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갖혀 실수할 기회를 빼앗긴 아이들
《바른 마음》으로 도덕심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나쁜 교육》의 공저자로 "요즘 젊은이들"과 그들을 키워낸 기성세대 모두를 향한 논란을 일으킨 조너선 하이트의 새 책, 《불안 세대》가 "2024년 최고의 문제작"이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달고 한국에 번역 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정확히는 소셜 미디어 계정)를 금지해야 한다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현대 사회인이 용납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학자라기보다는 사회 운동가가 펼치기에 더 적절한 주장 같은, 문제작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쌍을 이루는 다른 메시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대표하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대비하고, 미국에서는 아동과 청소년에게 미치는 현실 세계의 위협은 과대평가하고 가상 세계의 위협은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상 세계에서는 더 많은 규제를 주장하는 반면 현실 세계에서는 어린 세대에 더 많은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합니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겠습니다.
추천의 글
머리말: “아이들을 화성에 보내겠습니까?”
1부 밀려오는 해일
1장 고통의 급증
해일이 밀려오기 시작하다
급증의 근본 원인
불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과연 실제 현상인가
스마트폰과 Z 세대의 탄생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모든 영어권 국가들에서
나머지 세계
2부 배경 이야기: 놀이 기반 아동기의 쇠퇴
2장 아동기에 아동이 해야 하는 일
성장이 느린 인간의 긴 아동기
자유 놀이
조율
사회 학습
기대하는 뇌와 민감기
3장 발견 모드와 위험한 놀이의 필요성
발견 모드 대 방어 모드
방어 모드로 살아가는 학생들
아이는 안티프래질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안티프래질 아이가 발견 모드를 유지하려면 위험한 놀이가 필요하다
놀이 기반 아동기의 종말이 시작되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양육 방식
안전 지상주의와 개념 확장
안티프래질리티와 애착 체계
4장 사춘기와 차단된 성인기 전환
사춘기의 가소성과 취약성
경험 차단제: 안전 지상주의와 스마트폰
통과의례
왜 우리는 성인기 전환을 차단하는가
아동기와 성인기를 이어주는 사다리 만들기
3부 아동기 대재편: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의 부상
5장 네 가지 기본적인 해악: 사회적 박탈, 수면 박탈, 주의 분산, 중독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의 출현
소셜 미디어와 그 변신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의 기회비용
해악 1: 사회적 박탈
해악 2: 수면 박탈
해악 3: 주의 분산
해악 4: 중독
소셜 미디어가 청소년에게 이득이 된다는 주장에 관하여
6장 왜 소셜 미디어는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에게 더 해로운가
소셜 미디어가 여자아이에게 해롭다는 증거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보다 소셜 미디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주체성과 융화성
여자아이가 특별히 취약한 네 가지 이유
양이 질을 압도하다
7장 남자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오랜 기간 계속된 남성의 쇠퇴
이륙에 실패하는 남자아이들
현실 세계의 위험이 없는 남자아이의 아동기
남자아이들을 환영하는 가상 세계
남자아이들을 집어삼키는 가상 세계
포르노
비디오게임
화면에 빠져 살면서 현실 세계의 놀이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기술과 자유와 무의미함
8장 영적 고양과 퇴화
영적 수행
신의 형상을 한 구멍
4부 더 건강한 아동기를 위한 집단행동
9장 집단행동을 위한 준비
집단행동 문제
몇 가지 주의 사항
10장 정부와 테크 회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뇌줄기 바닥을 향한 경주
뇌줄기 바닥을 향한 경주를 끝내기 위해 정부와 테크 회사가 할 수 있는 일
더 많은 그리고 더 나은 현실 세계의 경험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11장 학교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휴대폰 없는 학교
놀이가 많은 학교
렛그로 프로젝트
더 나은 쉬는 시간과 운동장
남자아이들을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하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 실험
12장 부모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0~5세의 어린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제안
6~13세의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제안
13~18세의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제안
맺음말: 아이들을 지구로 되돌려 보내자
감사의 말
주
참고 문헌
찾아보기
책은 크게 1부, 2부, 3부로 나뉩니다.
1부에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불안과 우울 등의 정신 질환이 아이들에게 번져가고 있는 현실과, 이 변화가 다른 원인들이 아닌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 때문이라는 문제 제기로 본문을 시작합니다.
