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된 한자들에 가운데, 안의 뜻을 부여하다
중산국에서 만든 중산왕정에 새겨진 글자 矣(어조사 의)와 昔(예 석)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왕 중산왕정을 살펴보았으니 중산이라는 나라 이름에 들어가는 가운데 중(中) 자로 넘어가보자.
中은 《설문해자》에서는 물건을 꿰뚫은 모양으로 '안'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갑골문의 中 자를 보면 이와는 다른 해석이 필요해 보인다. 中의 갑골문은 다음과 같다.
맨 오른쪽 글자는 지금의 中과 거의 같은 모양이지만, 나머지 글자들은 中의 가로선에 나부끼는 듯한 장식이 붙어 있다. 그 나부끼는 방향은 오른쪽이기도 하고 왼쪽이기도 하다. 中의 위아래로 모두 나부끼는 모양이 있는 글자가 대부분이지만, 왼쪽에서 두 번째 글자처럼 위에만 장식이 있기도 하고, 드물게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 글자처럼 가운데의 口 모양에까지 나부끼는 장식이 있기도 하다. 글자가 현대로 내려오면서 장식들이 사라져 맨 오른쪽 글자처럼 된 것이 현재의 中이다.
이것을 펄럭이는 장식이 붙어 있는 장대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 그 장대가 무엇인지는 여러 가지로 나뉜다. 추 시구이와 황 더콴은 바람의 세기와 방향 등을 재는 고대의 측풍 기구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보았고, 왕 홍위안은 해시계의 일종으로 보았다. 추 시구이는 갑골문의 '병자일에 중(中)을 세우니 바람이 없었다(丙子其立中, 亡風)'라는 문장을 그 근거로 삼았다. 탕 란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세운 것으로 보고, 사람을 모으기 위해 가운데에 세운 깃발에서 '가운데'라는 뜻이 나왔다고 풀이했다. 또 다른 설에서는 가운데에 있는 글자는 영역을 나타내는 囗(나라 국의 옛 형태)로 서로 깃발을 들고 대치하는 두 세력의 중간 영역을 나타내며, 이에서 가운데라는 뜻이 나왔다고 한다.
中의 갑골문을 깃발 같이 펄럭이는 장식이 붙은 장대로 보는 것은 단지 상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자로 깃발을 나타내는 旗(기 기)는 깃발 모양을 그린 㫃(깃발나부낄 언)에 소리를 나타내는 其(그 기)를 합한 글자인데, 㫃은 갑골문에서 다음과 같이 나온다.
이 중에서 오른쪽 두 번째 㫃은 깃대 위아래에 펄럭이는 무언가가 두 개 붙어 있다. 그 외의 대부분은 위에만 펄럭이는 기가 하나 있다. 비록 㫃의 갑골문 중에서도 특이한 글자라는 점이 찝찝하지만, 오른쪽 두 번째 㫃의 가운데에 口를 추가하면 바로 中의 갑골문이 된다. 또는 가장 왼쪽 㫃의 가운데에 口를 추가해도 中이 된다. 곧 中은 㫃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깃발 비슷한 물체를 본뜬 상형자였다가 이에서 가운데라는 뜻이 도출되었다고 본다. 저 㫃은 中뿐 아니라 한국을 나타내는 한자 韓와도 연관이 있는데, 이는 다른 글에서 설명하겠다.
中의 유래는 설이 분분하지만, 측풍 기구든 해시계든 깃발이든 나중에는 '가운데'라는 뜻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또 설문해자에서 나오다시피 '안'의 뜻도 있다.
