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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10시간전

억조 조(兆)에서 파생된 한자들

홍수를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

아침을 뜻하는 한자로 흔히 쓰는 글자는 지난 글에서 다룬 朝다. 그런데 아침 조에는 다른 글자들도 있다. 날 일(日) 밑에 억조 조(兆)를 받쳐 쓴 晁, 아침 단(旦) 밑에 맹꽁이 맹(黽)을 받쳐 쓴 鼂가 바로 그 글자들이다.

朝는 중국의 성씨로도 쓰이는데, 반란을 일으켜 한때 주나라 왕위를 차지한 왕자 조(朝)의 자손도 있고 춘추시대 탁월한 정치가로 이름을 날린 사조(史晁)의 후손도 있다. 전래문헌에서는 晁와 鼂를 아침으로 쓴 예는 찾기 어려우나, 성씨로 이 세 글자는 서로 통하여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전한의 봉건제를 분쇄한 오초칠국의 난을 유발한 사람이 이 아침 조씨를 쓰는 조조인데, 성을 晁로도 쓰고 鼂로도 쓴다.

이 조조 때문에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가 고조 유방의 조카 유비다. 오나라 왕이었기에 삼국지의 유비와 구별해 오왕 유비라고도 한다. 조조, 유비, 오나라가 나오지만 삼국지가 아니라는 점에 주의!


이 다른 아침 조, 晁는 뜻을 日에서 가져오고 소리를 兆(억조 조, 조짐 조)에서 가져왔다. 兆의 유래를 살펴보자.

설문해자에 수록된 兆. 출처: 小學堂

兆는 전통적으로는 거북의 배딱지나 등껍데기, 곧 귀갑의 균열을 본딴 것으로 여겼다. 중국에서는 점을 칠 때 거북을 사용했다. 귀갑을 가열해 나타나는 균열의 모양을 해석해 미래의 길흉을 예측했다. 그리고 그 점을 친 내용을 점에 쓴 귀갑에 새겼으니, 이 새긴 문자가 한자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인 갑골문이다. 점을 칠 때 귀갑 외에도 소뼈, 곧 우골도 썼기 때문에 '갑''골'문이다.

이렇게 귀갑에 나타난 균열은 미래의 조짐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조짐이라는 뜻이 나왔다.


그런데 갑골문의 兆는 소전과는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兆의 갑골문. 출처: 漢語多功能字庫

가운데에 내 천(川)이나 물 수(水)가 있고 양쪽에는 사람이 등지고 있는 北(북녘 북, 달아날 배)가 있는 모양이다.

한편 금문에는 아직까지 兆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兆에서 파생된 姚(예쁠 요)는 중국의 옛 성이기 때문에 많이 남아 있다. 금문의 姚는 다음과 같다.

姚(예쁠 요)의 금문. 출처: 小學堂

女를 뺀 나머지를 보면 갑골문의 등지고 있는 사람이 등지고 있는 발 모양으로 바뀌었다. 이 兆의 조상 글자들로 보건대, 兆는 원래는 홍수를 피해 사람이 '달아나다'를 뜻했으며 逃(도망할 도)의 원 글자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위의 글자를 姚로 해석하는 데에는 반대도 만만찮았다. 女를 뺀 나머지가 涉(건널 섭)의 금문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涉(건널 섭)의 금문. 출처: 小學堂

그래서 한때는 姚가 아닌, 女+涉의 글자로 보는 설이 유력했다. 대세를 뒤집은 것은 초나라 유물 발굴이었다. 이 초나라 유물에 적힌 글들은 노자 등의 전래문헌과 비교할 수 있어 자형 추정에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 이를 통해 姚에서처럼 兆를 등지고 있는 발의 형태로 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兆의 초나라 계통 문자들. 출처: 小學堂

오히려 이제는 涉과 兆의 관련성을 논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涉은 갑골문에서도 발 모양을 유지하는데 兆는 사람 모양이었다는 차이는 있다.


그러면 조짐이란 뜻은 어떻게 된 것일까? 갑골문에 囗(에울 위, 나라 국)+卜(점 복)으로 보이는 다음과 같은 문자가 있다.

囗+卜의 갑골문. 출처: 小學堂

이 글자는 처음에는 갑골문 내의 문맥을 고려해 禍(재앙 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추 시구이는 이 글자가 바로 귀갑이나 우골(囗)에 점을 쳐 갈라진 틈(卜)이 생긴 것을 그린 것으로, '조짐 조'의 원 글자로 보았다. 나중에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兆가 囗+卜의 가차자로 쓰이다가 아예 밀어내버리고 조짐이란 뜻을 흡수한 것이다. 그리고 한자의 상고음으로는 兆가 憂(근심 우)와 관련이 있으므로 갑골문에서는 이 囗+卜가 憂를 가차했다고 보았다.


