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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Sep 24. 2024

돌 석(石)에서 파생된 한자들

돌, 경쇠, 크다

자루를 묶은 모습에서 나온 한자들인 묶을 속(束), 동녘 동(東), 전대 탁(橐) 삼형제 중 束과 東은 형성자의 성부로 많이 쓰이지만, 마지막인 橐은 스스로 형성자의 성부가 되지 못하고 돌 석(石)의 소리를 빌려오는 변천 과정을 겪었다.

왼쪽부터 橐의 갑골문, 금문, 소전, 예서. 출처: 小學堂

橐의 갑골문은 오히려 束이나 東보다도 간결해서, 자루의 속이 비어 있다. 그러던 것이 금문에서는 묶은 자루를 몇 번이고 동여매는 복잡한 모양으로 바뀌었고, 소전에서는 자루가 이중으로 바뀌고 그중 하나에는 소리를 나타내고자 石을 집어넣었다. 그것이 예서를 거쳐 지금의 모양이 되었으니, 束·東·橐 삼형제 중 가장 복잡한 형태가 되었다.


《설문해자》에서는 橐이 束·東과는 달리 이중 자루가 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 묶을 혼(㯻)을 끌어왔다. 먼저 束에 뒷간 혼(圂)이 끼어들어가 이중 자루처럼 바뀌었고 이 㯻 중간에 있는 돼지 시(豕) 대신 石이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 石이 들어가면서 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설문해자》에서는 묶을 혼이 부수가 되었고 橐이나 활집 고(櫜), 주머니 낭(囊)은 㯻에 石, 허물 구(咎), 도울 양(襄)이라는 서로 다른 성부들이 결합한 글자로 풀이했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橐이 같은 모양을 공유하는 한자들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글자 같다.


갑골문과 금문에서 橐은 주머니, 지명으로 쓰였고, 또 橐에서 나중에 분화하는 좀 두(蠹)의 뜻을 가차해서 쓰이기도 했다.


橐에 들어가는 石은 갑골문에서부터 등장하는 오래된 한자다.

石의 변천.


지금의 자형은 언덕 한(厂)과 입 구(口)가 합쳐진 꼴인데, 갑골문에서는 口가 들어가기도 들어가지 않기도 하다가 금문에서는 口가 반드시 들어가면서 厂과 구분된다. 이 口는 의미 없는 구별 기호 또는 장식으로 본다. 전국시대에는 장식용 가로획이 더해져서 모양이 더욱 복잡해지다가, 소전에서는 이런 장식들이 다 빠지고 다시 금문의 형태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口는 돌의 모양을 본뜬 것이고 厂은 돌이 언덕 아래에 있음을 표시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갑골문에서는 厂만 있는 글자도 있기 때문에, 厂 그 자체로 돌의 모양을 본뜬 것이라고 본다. 또는 돌로 만든 악기 편경의 경쇠를 본뜬 것이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편경을 보면 걸어 놓은 경쇠의 모양이 저 갑골문과 흡사한 것을 볼 수 있다. 저 경쇠를 두들겨서 소리를 낸다.

전시된 편경.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돌 석(石, 석유(石油), 금강석(金剛石) 등. 어문회 6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石+女(계집 녀)=妬(샘낼 투): 투기(妬忌), 질투(嫉妬) 등. 어문회 1급  

石+又(또 우)=度(법도 도|헤아릴 탁): 탁지대신(度支大臣), 제도(制度) 등. 어문회 6급  

石+巾(수건 건)=席(자리 석): 석순(席順), 좌석(座席) 등. 어문회 6급  

石+火(불 화)=庶(여러 서): 서민(庶民), 적서(嫡庶) 등. 어문회 3급  

石+手(손 수)=拓(넓힐 척): 척식(拓植), 개척(開拓) 등. 어문회 준3급  

石+斤(도끼 근)=斫(쪼갤 작): 작도(斫刀), 장작(長斫) 등. 어문회 준특급  

石+木(나무 목)=柘(메뽕나무 자): 자류석(柘榴石: 석류석), 상자(桑柘: 뽕나무와 메뽕나무) 등. 어문회 특급  

石+(橐 - 石, 전대 탁)=橐(전대 탁): 탁약(橐籥: 파이프오르간), 낭탁(囊橐) 등. 어문회 특급  

石+桀(하왕이름 걸)=磔(찢을 책): 책형(磔刑), 일책수(一磔手) 등. 급수 외 한자  

石+足(발 족)=跖(발바닥 척): 척구폐요(跖狗吠堯: 도척의 개가 요임금 보고 짖는다), 도척(盜跖) 등. 급수 외 한자

石+金(쇠 금)=鉐(놋쇠 석): 어문회 특급

石+頁(머리 혈)=碩(클 석): 석사(碩士), 숙석(宿碩) 등. 어문회 2급

石+鼠(쥐 서)=鼫(다람쥐 석): 석서(鼫鼠) 등. 어문회 특급  

度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度+水(물 수)=渡(건널 도): 도하(渡河), 인도(引渡) 등. 어문회 준3급  

度+金(쇠 금)=鍍(도금할 도): 도금(鍍金), 전도(電鍍) 등. 어문회 1급  

席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席+艸(풀 초)=蓆(클 석): 등석(藤蓆) 등. 어문회 준특급  

