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탐 마지막회
37.
나은은 출근하는 준혁을 현관에서 배웅한다. 오늘은 준혁이 공장 노동조합과 1박 2일 임금 교섭이 있다고 한다.
“고생이 많아”
남편에게 위로와 격려를 한다.
“최근 면접 본 곳은 연락 없어?”
“응 연락이 없네. 떨어졌나 봐”
준혁이 나은에게 물어보고 나은은 대답하며 현관문을 연채로, 준혁이 엘리베이터에 탈 때까지 지켜본다. 준혁은 계속해서 나은보고 들어가라고 한다. 나은은 그래도 미소 지으며 지켜보고 있는다. 엘리베이터가 오고 준혁이 인사를 하고는 탄다. 문이 닫히기 전에 한 번 더 나은은 손을 흔들며 미소 짓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나은은 현관문을 닫는다.
집으로 들어온 나은은 간단히 어제 사둔 빵과 우유를 먹는다. 그러면서 핸드폰으로 SNS를 구경한다. 명품 가방을 샀다며 자랑을 하는 친구 A, 잔디밭에서 산책하는 강아지와 함께 셀카를 찍는 친구 B, 기어 다니는 아기 뒤에서 웃으며 셀카를 찍는 C. 대충 스크롤을 내리며 훑어보다가 빵과 우유를 다 먹고는 티브이를 켠다. 티브이로 유튜브 요가를 틀고는 요가매트를 거실에 펼친다. 아침 요가로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하려는 나은의 루틴이다.
한창 요가를 하는데 주방 식탁에 둔 전화벨이 울린다. 나은은 리모컨으로 유튜브 요가를 정지해 두고는 식탁으로 향한다.
010-4499-7799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자기. 뭐 해”
“응 요가하고 있어. 자기는?”
“나 잠깐 고객 집에 가고 있어. 이벤트 상담 있어서. 끝나고 들릴까?”
“아니 이제 우리 집은 안되는 거 알잖아. 남편이 의심한단 말이야. 밖에서 보자.”
“알았어. 데리러 갈까?”
“아니. 혹시나 이웃이 볼 수도 있잖아. 자기 차가 워낙 눈에 띄잖아. 늘 가던 호수 카페에서 만나자.”
“알았어. 끝나고 연락할게.”
나은은 전화를 끊고는 다시 요가매트로 간다. 은혁과 만난 지는 1달 정도 되었다. 남편 준혁의 생일 이벤트를 해주고 싶어서 친구와 얘기하던 중 친구의 지인이 이벤트 회사를 한다고 하여 소개받았다. 그래서 이 남자와 상담을 하다가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이 남자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이 남자의 클래스다. 항상 쪼잔하고 사소한 거에 신경을 많이 쓰는 준혁만 보다가 돈을 쓸 땐 쓰고 투자할 땐 투자하고, 무언가에 집중할 땐 프로처럼 집중하는 그런 클래스. 특히 그의 벤츠와 롤렉스 시계는 볼 때마다 나은에게 멋진 선망의 이미지를 선사했다.
나은은 집에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오늘 입을 옷을 고르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벌써 자기가 할 일을 다 끝냈나’ 나은은 은혁의 전화라 생각하고 소파에 있는 핸드폰을 가지러 간다. 핸드폰을 들어보니 모르는 번호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서나은 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네 여기 메가상사입니다. 이번에 면접 보신 거 합격 연락 드렸습니다.”
“앗 정말요? 감사합니다”
지난주 면접 본 곳에 합격했다. 나은은 뛸 듯이 기뻤다. 전화를 끊자마자 또 전화가 걸려온다.
010-4499-7799. 은혁이다.
나은은 전화를 받자마자 은혁에게 면접본 곳에 합격했다고 얘기하고 축하를 받는다. 그리고 은혁이 이제 일 끝났다고 만나자고 한다. 나은은 알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고 얼른 옷을 가지러 간다.
‘아차 남편에게 면접본 곳 합격했다고 말을 못 했네.’
나은은 남편보다 은혁에게 먼저 자신의 면접 합격 소식을 알리고 축하를 받은 걸 상기하며 확실히 지금 남편보다 은혁에게 빠져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자기야. 나 지난주 면접본 곳 합격했어. 다음 주부터 출근해.’
남편은 곧이어 답장이 왔다.
‘축하해. 자기야. 주말에 파티하자.’
나은은 고맙다는 답장을 한번 더 보낸 뒤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다.
주차장으로 가서 SM5차를 탄다. 호수 카페는 내비게이션으로 40분 걸린다. 가까운 곳에도 호수가 있고 카페가 많이 있지만 가까운 곳은 혹시나 지인을 만날 수 있어서 일부러 먼 곳을 선택했다.