2부에서는 미국에서 아이들의 놀이가 현실 기반에서 스마트폰 기반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우려합니다. 현실 기반의 놀이가 줄어드는 것은 아동을 보호할 사회 신뢰의 붕괴와 기초 학력 저하를 극복하기 위한 학습량 증가 때문이지만, 이 때문에 아이들은 놀이를 통한 발견, 사회성, 반취약성(안티프래질리티) 습득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기반의 놀이는 '따라쟁이'라는 아동기 학습 원리에 심각한 교란을 일으키며 사회적 박탈, 수면 박탈, 주의 분산, 중독을 유발합니다. 여자아이들은 우울증과 불안을 더 많이 겪으며, 남자아이들 역시 우울증과 불안에 더 시달리고 사회에 '이륙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에 필요한 영적인 감각을 무의미한 자극으로 대체합니다.
3부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제한, 현실 기반 놀이와 아이들의 자유 확대이지만, 이런 행동은 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선택을 하면 모두에게 나쁜 결과가 돌아감에도 개인은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집단행동 문제(때로는 사회적 딜레마)라고 하는데,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도 비슷합니다. 공교롭게도 넷플릭스에서 유튜브와 넷플릭스, 소셜 미디어가 사람들을 중독에 빠뜨린다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소셜 딜레마》, 곧 사회적 딜레마입니다. 나 혼자 스마트폰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이 다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데 자신만이 안 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집단행동이 중요합니다. 정부, 테크 회사, 학교, 가정이 각자 집단적으로 사회를 바꿔야 합니다. 테크 회사와 정부는 소셜 미디어 계정을 만들 수 있는 나이 상한을 실효성 있게 집행해야 합니다. 정부는 지나친 아동 방임 규제 폐지 등 아동이 자유롭게 놀고 활동할 수 있는 제도와 공공장소,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학교는 스마트폰을 학교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어른의 간섭 없이 아동이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놀이를 장려해야 합니다. 부모는 본인 스스로 모범이 되어 아이들을 현실에서 놀게 하고 자립심을 키워주며, 화면 경험을 줄여야 합니다.
원래 하이트는 전작인 《나쁜 교육》에서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젊은 세대의 불안의 원인인지는 조심스러워하면서 규제에는 조금 회의적이었습니다. 이는 이 책, 《불안 세대》에서 참고한 글 중 가장 많은 글의 글쓴이인 진 트웽이(《#i세대》 번역에서는 진 트웬지라고 했지만 트웽이가 맞습니다)가 《#i세대》에서 주의하라고 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젊은 세대의 불안의 원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내보이면서 규제 쪽으로 의견이 기울어졌습니다. 디지털 미디어와 해로운 심리적 결과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고 결론 내린 기존의 한 연구도 트웽이와 함께 재해석해서, 여자아이와 소셜 미디어로 대상을 좁혀 보면 나쁜 정신건강과 훨씬 큰 상관관계를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자기 의견을 뒷받침하는 자료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의견을 반박하는 자료까지 가지고 와서 재해석하고 반박이 아닌 지지로 바꾸는 것을 보면서 논란 많은 주제에서 자기 의견을 설득력 있게 펼치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술 발전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하고 있기 때문에, 소셜 미디어가 아이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 반론에는 그런 영향력을 발견하려는 연구 성과가 매우 미미하다고 대처합니다. 그런 것 때문에 소셜 미디어와는 달리 긍정적인 영향력이 있는 비디오 게임은 금지하자고 할 근거가 확실히 있지 않다면서 게임 규제에는 한 발짝 물러섭니다.
이미 위에서 소셜 딜레마라는 다큐멘터리 제목과 책의 내용을 연관시켰지만, 또 다른 점에서도 소셜 딜레마와 비슷한 메시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소셜 딜레마에서는 무엇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하는 우리가 바로 상품으로 팔리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도 “플랫폼들이 정보나 서비스에 공짜 접근을 제공하는 이유는 대개 사용자가 상품이기 때문이다.”라는 거의 같은 내용의 문장이 있습니다. 저도 광고를 보는 대가로 공짜 서비스를 많이 사용하고 있기에, 나 자신이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경각심이 없어진 것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듭니다.
최근에 읽은 제시 싱걸의 《손쉬운 해결책》과는 처음에는 상충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싱걸은 자기 계발 심리학과 같은 손쉬운 수단으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사회심리학적 해결책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하이트는 아직까지는 논란이 많은, 소셜 미디어와 스마트폰이 성장기 아동들의 불안 증가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금지라는 해결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얽힌 사회 문제를 손쉬운 해결책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싱걸과 하이트의 사이는 그다지 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손쉬운 해결책》 뒤편에 있는 저자 인터뷰에서 손쉬운 해결책으로 원하는 답에 이르지 못한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를 묻자, 그 방법은 모른다고 하면서도 굳이 대답해야 한다면 고립을 피하고 의미 있는 사회구조에 속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불안 세대》의 해결책은 철저하게 사회적이고 정치적입니다. 《손쉬운 해결책》에서 비판하는 개인적 해결책과는 달리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한 집단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상 사회는 비체화(체화되지 않음), 비동기, 일대다 의사소통, 자유로운 진출입이라는 특징 때문에 의미 있는 사회구조를 형성하기가 현실 세계보다 어렵습니다.
