴이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이야기, 즉 백색 안료로는 독성 문제를 제외하면 최상급 물질인 연백(납 화합물)을 골랐다면 아름다움으로 갔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글쓴이가 선택한 범주가 체계적 분류라기보다는 원소들을 삶과 연관시키는 서술 장치에 가깝다는 것이며,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책은 모든 원소를 빠짐없이 설명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그 대신 원소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게 합니다. 사회적으로 아무런 특징 없이 묻힌 원소들을 침묵 속에 두지 않고 흙이란 가치를 부여하는 점에서 글쓴이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를 느낍니다. 그러나 이 전략은 모든 원소들에 역사·문화·사회적 이야기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글쓴이는 이 흙에 서로 비슷한 성질을 지니는 희토류들을 배치했고, 이들에 개별적인 의의를 부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유로퓸과 세륨만을 주목해 이야기했습니다.


글쓴이는 원소들이 추상적인 대상도 아니고 화학자들의 실험실에 갇혀 있는 특별한 것도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화학 원소가 발견된 곳을 찾아가고, 쓰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원소들을 가까이 느끼는 체험을 이야기합니다. 탄소를 이야기하기 위해 숯 제조업자를 찾아가고, 물감으로 쓰이는 카드뮴의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물감 공장을 찾아가고, 수많은 원소들을 발견한 스웨덴의 위테르뷔 광산을 방문하고서 글쓴이가 만난 화학자들 중에 이곳을 찾은 자들은 손에 꼽았다고도 합니다. 이곳은 수많은 화학자들과 광물학자들이 방문하는 순례지라는 것과 기묘하게 엇갈립니다.


손수 실험하기를 좋아하는 글쓴이는 심지어 오줌을 모아서 인을 발견한 실험을 재현하려 한 자신의 실험도 이야기합니다. 이런 사회적·개인적 이야기들로 원소들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구성 요소임을 보여주면서, 화학 물질과 화학 실험을 막연히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화학 원소들이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역사 속의 실례들로 표현합니다. 불의 원소로 배치된 유황은 소돔과 고모라를 불태웠고, 인은 함부르크와 가자를 불태웠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염소는 독가스로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지만, 같은 전쟁에서 물 소독제로도 쓰여 수많은 인명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지금은 친숙한 원소인 산소는 발견 초기에는 너무나 과학적으로 느껴져서 문학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는데, 이는 원소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이 역사를 거치면서 달라졌다는 예입니다. 가장 끔찍한 예는 일상생활의 온갖 상품에 광고 문구로 들어간 라듐 열풍일 것입니다. 라듐 열풍 때문에 사람들은 방사성 물질의 위험성을 모르는 채로 라듐이 들어간 상품을 먹고, 마시고, 입었습니다.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해질 수 있는지도 보여주는데, 루비와 에메랄드의 영롱한 빛은 불순물에서 비롯하고, 이 때문에 이 보석을 연구해서 진정 귀한 물질을 얻으려 했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글쓴이는 원소의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지 않고, 원소가 끼치는 인간의 삶도 들여다봅니다. 카드뮴 물감 규제 논란에서는 자신의 그림이 폐기된다는 상상만으로도 견딜 수 없었던 화가들의 공포를 읽어냅니다. 카드뮴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환경에 해로워질 때는 곧 그림을 버릴 때거든요. 우라늄 전기로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마땅히 정원마다 우라늄 폐기물 하나씩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제안은 가혹할지언정 화학 원소를 쓰는 대가를 우리가 진정 인식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이 책은 화학을 다루는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화학 원소들을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올려놓습니다. 이는 화학을 재미있는 대상으로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이 화학 원소를 활용해 온 역사와 사회, 문화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그 원소와 연결된 우리의 삶도 돌아보게 합니다. 결국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주기율표와 같은 원소들의 목록이 아니라, 원소에 의미를 붙이고 이용하고 관계를 맺는 인간의 삶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화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보다는, 원소를 소재로 인간의 삶을 읽어내고 싶은 독자에게 더 잘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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