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음악
♬ 내 지우개 어디 있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우개를 끝까지 써본 적이 없다. 매번 지우개를 사용하다가 다 써 보지도 못한 체 잃어버렸다. 그 다음에는 당연히 새로운 지우개를 구입하거나, 교실에 떨어져있는 주인 잃은 지우개를 주워 다가 사용했었다. 여하튼 처음 구입한 지우개를 다르고 닳도록 사용하여 끝까지 사용했던 적은 없었다.
왜 그랬던 것일까? 초등학생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지우개 가격이 너무 착해서? 항상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연필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지울 때만 손에 쥐게 되는 지우개의 용도 특성상? 지우개에 자기 이름을 써놓아도, 결국에는 그 부분마저 닳아버려 누구 것이 누구 건지 모르게 되어서? 아니면 개인의 부주의로?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지우개와 같은 존재가 생각 외로 너무나 많다. 무의식적으로 버려지는 것들, 아무도 모르게 우리 곁을 떠나가는 것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어차피 또 다른 새로움과의 만남이 너무나도 당연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대의 익숙함이 항상 미쳐버릴 듯이 난 힘들어
당신은 내 귓가에 소근대길 멈추지 않지만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질 때까지 난 기다려
그 어떤 말도 이젠 우릴 스쳐가
언니네 이발관의 [아름다운 것] 중에서
♬ 버리기 떠나보내기
반면 이런 경우도 있다. 새로움을 찾아 기존의 것을 고의적으로 버리는 혹은 떠나보내는 경우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물건, 같은 사람 등. 이 모든 것들에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터라 그에 따른 아무런 감흥조차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선택은 하나다. 버려야한다. 떠나보내야 한다.
그동안의 추억들마저 익숙함이라는 필터를 거치는 순간, 아무 일도 아닌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의 기억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와 같은 추억과 일상 사이를 넘나들며 살아간다.
사랑했다는 말 난 싫은데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하네
넌 말이 없었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언니네 이발관의 [아름다운 것] 중에서
♬ 내 곁을 떠나버린 그 모든 것
무의식적으로 떠나버린, 의식적으로 떠나버린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우리 곁에 있었던 것들이다. 오랜 기간 함께했던, 잠깐 함께했던 나의 손을 거치고 나의 눈을 거쳐 갔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그동안 그 모든 것들을 다시 찾으려 노력하지는 않았다. 찾으려는 생각마저 해본 적이 없다. 결국에는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렇지만 요즘에는 괜히 새로운 것 마저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내 손에 익숙했던, 내 눈에 익숙했던 예전에 그것을 다시금 생각나고 찾게 된다. 내 곁을 떠나버린 그 모든 것들이 뒤늦게여서야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