요약하면, 兆는 본래 홍수 때 사람들이 달아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달아나다'가 원 뜻이었으나, 나중에 귀갑이나 우골에 점을 치고자 가열해 균열이 일어난 모습을 그린 囗+卜를 가차해 '조짐'이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억조 조(兆, 조짐(兆朕), 억조(億兆) 등. 어문회 준3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兆+人=佻(경박할 조): 조박(佻薄), 경조(輕佻) 등. 어문회 특급  

    兆+口=咷(울 도): 선도후소(先咷後笑), 호도(號咷) 등. 어문회 특급  

    兆+女=姚(예쁠 요): 요숭(姚崇), 요요(姚姚) 등. 어문회 2급  

    兆+心=恌(경박할 조): 조사(恌詐), 부조(不恌) 등. 어문회 특급  

    兆+手=挑(돋울 도): 도발(挑發), 격도지법(擊挑之法) 등. 어문회 3급  

    兆+㫃=旐(기 조): 조삽(旐翣), 단조(丹旐) 등. 어문회 특급  

    兆+日=晁(아침 조): 조조(晁錯), 이조(李晁) 등. 어문회 준특급  

    兆+木=桃(복숭아 도): 도원결의(桃園結義), 편도(扁桃) 등. 어문회 준3급  

    兆+水=洮(씻을 조): 조수(洮水), 이조(李洮) 등. 어문회 특급  

    兆+目=眺(볼 조): 임조(臨眺), 조망(眺望) 등. 어문회 1급  

    兆+穴=窕(그윽할 조): 요조(窈窕), 요조숙녀(窈窕淑女) 등. 어문회 준특급  

    兆+足=跳(뛸 도): 도약(跳躍), 반도(反跳) 등. 어문회 3급  

    兆+辵=逃(도망할 도): 도망(逃亡), 둔도(遁逃) 등. 어문회 4급  

    兆+革=鞉(소고 도): 도축(鞉柷), 소도(小鞉) 등. 어문회 특급  

    兆+鼓=鼗(작은북 도): 도고(鼗鼓), 노도(路鼗) 등. 어문회 특급  

兆(억조 조)에서 파생된 한자들.

兆의 원 의미가 '홍수를 피해 달아나다'라면 이 兆에서 소리를 가져온 형성자들의 상당수가 뜻도 가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佻는 人이 뜻을 나타내고 兆가 소리를 나타내며, 또 홍수 때 사람들이 허둥지둥 달아나는 모습에서 '경박하다'라는 뜻이 유래했다.

咷는 口가 뜻을 나타내고 兆가 소리를 나타내며, 또 홍수로 해를 받은 사람들이 우는 모습에서 '울다'라는 뜻이 유래했다. 《주역》의 '먼저 웃고 뒤에는 운다'라는 뜻의 '선소후도'(先笑後咷)라는 한 구절이 고전에서 다양하게 변용되었다.

姚는 女가 뜻을 나타내고 兆가 소리를 나타내며, 또 홍수가 있던 시절의 여계 가족사회를 표지하는 '성'으로 쓰였다. 트로트 가수 요요미의 예명이 이 '예쁘다'는 의미의 '요요하다'에서 비롯했다.

恌는 心이 뜻을 나타내고 兆가 소리를 나타내며, 또 홍수 때 사람들의 마음이 허둥지둥하는 모습에서  '경박하다'라는 뜻이 유래했다.

桃는 木이 뜻을 나타내고 兆가 소리를 나타내며, 또 봄의 홍수를 예고한다는 데에서 '복숭아나무'라는 뜻이 유래했다.

窕는 穴이 뜻을 나타내고 兆가 소리를 나타내며, 또 홍수를 피해 사람들이 높고 깊은 굴로 달아난다는 데에서 '깊은 구멍'이라는 뜻이 유래했다.

跳는 足이 뜻을 나타내고 兆가 소리를 나타내며, 또 홍수 때 사람들이 발로 뛰어다니는 모습에서 '뛰다'라는 뜻이 유래했다.

逃는 辵이 뜻을 나타내고 兆가 소리를 나타내며, 또 홍수 때 사람들이 달아나는 모습에서 '달아나다'라는 뜻이 유래했다.