개인에 집중하지 말고 사회 구조에 집중할 것, 개인이 아니라 사회로 움직일 것을 권장한다는 면에서는 《불안 세대》와 《손쉬운 해결책》은 통합니다.
《손쉬운 해결책》과 《불안 세대》의 공통점은 또 있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 사회를 강타한 아동 학대 사건들 때문에 미국인들은 보호자 없이는 어떤 아동도 다른 어른들에게 맡겨놓을 수 없다는 정서가 확산됩니다. 하이트는 이 때문에 양육을 부모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아동을 현실 세계에서 과잉보호하는 제도적,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영국 사회학자 푸레디의 주장을 인용합니다. 이는 미국인들이 국가와 제도를 점차 불신하게 됨에 따라 사회 자체를 부정하고 개인적인 해결책에 열광하게 되었다고 하는 싱걸의 관점과 통합니다. 사회를 불신하고 부정하면서 모든 것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책임을 지게 되었고, 그 개인적인 해결책 중 하나가 과잉보호인 것입니다.
이 책의 맺음말에서는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소리 높여 크게 말하고, 서로 연결하라.”라는 두 가지 제안으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도둑맞은 집중력》으로 유명한 요한 하리도 이 책의 추천사를 썼는데, 공교롭게도 하리의 또 다른 책이 《벌거벗은 정신력》, 원제는 《잃어버린 연결》입니다. 하이트, 싱걸, 하리 이 세 사람의 주장이 모두 연결과 사회 복원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한편, 《나쁜 교육》과 하이트를 비판한 해나 주얼의 《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에서는 《나쁜 교육》에서 지적하는 양육 방식, 곧 "눈송이" 젊은이들을 양산한다고 지목한 집중 양육 방식은 사회 하류층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불안 세대》에서는 2018년의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2010년대 노동자 계층에서조차 집중 양육 방식이 우세해졌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나쁜 교육》과 《불안 세대》에서 다루는 문제가 예상외로 전 계층에 만연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불안 사회》에서 현실 세계는 좀 더 자유롭게, 가상 세계에서는 덜 자유롭게 할 것을 주문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상 세계에는 극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육체적인 위험은 없다시피한 대신 정신적인 위험은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실수를 하면서 배우는 존재인데, 모든 것이 기록에 남는 가상 세계의 인간관계에서 실수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적절한 수준으로 위협을 관리하는 대신 모든 위협을 없애버렸고, 가상 세계에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인간관계에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한 결과 아이들은 실수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받긴커녕 도리어 실수는 곧 끝장이라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이미 윌 스미스가 남긴 말로 인터넷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저도 14살 때는 진짜 멍청했어요. 그런데 제가 14살이었을 때는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없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전 멍청했지만, 남들 모르게 멍청했던 겁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소셜 미디어에서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지만, 사회 차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실수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말살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에게 소셜 미디어 이용을 금지하자고 하지는 않습니다. 계정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자고 합니다. 논란이 많은 제안이지만, 소셜 미디어 계정을 만든다는 것은 아이들을 곧 전 세계의 수많은 어른들의 눈앞에 드러내는 것이라는 사실의 의미가 진짜 무엇인지를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의 부모가 협력해서 함께 아이들에게 극복할 수 있는 위험을 겪고 극복하는 경험을 하게 하자고 합니다. 이 극복할 수 있는 위험에는 보호자의 도움 없이 홀로 등교하기, 다칠 수는 있지만 큰 부상은 당하지 않을 놀이 기구 타기 등이 들어갑니다. 이는 이미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힌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좁니다. 바로 홀로 애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서로 연합해서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한국은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양육이 오롯이 부모만의 부담으로 지워지고 있으며 그 짐이 점차 무거워지고 있는 현 상황을 바꿀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책 주석에도 나오지만, 아직 여러 전문가들은 소셜 미디어가 부정적 심리 결과의 원인임을 증명하기에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비록 이 책에 나오는 조언대로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부모들과 학교들이 있기는 하지만, 자기 생각에, 자기 형편에 맞지 않는데 억지로 따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 책과 반대 주장을 하는 의견들도 충분히 살펴보고 행동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2024년 최고의 문제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