庶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庶+艸(풀 초)=蔗(사탕수수 자): 자당(蔗糖), 감자(甘蔗: 사탕수수) 등. 어문회 1급  

庶+足(발 족)=蹠(밟을 척): 대척(對蹠), 족척(足蹠) 등. 어문회 준특급  

庶+辵(쉬엄쉬엄갈 착)=遮(가릴 차): 차단(遮斷), 무차(無遮) 등. 어문회 2급  

庶+鳥(새 조)=鷓(자고 자): 자고(鷓鴣) 등. 급수 외 한자  

橐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橐+䖵(벌레 곤)=蠹(좀 두): 두식(蠹蝕), 서두(書蠹: 책벌레) 등. 급수 외 한자  

橐+馬(말 마)=驝(낙타 탁): 탁타(驝駝: 낙타) 등. 급수 외 한자  

石에서 파생된 한자들.


다른 글자들은 石이 온전하게 들어가 있어 石에서 파생된 한자임을 쉽게 알 수 있지만, 石이 안 보이는 度, 席, 庶와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이 모두 石에서 소리를 가져온 형성자라는 것이 뜻밖이다. 이 글자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广+廿이 石의 변형이다.


石이 들어가는 한자는 매우 많지만, 대부분 돌과는 의미가 무관해 보인다. 그나마 石이 원래 의미에 직접 기여하는 한자로는 여러 서(庶)가 있는데, 본디는 돌로 된 그릇을 불로 가열해서 음식을 익힌다는 의미로 삶을 자(煮)의 원 글자다. 갑골문에서도 煮의 의미로 쓰였다.

왼쪽부터 庶의 갑골문, 금문, 전국시대 초나라 간백문자, 전국시대 진나라 석고문, 설문해자 소전. 출처: 小學堂

그러나 금문에서부터 '여러'라는 뜻으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어서 돌이나 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었다. 전국시대에서도 '여러'의 뜻으로 쓰였으나 '불에 굽다'의 뜻으로도 쓰여 원 뜻이 아직은 남아 있었음을 보여준다.

 《설문해자》에서는 집 엄(广)과 빛 광의 이체자(炗)가 합해 집 아래에 여러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로 보았으나 갑골문을 접하지 못했기에 나온 착오다.


한편 자리 석(席)은 금문이나 현재는 수건 건(巾)이 뜻을 나타내고 石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인데, 전국시대 초나라 간백문자에서는 巾 대신 대 죽(竹)이 뜻을 나타내는 형태로 쓰기도 했다. 설문해자의 고문은 石의 口에 仌처럼 생긴 장식이 들어가 있는데, 이 장식 역시 초나라 간백문자에서도 나타난다.

席의 변천. 출처: 小學堂


어떤 사람은 설문해자의 고문이 돗자리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라고 하는데, 필자의 생각에는 竹이 뜻을 나타내고 石이 소리를 나타내는 초나라 간백문자에서도 이런 변형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石의 변형인 것 같다.


대신 石에서 파생된 한자들 중에 많은 수가 '크다', '넓다', '넓히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 의미로는 클 석(碩)에서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한자도 금문에서부터 발견되며, 《시경》에도 석서(碩鼠), 곧 큰 쥐가 밭을 털어먹는 것을 한탄하는 시인 〈석서〉편이 있다.

왼쪽부터 碩의 금문, 석고문, 전국시대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碩은 금문에서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죽 石+頁의 형태를 유지했다. 금문에서는 사람의 이름으로 쓰였고, 《설문해자》에서는 머리가 큰 것을 묘사했다고 하며 이에서 크다는 뜻이 인신되었다.


'크다', '넓히다'라는 뜻이 자유자재로 인신되는 한 예로는 찢을 책(磔)을 들 수 있다. 이 한자를 쓰는 형벌인 책형(磔刑)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의 몸을 찢는 사형의 일종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죄수의 시체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일종의 명예형이다. 육종달은 《설문해자통론》에서 磔은 본디 제사를 지내기 위해 희생 제물의 배를 찢어 내장을 공개하는 것을 의미했고, 이에서 '찢다', '쪼개다'와 '열다'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계통의 뜻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사물을 넓히는 과정에서 찢어 쪼개는 작업이 들어가기도 하고, 사물을 넓히면 결국은 공개되는 결과가 빚어진다.


石에서 파생된 글자들과 '크다, 넓히다'를 연관해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石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石은 돌, 혹은 돌로 만든 악기인 석경의 경쇠를 본뜬 상형문자다.

石에서 妬(샘낼 투)·度(법도 도|헤아릴 탁)·席(자리 석)·庶(여러 서)·拓(넓힐 척)·斫(쪼갤 작)·柘(메뽕나무 자)·橐(전대 탁)·磔(찢을 책)·跖(발바닥 척)·鉐(놋쇠 석)·碩(클 석)·鼫(다람쥐 석)이 파생되었고, 度에서 渡(건널 도)·鍍(도금할 도)가, 席에서 蓆(클 석)이, 庶에서 蔗(사탕수수 자)·蹠(밟을 척)·遮(가릴 차)·鷓(자고 자)가, 橐에서 蠹(좀 두)·驝(낙타 탁)이 파생되었다.  

石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碩과 같이 '크다, 넓다, 넓히다'의 뜻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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