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웃음, 사당, 밀물 등
지난 글에서는 깃발나부낄 언(㫃)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다루었는데, 대부분 㫃에서 소리를 가져오고 아침 단(旦)에서 뜻을 가져온 아침해빛날 간(倝)에서 파생된 한자들이었다. 倝은 때때로 人이 생략되어서 十+日+十인 � 형태로 쓰기도 한다. 이 글자는 유니코드 기본 영역이 아닌 U+2099D라 깨져 보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한 자인 나라이름 한(韓)에서 이렇게 쓴다.
그런데 한 분께서 질문을 해 주셨다.
한국의 한韓도 倝에서 나왔는데, 조선의 조朝도 倝에서 나온 한자인가요?
오늘은 그래서 조선의 조 자인 아침 조(朝)를 다뤄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朝와 倝의 왼쪽 부분이 같기는 하나 두 글자는 서로 무관하다. 갑골문의 朝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朝a는 우거질 망(茻) 사이에 날 일(日)과 달 월(月)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풀숲 사이에서 해가 막 뜨고 달은 막 지고 있을 때를 그린 것으로, 풀숲 사이에 해가 져서 가리는 모양인 없을 막(莫)과 대비해 아침을 나타낸다. 朝b는 茻 대신에 林(수풀 림)을 쓴 것이니 의미는 같고, 朝c도 대동소이하다.
茻이나 林이 十 두 개로 간략해지면 바로 지금의 朝가 되긴 하지만, 朝의 변화는 그처럼 순조롭지 못했다. 금문에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다.
갑골문과 비교하면 달 월(月)이 없어지고 그 자리를 다양한 글자들이 대신했다. 朝a에서는 내 천(川), 朝b에서는 큰도랑 괴(巜), 朝c에서는 배 주(舟), 朝d에서는 물 수(水)가 들어간다. 공통점은 다들 물이나 강과 관계 있는 한자들이라는 것이다. 이 변화를 그저 月이 와전된 것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글자가 아침 조에서 潮(조수 조)의 원 글자로 바뀌었다고 보기도 한다. 대개 새벽녘에 밀물이 들어오고 해질녘에는 썰물이 되기 때문에, 해가 막 뜰 때 들어오는 물로써 조수를 표현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금문에서는 발음이 같으므로 潮로 朝를 가차해서 쓴 것이다.
전국시대에 들어와서는 내 천(川)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하나 배 주(舟)의 형태가 위의 b, c에서처럼 주류를 차지하게 된다. 이를 본 허신은 드디어 천 년 넘게 내려오는 오답을 만들고 만다. 마침 朝의 왼쪽 부분이 倝과 비슷하고 倝의 뜻이 아침과 관련이 있는데다 소리는 舟와 비슷하므로, 朝는 倝의 생략형이 뜻을 나타내고 舟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라고 해석한 것이다. 설문해자에서 倝은 朝 한 글자만이 속한 부수인데, 朝가 倝에서 파생되지 않았으므로 이 부수는 실수로 만든 부수인 것이다.
설문해자 소전 d에는 倝의 온전한 형태가 들어가 있는데, 어쩌면 허신이 지어낸 문자일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허신과 비슷한 착오를 저지른 사람의 손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천 년 넘게 朝는 倝+舟의 구성으로 잘못 알고 있다가,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원래의 기원을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舟는 다른 글자와 합할 때 月의 형태로 바뀌는 경우도 많아서 비록 잘못된 과정을 거치긴 했어도 결과적으로 지금의 자형인 朝는 갑골문과 가까운 형태가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朝는 원래 의미는 '아침'이며, 옛날에는 아침에 신하들이 왕을 찾아뵙고 정치를 했으므로 이런 일을 하는 곳인 '조정'도 뜻하게 되었다.
朝(아침 조, 조석(朝夕), 왕조(王朝) 등, 어문회 6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嘲(비웃을 조): 조롱(嘲弄), 자조(自嘲) 등. 어문회 1급
廟(사당 묘): 종묘(宗廟), 묘효(廟號) 등. 어문회 3급
潮(밀물/조수 조): 간조(干潮), 조수(潮水) 등. 어문회 4급
嘲는 입 구(口)가 뜻을 나타내고 朝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다. 조롱은 서로 대면하는 것이므로 대면하는 공간인 조정을 뜻하는 朝가 뜻에도 기여한다 할 수 있겠다.
潮는 아침에 밀물이 들어와서 땅을 덮기 때문에 밀물을 뜻하게 된 것이라면, 朝가 소리뿐만 아니라 뜻도 나타내는 것이 된다.
廟는 재미있게도 《설문해자》에서는 고문, 그러니까 옛 문자로는 지금 중국의 간체자 庙와 유사한 庿로 쓴다고 해설했다. 廟는 广(집 엄)이 뜻을 나타내고 朝가 소리를 나타내며, 조정과 같이 높은 분을 모신 곳이라는 의미이므로 朝가 뜻도 나타낸다. 그러나 庿를 구성하는 苗(모 묘)는 뜻에 기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순수 형성자인 庿로 썼다가 나중에 형성 겸 회의자인 廟로 바꿔쓴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廟a는 그냥 潮다. 즉 潮로 廟를 가차해 쓴 것이다. 廟b는 朝 대신 潮를 쓴 것을 제외하면 지금의 廟와 같은 구성이다. 廟c는 广 대신 집을 나타내는 다른 한자인 宀(집 면)으로 바꿔쓴 글자다. d가 바로 庿인데, 지난번에 소개한 중산왕정과 함께 나온 중산의 유물 중산왕호에 새긴 글자다. 나머지 글자들은 모두 서주 중기나 후기의 유물에서 나온 것이다.
대만의 한자 자료집인 소학당(小學堂)의 금문 자료에서, 庿를 쓴 것은 중산왕호뿐이고 나머지 중 1글자는 潮, 31글자는 潮+广이거나 潮+宀의 형태로 나타난다. 庿는 중산왕호에 새겨져 있으므로 廟의 옛 형태는 맞지만, 이보다 더 오래된 廟의 옛 형태는 潮를 사용하므로 廟가 庿보다 더 이전의 형태로 볼 수 있다. 廟와 庿의 관계는 의미 없는 성부인 苗를 써서 의미에 기여하는 성부 朝보다 더 간단한 형태로 만든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朝는 파생된 한자들에 아침이나 조정, 대면의 의미를 부여한다.
朝는 倝과 뜻과 형태가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茻+日+月로 풀숲 사이로 달이 지고 해가 뜨는 때인 아침을 뜻한다.
朝에서 嘲(조롱할 조)·廟(사당 묘)·潮(밀물/조수 조)가 파생되었다.
朝는 파생된 한자들에 아침이나 조정이라는 뜻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