中(가운데 중, 중간(中間), 주중(週中) 등, 어문회 8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中+人=仲(버금 중): 중개(仲介), 백중(伯仲) 등, 어문회 준3급
中+心=忡(근심할 충): 충충(忡忡), 정충(怔忡) 등, 어문회 특급
中+心=忠(충성 충): 충성(忠誠), 불충(不忠) 등, 어문회 준4급
中+水=沖(화할 충): 충적(沖積), 상충(相沖) 등, 어문회 2급
中+衣=衷(속마음 충): 충정(衷情), 절충(折衷) 등, 어문회 2급
이 글자들은 소리만 中에서 가져왔을 뿐 아니라, 가운데라는 뜻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仲은 형제 관계에서 첫째와 막내 사이의 둘째를 뜻하며 이에서 버금이라는 뜻이 나왔다. 한자로 형제자매의 서열을 첫째, 둘째, 셋째, 넷째로 표현할 때 백중숙계(伯仲叔季)라고 한다. 삼국지로 유명한 손권의 자가 중모(仲謀)고, 사마의의 자가 중달(仲達)인데, 둘 다 위에 손책, 사마랑이라는 형이 있어서 둘째를 의미하는 중(仲)을 썼다.
忠은 본디 뜻은 진정한 마음으로, 속(中)에 있는 마음(心)을 나타낸 것이었다. 역시 참된 것을 뜻하는 정성 성(誠)과 함께 쓰여 '충성'(忠誠)이라는 단어가 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가나 임금을 정성스럽게 섬기는 마음으로 의미가 좁아졌다. 또는 中을 군기로 보고, 군인이 명령에 충성하는 마음가짐을 나타낸다고 하기도 한다.
衷은 본디 옷(衣)의 안(中)을 나타내는 한자였고, 이에서 옷 안에 있는 속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고충(苦衷)은 괴로워하는 속마음이고, 절충(折衷)은 대립하는 두 사람의 속마음을 꺾어 서로 어울리게 하는 것이다.
沖은 '화하다' 외에도 '비다', '부딪치다'의 뜻이 있다. 뜻으로 보아서는 中이 의미에 기여하는지 명확해 보이지 않지만, 갑골문으로 보면 오히려 다른 글자들보다도 中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沖은 지금은 水가 왼쪽에 中이 오른쪽에 있지만, 갑골문에서는 水 한가운데에 中이 들어가 있는 문자도 있다. 시라카와 시즈카의 설에 따르면 이렇게 水 가운데에 글자가 들어가 있으면 회의자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아쉽게도 沖은 갑골문이나 금문에서는 사람의 이름이나 童(어릴 동)의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용례에서 뜻을 추론할 수는 없지만, 물의 흐름이 中 모양의 물건에 충격을 주는 모습으로 보이며 이에서 '찌르다'라는 뜻이 나왔다. '충자'(沖子)라는 단어에서는 '어리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이는 童과 음이 비슷해 통용한 것으로 沖의 원 의미와는 무관하다. '충허'(沖虛)에서는 '비다'라는 뜻이 되는데, 역시 盅(빌 충, 급수 외 한자)를 통용한 것에 불과하다. 盅은 그릇의 안이니 '비다'가 된다.
忡(근심할 충)은 中과는 의미로 별로 상관이 없고 소리만 따온 것이라고 하지만, 감히 추측컨대 沖의 생략형에서 따와 마음이 충격을 받아 근심하는 모습을 뜻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이에서 中과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한편 中이 들어가는 다른 한자로는 冲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沖과 衝(찌를 충) 두 한자의 간체자로 쓰인다. 衝은 重(무거울 중)에서 소리를 따왔는데, 中과 重의 소리가 서로 통한다는 증거가 되겠다. 重은 東(동녘 동)에서 소리를 따왔는데, 이는 沖과 통하는 童(아이 동)도 마찬가지다. 궁극적으로 中과 東의 소리가 서로 통한다는 것이 된다.
中은 장식이 나부끼는 장대를 본뜬 것으로 장대를 세워 놓은 가운데, 안을 의미한다.
中에서 仲(버금 중)·忡(근심할 충)·忠(충성 충)·沖(화할 충)·衷(속마음 충)이 파생되었다.
中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中의 소리 외에도 대부분 中에서 가운데, 안의 뜻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