鞉, 鼗는 각각 革, 鼓가 뜻을 나타내고 兆가 소리를 나타내며, 또 홍수를 경고한다는 데에서 경고용 북이라는 뜻이 유래했다. 이 북이 작으므로 '작은북'이라는 뜻이 되었다.


한편 가차의 의미인 '거북점', '조짐'에서 뜻을 가져온 글자들도 있다.


旐는 㫃이 뜻을 나타내고 兆가 소리를 나타내며, 또 깃발에 거북의 형상을 그려넣었다는 점에서 거북점인 兆가 들어갔다.

晁는 日이 뜻을 나타내고 兆가 소리를 나타내며, 또 해의 조짐이 보인다는 데에서 아침이라는 뜻이 유래했다.

眺는 目이 뜻을 나타내고 兆가 소리를 나타내며, 또 조짐을 본다는 점에서 멀리 바라본다는 뜻이 유래했다.

억조 조(兆)에서 파생된 글자들의 의미 관계도.

그윽할 조(窕)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 글자는 지금은 고요할 요(窈)를 같이 쓴 '요조'라는 단어로 쓰이는데, 본 의미는 '깊고 그윽하다'이다. 중국의 고전 시집 《시경》의 첫 편 〈관저〉에서 처음 나온다. 짝사랑에 번뇌하는 사람의 모습을 잘 묘사하는 '전전반측' 역시 이 시에서 유래한다.

끼룩끼룩 물수리가 황하의 섬에서 우네.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네.
들쭉날쭉한 마름풀을 이리저리 헤치네.
요조숙녀를 자나 깨나 찾네.
찾아도 얻지 못하니 자나 깨나 생각하네.
멀고도 멀구나, 이리저리 뒤척이네.
들쭉날쭉한 마름풀을 이리저리 캐네.
요조숙녀는 금과 슬을 벗으로 삼네.
들쭉날쭉한 마름풀을 이리저리 뜯네.
요조숙녀는 종과 북을 즐기네.

수많은 주석들이 이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네'에서 나온 요조의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전한-신나라 시기에 양웅이 지은 《방언》에서 '요는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요, 조는 몸이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해설한 이래로 요조는 여성의 미모를 뜻하는 말로 통했다. 당나라 공영달이 쓴 시경 주석인 《모시정의》에서는 숙녀가 거처하는 깊은 공간이라고 해석해, 요조의 의미는 미모에서 깊고 정숙한 마음씨로 바뀌었다.


그런데 죽간본 시경의 발견으로 요조의 의미는 다시 뒤집어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요조를 '요적'(要翟)으로 쓴 것이다. 정리자는 이를 허리 요(腰)에 날씬할 조(嬥)를 쓴 '요조' 즉 '허리가 날씬하다'로 읽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요조(窈窕)와 요조(腰嬥)의 관계는 무엇일까?  

1. 요조(腰嬥)는 그저 요조(窈窕)를 가차했을 뿐으로, '깊고 그윽하다'의 의미다.  

2. 요조(腰嬥)든 요조(窈窕)든 '아름답다'를 의미하는 연면사(2음절로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각 음절을 구성하는 한자 개별적으로는 무의미함)다.  

3. 요조(窈窕)가 요조(腰嬥)를 가차한 것으로, '허리가 날씬하다'는 여성의 미모를 찬사한 것이다.  


한 설에서는 〈관저〉의 전반적인 문맥을 보았을 때 외적인 미모가 강조되지 않고, 날씬한 허리는 《시경》의 〈석인〉이나 〈의차〉에서 장대한 것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에서 보이는 선진시대의 미적 관념과 어울리지 않으므로 2를 지지한다. 그러나 다른 설에서는 오히려 이 시의 마름풀, 물수리, 악기 등의 시어를 성적인 은유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요조숙녀는 여성의 미모를 성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兆는 본디 물을 등지고 달아나는 사람을 그려 '홍수를 피해 달아나다'를 뜻했으나, 나중에 귀갑에 점을 쳐서 균열이 생긴 모습을 그린 囗+卜를 가차해 '조짐'을 뜻하게 되었다.  

    兆에서 佻(경박할 조)·咷(울 도)·姚(예쁠 요)·恌(경박할 조)·挑(돋울 도)·旐(기 조)·晁(아침 조)·桃(복숭아 도)·洮(씻을 조)·眺(볼 조)·窕(그윽할 조)·跳(뛸 도)·逃(도망할 도)·鞉(소고 도)·鼗(작은북 도)가 파생되었다.  

    兆는 파생된 한자들에 '홍수를 피해 달아나다', '조짐'의 의미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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