카페 주차장에 도착하니 은혁의 차가 보인다. 먼저 와있다. 언제 봐도 멋진 벤츠 차다. 카페에 들어가니 창가에 은혁이 앉아있다. 손을 흔든다. 나은은 은혁과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가끔 손을 맞잡는다. 은혁이 나은에게 계속해서 달콤한 사랑의 말을 하고 나은은 그런 은혁에게 계속해서 행복한 웃음을 보낸다.
오늘 남편이 1박 2일로 출장 갔다고, 오늘 함께 밤을 보낼 수 있다고 은혁에게 얘기한다. 은혁도 기뻐한다.
둘은 카페를 나와 이른 저녁식사를 하러 간다. 주변에 있는 장어 전문점으로 가서 맛있는 장어를 먹는다. 나은은 일부러 은혁에게 장어를 접시에 더 올려주며 많이 먹으라고 한다. 은혁은 고맙다며 똑같이 나은에게 장어를 올려준다. 둘은 술도 한잔 먹는다. 차가 2대라 이동하기 불편하지만 술의 유혹 앞에 결국 대리 기사를 부르기로 한다. 둘의 사랑 앞에 술은 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게 하는 장작 같은 존재다.
장어 전문점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둘은 대리 기사를 부른다. 다음 장소는 근처에 있는 모텔이다. 대리기사가 오고 둘은 각자의 차로 이동한다. 시간은 19시. 시간이 매우 이르다. 하지만 이제 겨울이 오고 있어서인지 밖은 금세 캄캄해졌다. 어느새 모텔이 눈앞에 보였고, 주차장에 대리 기사가 주차를 해주었다. 은혁의 차는 이미 와있었다. 운전석의 대리기사는 먼저 내려서 가고, 나은도 내리려고 하는데 전화가 온다. 남편 준혁이다.
‘웬일로 전화가 오지. 회사일로 출장을 가면 보통 문자메시지만 하는데.’
나은은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받으며 차창 밖을 보니 은혁은 이제 차에서 내려 나은의 차로 걸어오고 있다.
“여보세요”
“응 여보세요. 자기 어디야?”
“응 나 집이지 왜? 자기는 안 바빠?”
“응 안 바빠. 집 맞아?”
“응 집 맞아.”
나은은 모텔 앞에 주차를 해놓고 집이라고 말하니 심장이 떨렸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괜히 자기 자신과 남편을 속이려 하니 너무나도 겁이 났다. 거짓말도 해본 사람이 잘하지. 거짓말을 통 해볼 일이 없는 나은으로서는 더 겁이 났다.
“그럼 전화 끊지 말고 잠깐 있어봐 봐”
“응? 왜?”
나은은 의아했다. 남편이 왜 전화를 끊지 말고 있어 보라는 거지. 마치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얘기하는 거 같다. 그럴 리가. 남편이 어찌 자신의 위치를 알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갑자기 주차장 입구 쪽에서 낯익은 차가 들어온다. 흰색 그랜져. 그리고 낯익은 차 번호 4492.
남편의 차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은혁은 그새 나은의 차 앞에 도착해서 밝게 웃고 있다. 나은은 당황한 표정을 지은채 손짓으로 은혁에게 어서 다른 곳으로 가라고 손을 내젓는다. 은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은을 바라본다. 그리고 흰색 그랜져가 나은의 차 앞에 멈추었다. 그리고 운전자석의 문이 열린다. 이내 화가 난 표정의 남편 준혁의 얼굴이 보인다.
38.
준혁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은의 차 앞에 서있는 벤츠 남자의 목을 팔로 휘어 감고 조른 채 그를 넘어뜨렸다. 그리고는 그의 배 위에 올라앉아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주먹으로 내리쳤다. 준혁은 눈앞의 상황에 이성을 잃었다. 마구 내려치자 그는 팔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감싸며 몸을 좌우로 막 움직여댄다. 나은이 차에서 내려 준혁의 손과 몸을 잡아끈다.
“자기야 그만해. 내가 미안해”
준혁은 화가 풀리지 않는다. 일어나서 발로 몇 번 더 그의 배와 얼굴을 사정없이 찬다.
그리고는 나은을 밀치고는
“이혼 준비해”
외치고는 그대로 운전석으로 가서 차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난다.
믿었던 나은이 진짜 바람을 피웠다. 어떻게 이런 시련이 내게 오다니. 준혁은 결국 눈물을 흘린다. 저도 모르게 꺼억꺼억 소리까지 난다. 준혁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앞으로 운전해 간다. 나은과 벤츠의 남자가 모텔 주차장에 있던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지난주 여자탈의실을 염탐했던 동현을 면담했다.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촬영은 하지 않았는지 등 얘기를 하며 퇴사를 하고 경찰 조사를 받는 걸로 결론 내렸다. 동현은 연신 죄송하다는 말, 민정이 자신의 첫사랑을 닮아서 좋아했다는 얘기를 하며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면담을 마칠 때쯤
“다른 얘기긴 한데 전에 팀장님 취하셔서 집에 데려다줬을 때 웬 남자가 집에서 나온 걸 봤습니다”
이렇게 얘기한다.
