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다시 입원했다. 들어가자마자 척수액을 뽑아 검사하기로 했는데 원래 BMT(혈액내과 외래병동) 검사실로 내려가서 받는 시술을 레지던트가 호기롭게 환자분 내려가면 사람도 많고 불편하시니 병실에서 빼겠다고 해서 침대에서 새우등을 시키고 대기했다. 척수검사는 척추 안을 흐르는 척수에 직접 주삿바늘을 꽂아서 척수를 뺀다. 그런데 이 레지던트 척추에 대바늘만 몇 번을 꽂았는지... 자신만만해하더니 액은 뽑지도 못하고, 다음 시프트 레지던트까지 앞당겨 부르고 난리를 쳤다. BMT 내려갔다 올 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 후 새로운 레지던트가 이래저래 척수액을 뽑곤, 혹시 '신경마비'가 생기면 알려달라고 해서 정욱이도, 우리도 밤새 잠을 못 잤다.
사람의 고통을 기반으로 직업을 갖는 사람들 중 하나인 의사. 음지의 고통을 양지의 희망으로 들어 올리기 속절없는 자신만만함이 그들을 이끄는 동력이 되어야겠지만, 그 호기로움이 두려운 환자들의 마음을 그들은 정말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이들의 고통과 언제나 소통해야 하는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이 될 수 있어 존경받아야 마땅하지만,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언제나 약자를 통해 증거 되는 본인의 우월함만을 갖춘 삶은 공포이며 폭력일 수도 있다. '불편함'을 운운했던 누군가의 젊음과 호기로움과 자신만만함이 떠난 병실엔 '신경마비'와 마취가 풀린 후 아픔이 남았다. 우월감의 공기가 빠지고 두려움만 남아 우리는 밤새 잠을 못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