준혁은 얘기 들어서 알고 있다고, 그때 집에 온 남자는 처남이라고 했다. 근데 동현이 다른 얘기를 한다.
“그날 집을 나와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그때 집에서 나온 그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아파트 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통화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분명 ‘자기’라고 했고, ‘남편은 자냐고’했고, 방금 ‘자기가 나오다가 마주쳤는데 변명 잘하라고’ 한걸 들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자 준혁은 다시 한번 아내에 대한 의심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그날은 처남이 왔다 갔다고 했고, 분명 벤츠 남자가 온 건 이벤트 준비 때문이었다.
준혁은 거실 전등 옆에 아직 붙어있는 카메라를 떠올렸다. ‘아직 철수하면 안 되겠다. 다시 증거 확보를 해야겠다.’
준혁은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위치 탐색기를 구매했다. 주말에 아내에게 세차를 해주겠다고 SM5 차를 몰고 나온 뒤 조수석 앞 글로브 박스에 넣었다. 아주 소형이라 글로브 박스 구석에 있으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출근할 때마다 거실의 CCTV와 차량 위치 탐색기를 지켜봤다. 특별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묘안을 생각했다. 또다시 1박 2일로 집을 못 들어온다고 얘기하는 거였다. 바람을 피우고 있다면 무언가 행동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 1박 2일로 자리를 비우고 CCTV와 차량 위치 탐색기를 지켜보자 역시나 수상한 행동이 나오기 시작했다.
차량이 평소 잘 가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준혁은 그날 연차를 냈다. 그리고 아내의 차량을 따라가 봤다. 40분 거리의 호수 근처에 있는 카페다. 일부러 카페 주차장에 주차하지 않고, 근처 길에다가 주차를 했다. 그리고 모자를 쓴 채 먼발치에서 지켜봤다. 역시나 벤츠의 남자와 아내가 카페로 들어간다. 준혁은 계속 차에서 기다렸다. 아내에게 지금 연락을 해볼까 싶었지만, 추가적인 증거 확보가 필요했다. 단순히 커피만 먹는다고 불륜이라고 할 수 없다. 저번처럼 또 핑계를 대면 안 된다. 확실히 증거를 잡아야 한다.
꽤 기다리자 이번엔 근처 장어 전문점으로 간다. ‘장어라. 이거 이제 거의 증거확보에 다와 가는 구만. 조금만 더 지켜보자.’ 준혁은 계속해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본다. 기다리면서 준혁은 혹시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도청기 같은 걸 설치하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체 그들 사이에 어떤 대화들이 오가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식사 후 이젠 외딴곳의 모텔 방향으로 이동한다. 이제 다 왔다. 증거확보가 다 되었다. 그렇게 생각한 준혁은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는 모텔로 향한다. 실제로 본 불륜 중인 아내의 표정을 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당황하는 표정이 평소 알던 아내의 모습이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 같았다. 이젠 이 여자와 끝이다. 준혁은 폭발하여 불륜 상대자를 폭행했다. 그리고 나은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제 준혁은 모든 걸 잃었다. 믿었던 반려자를 잃자 모든 걸 잃은 기분이다.
이후 이혼 소송은 원활히 진행됐고, 위자료를 받았다. 집을 작은 평수로 이사했다. 한동안 직장 생활에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왜 사는지, 앞으로 좋은 날이 올지, 준혁은 쉽게 짐작이 되지 않았다. 준혁은 계속해서 공허했다. 모든 걸 잃은 느낌이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자 공허함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게 무엇일까 고민하며 늘 핸드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문득 벤츠 차량이 떠오른다.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그 남자가 타던 벤츠. 벤츠를 타면 공허함이 없어질까. 곁에 없던 반려자가 다시 생길까. 준혁은 벤츠 대리점을 네이버 지도에서 찾아본다. 30분 거리에 있다. 은행 잔고를 본다. 얼마 전에 좁은 평수로 이사를 하며 남은 돈과 위자료를 받은 돈이 꽤 있어서 충분해 보인다.
준혁은 벤츠 대리점으로 향한다. 도착한 대리점에서 딜러의 설명을 들으며 벤츠 차량을 둘러본다. 시승을 해본다. 너무나도 편하다. 자신을 감싸주는 이 포근함. 내가 운전을 하는 건지, 차가 준혁을 운전하는 건지 모를 이 기분.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바람개비 같은 엠블럼. 준혁은 차량을 구매한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믿었던 여자를 잃은 공허함을 잊는다. 운전하는 차 안에서 창문을 내리고는 손을 밖으로 내밀어본다. 시원한 바람이 손을 스쳐간다. 그리고 사이드미러로 손목이 보인다. 손목이 허전하다. 멋진 시계가 있으면 손목이 심심해 보이지 않을 거 같다. 시계도 사야겠다. 이왕이면 화려하고 반짝이는 시계로 사야겠다. 준혁은 인근 백화점으로 향한다.